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영화제
지난 30일부터 이탈리아 북동부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움 바닷가 도시 베네치아에서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9일까지 지속될 '베네치아 영화제'는 1932년 8월 시작된 세계 최초의 영화제다. 2월의 베를린 영화제, 5월의 깐느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최우수 작품에 '산마르코 금사자상(金獅子賞, (Golden Lion of St. Marco)을 수여하는 베네치아 영화제는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1961년 제22회 때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처음 참가했고, 1981년 이두용 감독의 '피막'이 본상은 아니지만, 6명의 감독에게 주는 ISDAP상을 받았다. 마침내 1987년 한국영화의 전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주연 강수연이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탔다. 2000년 김기덕 감독의 '섬'에 이어 2002년 이창동 감독이 '오아시스'로 본상인 감독상을 받고 문소리는 신인 여배우상을 받았으니 이정도면 그리 나쁜 인연은 아니다.
베니스 영화제, '더 퀸(The Queen)' 첫 공개
이번 베니스 영화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 때문이다. 다이애나의 죽음을 다룬 영화 '더 퀸(The Queen)'. 스테판 프리어스(Stephen Frears) 감독이 선보인 작품 '더 퀸'은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이 영화는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사후(死後) 일주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데임(Dame) 작위를 받고 또 지난 8월 27일 제58회 에미상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헬렌 미렌(Helen Mirren)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을 연기했다. 그녀가 에미상을 탄 역은 공교롭게도 영국 TV 채널 4의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1)'에서 여왕역이다. 여왕역을 도맡아하는 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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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퀸'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을 밭은 헬렌 미렌. |
'퀸'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에딘버러 공작) 역은 제임스 크롬웰(James Cromwell), 찰스 왕세자 역은 알렉스 제닝스(Alex Jennings), 블레어 총리 역은 마이클 쉰(Michael Sheen)이 맡았다. 다이애나 역은 배우 대신 뉴스와 다큐멘터리의 실제 화면을 사용하는 기법을 썼다. 현실과 연기의 조합.
반(反)왕정론자 출신의 여배우 헬렌 미렌
베니스 영화제가 '더 퀸'으로 주목 받는다면 '더 퀸'은 주인공 헬렌 미렌 때문에 더 관심을 모은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텔리그라프(Daily Telegraph)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맡은 미렌과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서 밝힌 미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45년 우리식으로 해방동이니 60을 넘긴 미렌은 왕정제에 대해 상반된 생각의 소유자다. 근원은 그녀의 가정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침체기에 태어나 자란 그녀의 러시아 출신 아버지는 좌파적 견해를 갖고 있었고, 전형적인 런던 토박이(Cockney) 노동자 출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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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블레어 총리역을 맡은 마이크 쉰. 여왕에게 다이애나의 장례식에 참석하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
무신론자(Atheist)요 사회주의자(Socialist)였던 부모는 따라서 영국 국교회 인 성공회의 수장이라는 믿음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저녁마다 밥상을 놓고 사회적 주제에 대해 토론을 갖곤 했던 그녀가 군주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자연스런 배경이다. 1960년대 그녀는 급진적이었고, 반체제적인 그런 여배우였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만약 부모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면 점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셨을 거예요" 라고 말한다. 그녀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말해준다. 그녀가 거부감 없이 여왕 역을 맡은 것도 이를 말해준다.
