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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8월 초 제가 영화와 함께 맡고 있는 문화관광부에서 유진룡 차관 경질 파문이 일어 조짐이 심상치 않더니 바다이야기 등 성인게임 사태가 연일 주요뉴스를 차지하는 바람에 영화 쪽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제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로 넘어가서 한숨 돌리는 듯합니다. 8월 한달을 바쁘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바깥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가을을 맞이하는군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만든 송해성 감독 하면 무엇보다도 '파이란'이 떠오릅니다. 얼굴 조차 보지 못한 불법 체류자와 3류 건달 사이의 이색적이지만 공감의 폭이 컸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극장 흥행에서는 초대형 흥행작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불운까지 겹쳐 그리 큰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입소문을 타고 '파사모'라는 매니아 그룹까지 형성될 정도로 뒷바람이 무서웠던 영화였습니다.

불법체류자이자 자신과 위장결혼을 했던 장백지의 쓸쓸하고 슬픈 죽음을 접하고 스산한 바닷가에서 꺽꺽거리며 울음을 삼키던 최민식의 연기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 한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날리는 최민식 연기의 최고봉이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습니다.

저도 뒤늦게 입소문을 듣고 비디오를 빌려다 봤는데 마음이 쓸쓸해서 그랬는지 강재의 별볼일 없음과, 고통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점, 허무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려가다가 예상과 달리 큰 폭발 없이 바닷 속 깊은 곳으로 돌덩어리가 가라앉듯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묵직한 감동을 오래 간직하게 됐습니다.

감독의 내공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 다음 작품을 기다렸는데 후속작 '역도산' 역시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흥행은 참패를 겪었습니다. 다시 메가폰을 잡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형수와 부유하지만 깊은 상처를 품고 행복하지 못한 여자와의 사랑이라는 극단적이면서 통속적인 얘기를 강동원, 이나영이라는 젊은 배우들을 기용해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했었는데, 역시 감독의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줍니다.

외국유학을 다녀와 미대교수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유정은 학교재단 이사장이라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 속해있지만 15살 이후 세 번째 자살을 기도하다 실패하고 병원에 입원합니다. 자신의 고모인 모니카 수녀(윤여정)의 손에 이끌려 교도소를 찾고 거기서 자신을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사형수 윤수(강동원)를 만납니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고아로 밑바닥에서 살다가 얼떨결에 살인을 저지른 윤수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고 간혹 극단적인 폭력으로 터뜨려버리기도 하는 사고뭉치입니다. 사형수 윤수가 퍼붓는 폭언에 고모는 쩔쩔매고 따뜻한 온정을 싸늘하게 외면하는 윤수의 모습에 코웃음을 치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호기심에 이끌려 한 번 두 번 윤수를 만나게 되고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서로의 '진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사형수와 부유하지만 비뚤어진 여인이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다분히 통속적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꼼꼼한 연출로 이런 통속의 경계를 넘나들며 균형을 잘 잡아갑니다. 또 두 주연배우 뿐 아니라 김지영, 강신일, 정영숙, 윤여정, 김부선 등 조연들까지도 연기력의 100% 이상을 뽑아냅니다.

꽃미남 스타로 반짝 인기를 끌 것 같았던 강동원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아무렇게나 짧게 깎은 머리에 수의를 입고 나옵니다. 이나영도 반항적이고 삶의 의욕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얼굴치장, 몸치장에 신경쓸 수 없는 설정으로 치장하면 그 어떤 배우들보다  예쁜 두 남녀 배우들은 오롯이 연기력으로만 승부를 걸고 그 승부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둡니다.

       

영화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갈 무렵 희생자의 어머니(김지영)가 교도소로 찾아와 윤수를 만나는 장면은 배우의 호연과 감독의 내공이 결합해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줍니다. (시사회때 이 장면부터 묵직한 눈물이 터지기 시작해 막판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흐느끼고 많은 남성들까지 눈물을 훔칩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 눈치보느라 맘껏 울지 못해 평일 한적한 극장을 다시 찾을까 생각중입니다. 공포영화 보면서 맘껏 비명도 질러보고 슬픈 영화보면서 꺼이꺼이 울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용서와 구원이라는 종교적 요소, 사형제도 폐지 논쟁이라는 사회적 요소에 대해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감독은 이색적인 멜로라는 기본 뼈대를 충실하게, 담담하게 밀고 나갑니다. 서로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풀어나가고 과거 회상장면을 통해 캐릭터에 살을 붙이고 폴라로이드 사진과 잡초같은 자그마한 디테일이 후반부에 다시 한번 새로운 의미를 더해 감동을 증폭시킵니다.

사형수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이미 여러 번 방송 전파를 타 그들의 특성, 변화과정 등에 대해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윤수의 변화가 학습에 의한 고정관념에 녹아들어 버리는 단점이 아쉽지만 이색적인 통속 멜로라는 틀로 본다면 보편적 감정에 호소하는 능력이 만만치 않고 또 빼어난 솜씨를 부정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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