하급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의 기준이 된 보고서의 오류를 지적하며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간질환이 발생하거나 악화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김상준 부장판사)는 24일 외교통상부에 근무하다가 간암으로 사망한 김모씨의 아내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 부지급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과로·스트레스로 인해 인체 면역체계가 약화되고 기능이 저하되면 간경변·간암으로 진행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에 비춰 볼 때 김씨가 업무 과정에서 누적된 과로·스트레스가 기존 질환인 간염을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켜 간암을 유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한산업의학회 등에 따르면 적어도 인체의 면역체계가 충분히 성숙됐다고 보이는 40대 이상의 간질환 환자에 있어 어떤 요인으로 면역성이 약화되면 간염바이러스가 증식될 가능성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간세포가 파괴돼 간질환이 자연경과 속도 이상으로 악화될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김씨가 통상적인 업무 이외에 중요한 외교행사 관련 업무가 폭주함으로써 초과근무 및 수면부족으로 육체적 피로가 누적됐고 업무 총괄 책임자로서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많이 느끼는 등 장기간에 걸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판결의 근거로 대법원이 2002년 판례 확립에 기준으로 삼았던 대한간학회 보고서의 오류를 지적했다.
대한간학회는 2002년 근로복지공단의 용역을 받아 '과로 및 스트레스는 간질환의 발병·악화와 관계가 없다'는 보고서를 냈고 대법원은 이를 수용, 판례를 확립했다.
재판부는 "이 보고서는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학회가 문제의식을 갖고 독자적으로 수행한 연구가 아니라 대표 집필자가 스스로 인정한 것과 같이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입장을 고수해 왔던 근로복지공단의 의뢰에 의한 보고서"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보고서는 2~3개월만에 문헌연구를 통해 완성한 것으로 이미 제시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에 부합하는 자료를 제시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며 객관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외교통상부에서 근무하던 김씨는 격무에 시달리다 2005년 1월 간암판정을 받고 치료와 근무를 병행하다가 그해 7월 간세포암으로 사망했으며 유족들은 공무상 사망에 해당한다며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을 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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