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안,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지명 철회, 대통령직 사퇴 문제 언급, 탈당 가능성 시사...지난 며칠동안 노무현 대통령 중심으로 진행된 정치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뉴스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 내고 있는가? 지난 달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 동안의 정치상황을 SBS 8시뉴스는 어떻게 보도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뉴스비평의 첫 주제입니다.
11월 26일 SBS 뉴스는 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는 "꽉 막힌 정국을 대화를 통해서 뚫어보자는 취지"라고 해석하고, 그렇지만 한나라당은 헌재소장 임명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정치협상회의 제안에 대한 보도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정치협상회의의 성사 가능성이 어떤가를 생각하면, 뉴스가 큰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협상회의 제안은 답답하니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노 대통령은 전효숙 카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버리는 절차로, 그리고 새로운 강수를 쓰기위한 절차로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했다는 것이 그 뒤 며칠 동안의 상황전개로 드러났습니다. 27일 뉴스는 노 대통령이 정치협상회의를 거부당하자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전제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한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이것 역시 빗나간 해석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전효숙 카드를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바로 다음 날 그의 발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28일 뉴스는 "국회에서 표결을 거부 방해하는 불법 부당한 횡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그는 이 발언과 함께 대통령직 사퇴 문제를 언급하고 탈당가능성을 시사한 것입니다. 그가 전효숙 카드를 버린 것은 한라라당을 정치협상회의에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강수로써 여야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한 절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날 뉴스가 노 대통령이 '타협과 굴복'을 거론한 것은 향후 국정운영 기조가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고, 탈당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초당적 국정운영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탈당도 감수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본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해석입니다. 뉴스는 말미에 노 대통령이 탈당 카드와 임기 카드로 여와 야에 대해 정치판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강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뉴스는 바로 이 부분을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와대 스스로 나서서 대통령직 사퇴는 없다고 강조하는 판에 임기 카드가 야당에 어느 정도의 경고나 압박이 될 것인지, 그리고 대통령의 여당 탈당이 정계 개편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분석해야 합니다. 최근 며칠 사이 방송 뉴스에 실명을 밝히지 않고, '모씨'라는 익명으로 등장하는 유력인사들이 많아졌습니다.
11월 25일 SBS 뉴스는 현직 청와대 비서관의 가족이 불법 로비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제이유 그룹과 10억 원대의 돈 거래를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비서관의 실명을 밝히지 않고, '청와대 모 비서관의 누나 등 가족 4명'이라고만 밝혔습니다. 뉴스는 전산거래 내역을 조작해 수당을 부풀려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는데, 전산거래 내역 조작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뉴스는 또 비서관 본인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인간의 거래이며, 비서관의 교체 또한 문책이 아니라 정상적인 인사였다는 청와대의 설명을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그러면서도 해당 비서관의 인사조치가 언제 있었는지, 그리고 가족 구성을 보아 비서관 본인과는 관련이 없다는 청와대의 해명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지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해당 비서관의 실명과 가족 4명이 어머니, 남동생, 누나, 매형이라는 사실을 이날 보도한 신문이나 방송도 있었습니다. 실명을 밝히지 않더라도 성씨와 그가 사정비서관이라는 사실 정도는 대체로 밝혔습니다.
제이유 그룹의 전산조작 수법에 대해 유력인사의 가족들을 사업자로 등록시킨 뒤 실제 매출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린 것으로 거래내역을 조작하여 일반 사업자보다 더 많은 수당을 지급했다는 의혹이라는 설명도 다른 뉴스에서는 나왔습니다. SBS 뉴스는 이틀 늦은 27일에야 가족 4명이 누구라는 것을 밝혔지만, 해당 비서관에 대해서는 성씨만을 공개했습니다. 28일 뉴스는 검찰이 모 차장검사의 누나가 제이유 그룹 한 모 사장과 돈 거래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피해액 4조원에 연루된 사람만 34만 명으로 제이유 그룹 사건이 사상 최대의 사기 사건이 될 수 있는 만큼,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겠다"는 검찰의 다짐도 보도했습니다. 이 뉴스는 말미에 "하지만 제 식구 봐주기 의혹을 피하려 뒤늦게 자기 방어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와 검찰은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덧붙였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 금지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충돌하는 두 원칙 사이에서 어느 선을 걸어가느냐 하는 것은 불변의 공식이 없습니다. 그것은 뉴스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부딪치며 결단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청와대 비서관이나 간부 검사와 같은 공인의 경우 실명을 밝히는 것이 뉴스의 바른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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