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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민주주의 창-전당대회와 민주주의

1)노동당 전당대회의 진정한 면모

영국 노동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과연 선진 민주주의 정당이란 이런 모습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현대 민주주주의의 남상(濫湘), 영국이라고 모든 게 정답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기에 무엇이 모자란 것인지 찾는 일은 무모하다. 노동당 전당대회(Labour Conference)는 1917년 영국 노동운동의 탄생지, 맨체스터(Manchester)에서 처음 열렸다. 그 후 매년 9월이면 어김없이 한 번씩 열려 전국의 노동당원을 흥분시키며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루 열려 지도부 선출하고 박수치고 마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지나간 1년을 점검하고 앞으로 1년을 아니 그 이상의 미래를 위한 디딤돌을 놓는 그런 자리다. 그러니, 일주일 이상 지속된다.

영국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심도있게 논의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는 정책 전당대회다. 집권당이므로 총리부터 각부 장관들이 총 출동해 자기가 맡고 있는 부서 업무의 지난날을 점검하고 미래상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 치열한 논쟁과 의견제시가 가해져 좀 더 현실적인 정책으로 가다듬어짐은 물론이다. 경제성장, 안정적인 고용, 의료나 교육 같은 복지, 치안 확보, 환경 같은 국내문제에 이어 유럽에서 집단 경제 정치 공동체 확대 문제, 지구촌 빈곤 퇴치, 테러와 전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온축된 지혜를 모아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국민들은 노동당당원이 아니라 해도 전당대회를 통해 그 당의 정책과 비젼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얻는다. 더구나 집권당일 경우 노동당 대회는 실질적인 정부 정책을 다루게 돼 영국이란 국가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그래서 언론도 집권당의 전당대회에는 비상한 과심을 갖는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BBC나 ITV의 경우 매일 아침과 저녁, 심야 종합 뉴스를 현지 맨체스터 전당대회장을 생방송으로 연결해 진행했다.

전당대회는 당권과 차기 영국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인사들의 도전 무대이기도 하다. 의원 내각제를 택하는 영국은 집권당의 유력한 의원들이 모두 내각에 들어가 장관을 맡는다. 장관 경험을 통해 국정 수행능력을 기른 이들이 매년 전당대회를 통해 자신의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검증받으며 자연스럽게 차기 지도자로 부각되는데, 올해처럼 내년 블레어가 물러나는 게 확실할 때는 당권도전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올해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과 존 리드 내무장관이 보수당에 맞서 노동당을 이끌어 나갈 지도자로 나갈 뜻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국민들도 새로운 정치지도자 탄생을 공식적으로 지켜보는 계기가 된다. 예측 가능한 정치의 구현이다. 당의 재정문제나, 지도부 구성, 다가올 선거 대책 같은 문제도 논의한다. 뜻을 같이 하는 국제적인 명사도 초청돼 국제적인 연대도 다진다. 9월 20일부터 시작돼 9일간 지속된 이번 전당대회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초청돼 노동당의 업적을 기리고, 아프리카 빈곤 문제 해결등에 노동당이 더 신경 써 줄 것을 당부했다.

2)영국 보수당도 전당대회

보수당도 전당대회(Conference)에 들어갔다. 노동당이 9월 20일 영국 최대의 산업도시이나 유구한 노동운동 역사를 간직한 매체스터에서 전당대회에 들어가 29일 끝낸 데 이어, 보수당은 10월 1일 전당대회에 들어갔다. 서로 맞물려 대회를 치르는 셈이다. 이에 앞서 제 3당인 자유 민주당은 9월 초에 전당대회를 치렀다. 3당이 연례 전당대회를 모두 가을에 치르는 게 이색적이다. 여름휴가를 끝내고 정치의 계절이라고 할까. 국민 입장에서 보면 주요 3당의 정강 정책을 비교하고 정당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재정립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된다. 정강정책과는 무관하게 당 지도부 선출하고 마는 대회로 전락한 한국의 전당대회와 달리 정강정책을 들여다 보는 전당대회의 연속 개최는 고효율 정치구조의 한 모범이라 할 수 있겠다. 

전당대회 장소는 영국 남부 해안가. 도르셋(Dorset) 지방의 항구 도시 번마우스(Bournemouth). 노동당 전당대회도 그랬지만, 보수당 전당대회도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다. 물론 집권당인 노동당보다는 관심도가 떨어지지만, 방송의 경우 거의 같은 비중으로 뉴스에서 다룬다. BBC 밤 10 종합뉴스를 예로 들면 12-13분 가량을 할애한다. 14-15분을 할애했던 노동당에 비해 다소 적은 듯 보이지만, 노동당 대회가 집권당으로 의원내각제 아래서 실질적인 정부 정책을 반영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결코 적지않은 비중이다.     

3)현대 민주주의와 정당

현대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제도를 채택하던 고대 그리스는 물론 로마 공화정기(카이사르와 후게자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독재정으로 전환됨)와 달리 간접 민주주의제도를 채택한다. 간접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 손으로 대리인을 뽑아 정해진 기간 만큼만 권력을 위임하는 데 있다. 권력을 위임받는 대리인들의 집합소가 바로 정당이다. 무소속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정권을 잡기 어렵기 대문에 대표성이나 책임성이 떨어진다. 결국 민주주의의 핵심은 특정 이념과 정책을 앞세워 공직 후보자를 내고, 국민의 심판으로 권력을 잡거나 놓는 정당에 있다. 서양의 정당들이 1백년이상 지속되면서 이념과 정책을 가다듬고, 정권을 지속적으로 교체하며 국정을 책임지는 일은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의 이상형태로 불려진다.

4)한국의 전당대회

우리의 현실은...우리나라 정당들도 당헌에 정해진 대로 전당대회를 치른다. 전국 각지서 진성 당원들이 모여 당대표도 뽑고, 당헌도 수정한다. 그런데, 이 전당대회가 한 정당의 모든 것을 다 보여 주는 진정한 당원들의 행사라는 인상을 심어 주지는 못한다. 열린 우리당, 한나라당, 민주 노동당, 민주당... 마찬가지다. 현재 의석을 갖고 의미있는 활동을 펼치는 이 4개의 정당 가운데 10년 이상된 이름을 가지 정당이 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10년 뒤에도 존속할 정당이 있는지 고민하면 자괴스럽기까지 하다. 한치 앞, 몇 년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당정치 현실. 현대 한국 정치에서 정당은 이념이나 정책이 아니라 특정인물(人物)과 지역색(地域色)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왔다(離合集散). 조선시대 붕당(朋黨)정치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사색당파(四色黨派)의 붕당정치는 어디까지나 통치관을 놓고 이리저리 갈린 일종의 이념정치였다.

지금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다시 새로운 정당들이 인물중심으로 패거리 짓기에 몰두하는 중이다. 선거 끝나면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정당들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다. 기존 정당들도 '헤쳐 모여'라는 한국 정치의 고전적인 전략 아래 대선 승리를 위한 판짜기에 돌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뿐 아니라 국력의 낭비다. 국가 발전에 주력해야할 인재들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 정당 만들기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 영국, 나아가 유럽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한 만큼 정치 지도자들이 선진화된 정당 문화와 정당 정치가 무엇인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 볼 시점에 이르렀다. 십 년을 넘어 백 년 넘게 이어질 정당의 진정한 전당대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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