여왕과 헬렌 미렌, 외모와 잘 웃지 않는 공통점
사실 미렌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닮았다. 그녀 자신도 "내가 젊었을 때 가발을 쓰거나 짙은 색 머리 염색을 해야 할 경우 마가레트 공주처럼 보였어요. (When I was younger and occasionally had to wear a wig or have dark hair, I immediately looked very like Princess Margaret)"라고 말할 정도다. 마가레트 공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여동생이다. 부왕인 조지 6세의 두 딸 중 막내로 1930년 생인데,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사랑을 위해 왕위를 던져버림으로써 아버지가 왕이 되자 언니 엘리자베스 에 이어 왕위 계승 2순위에 올랐던 여인이다. 마가레트 공주는 언니는 물론 어머니 보다 먼저 2002년 숨졌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미렌은 외모 외에 공통점이 또 있다. 잘 웃지 않는 것. 그녀나 여왕이나 웃는 게 아니라(not a smile) 얼굴에서 입을 아래로 약간 내리는 것( but a slight downturn of the mouth)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여왕이다 보니 늘 우아하고, 점잖고,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두 가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웃음과 진정 마음에서 나오는 순수한 웃음. 여왕도 아닌 미렌은 왜 잘 웃지 않는 것일까. 러시아의 기질을 닮은 것인가. "내 얼굴인데 내가 왜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웃어야 하는가" 그녀가 던지는 물음이다. 이렇다 보니, 그녀는 잘 웃지 않는 러시아나 폴란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서유럽으로 올수록 사람들이 더 잘 웃는다. 민족적인 특질인지 공산주의 치하에서 그렇게 됐는지...
영화, 논쟁 야기할 듯
이 영화는 개봉 될 경우 논쟁을 야기할 지도 모른다. 특히 영화에 현재 통치중인 여왕을 다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불쾌하게 생각하는 군주제의 열렬한 옹호론자(monarchists)로 부터 어떤 반응이 올 지는 자명하다. 이점?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고... 또 법원이 그것을 심판한다. 인간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법원의 판사가 사전 심의 한다는 것인지. 아직 우리의 민주주의와 문화 예술, 언론, 사법제도의 수준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서구사회와 비교되는 대목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소재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이 영화는 극본을 맡은 피터 모간(Peter Morgan)의 의도는 일견 단순해 보인다. 다이애나가 죽던 여름 영국 왕실의 여름 별장이 있는 스코틀랜드 발모럴성(Balmoral Castle)에서 무슨 일어났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이다. 왕실 가족들이 다이애나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통해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추측할 수 있도록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이애나의 장례식에 오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발모럴성에 그냥 머무르려 했는데, 신출내기 총리 블레어가 간청하는 바람에 참석을 수락한 것으로 그려진다. 자칫 군주제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블레어의 호소... 그렇다면 결론은 이미 나 있다. 다이애나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여부를 떠나 다이애나가 영국왕실에서 차지하는 위상 말이다. 감독과 관객들은 다이애나가 결혼생활의 희생자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희극적 요소도
이 영화가 갖는 또 다른 측면은 코메디에 가까운 일부 영화 내용. 1996년 총리가 된 블레어가 다우닝가 10번지 자신의 총리 관저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영국 프리미어 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Newcastle United, 영국 북동부 도시 뉴캐슬의 축구팀. 영국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라는 쉬어러가 활약한 팀이고 현재 부상중인 마이클 오언이 소속된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쉽게 한국서 대통령이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있다고 치자. 이 역시 대통령 모독으로 들고 일어날 일이다. 블레어 총리 부인 셰리 여사의 과도한 예의도 웃음을 자애내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여왕과 관련한 대목. 남편 필립공이 침대에 오르며 부인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저리 좀 비켜봐요, 양배추"(Move over, cabbage)라는 대사가 나온다. 극본을 맡은 작가 모건(Morgan)은 양배추라는 말이 실제 필립공이 여왕에게 다정스러움을 나타내는 애칭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이런 유머가 너무 잔인한 측면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미렌, "지금 왕정제 비판은 어리석은 일"
미렌은 거듭 말한다. 왕정제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것은 지난날 이라고. 그녀는 "지금 군주제에 대해 험담하는 것은 진부하며 어리석다. 나이가 들면서 무례해진다면 그것은 유치한 일"(It becomes banal and silly to rail against it. Just being rude, as you get older, you think, oh, it's infantile.)이라고 못박는다. 그녀는 1997년 그 어두웠던 장례 일주일간의 시간을 지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인기를 회복했다고 인정한다. 사람들은 여왕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미렌은 윈저 왕가(the Windsors, 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집안)가 우리를 위해 봉사했다고 여기고 있다.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우리를 위해 뭔가 좀더 좋은 일을 했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 때 마다 그녀가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위해 봉사해왔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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