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찾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 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베니스가 보여주는 존경과 사랑이었습니다. 영화제 공식 TV 채널은 기타노 다케시의 인터뷰를 자주 틀어줬고 곳곳에서 이번 출품작 '자토이치'는 어떻다더라 하는 말이 들려 관심 많구나 느꼈는데, 프레스 센터에 설치된 대형 TV에 기타노 다케시 얼굴이 나오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마치 실제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TV에 대고 박수치며 환호까지 하는 것을 보며 단순한 관심 이상의 애정과 자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1997년 '하나비'로 베니스 그랑프리를 거머쥐며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베니스로서는 자신이 키운 재능 있는 일본 감독이라는 자부심과 결합된 것으로 설명하더군요. 이후에도 기타노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 단골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기자들은 은근히 질투를 느끼며 '우리도 저런 감독 한두 명쯤은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오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유럽에서 한국영화를 알리는 일을 주로 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당시 김 감독의 '봄, 여름,...'이 로카르노 영화제에 진출했었고 대상이 유력시됐지만 청년비평가상 등 4개 부문 수상에 그친바 있었습니다. 이 분은 '로카르노가 큰 실수를 했다', '김기덕이 대상이라고 다들 예측했는데 심사가 불공정했다'고 아주 비분강개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각종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700만 관객을 넘어서 1000만 고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독재국가에서 선전 영화를 만들어 놓고 주민들을 극장으로 동원한다고 해도 나오기 어려운 수치여서 봉준호 감독 본인도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럽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김기덕 감독이 신작 영화 '시간'을 개봉을 앞두고 기자시사 후 간담회 자리에서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인터넷에서는 동정과 이해의 의견도 있었지만 관객에 대한 오만한 비난이라면서 '이민가라'는 등 김 감독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봤는데 모 포털사이트에서 김 감독의 발언을 "왜 내 영화를 안 봐주는거야, 이제 너희들과는 같이 못 놀겠다"라며 친절하게(?) 해석해서 제목을 뽑은 부정적 시각의 기사를 대문에 배치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김 감독은 2004년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빈집'을 개봉할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었고 지난해 '활'을 만들면서 생각을 더욱 굳혔다고 밝혔습니다. '빈집'은 9만명 남짓한 관객을 모았고 감독이 자비를 들여 단관 개봉으로 전국 순회 상영을 시도했던 '활'은 극장측의 사정으로 일주일도 못 가 중단돼 1천명 정도의 초라하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시간'은 당초 해외 수출만 하고 국내 개봉은 아예 계획하고 있지 않았는데 영화계 인사들과 팬들 사이에서 국내개봉 추진 운동이 벌어졌고 뒤늦게 국내 개봉 판권을 영화사 스폰지가 사들여 8월 24일 전국 1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을 하게 됐습니다. 보통 영화 판권은 제작사가 갖게 되는데 이 영화는 김기덕 감독이 제작까지 했기 때문에 감독이 갖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마음의 결정을 절대 바꾸지 않는 고집이 세다고 하는데 20여개국에 수출했던 것처럼 한국에도 수출하는 개념으로 결정했다는 명분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김기덕 감독의 13개 작품 가운데 최다 관객이 든 작품은 2001년 작품 '나쁜 남자'로 전국 72만 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여대생을 포주가 납치해 감금하고 매춘을 강요하는데 여대생은 오히려 포주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페미니즘 진영 뿐 아니라 일반관객들로부터도 강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 감독의 영화에 흐르는 폭력성과 극단성 때문에 싫어하는 차원을 넘어 혐오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이후 김 감독의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 잇단 수상을 하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한국의 작가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점점 관객 수가 줄어들고 배급망을 타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해외에서는 인정받지만 혹독한 검열 때문에 자국내 개봉을 못하고 유랑하는 중국의 몇몇 감독들처럼 모국어를 알아듣는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질 기회를 잡기가 어렵고, 또 그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하는데 자막으로 이해하는 다른 나라 영화계와 관객들은 관심을 갖고 인정하니 그 괴리에서 느끼는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를 배급을 맡게 된 영화사의 대표와 통화를 했는데 "김 감독이 '빈집' 개봉 당시 배급을 맡았던 청어람에 대해 관심과 애정으로 돈을 들여 배급을 해줬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금전적 손실을 끼친 점에 대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차원에서 극구 반대하다가 영화 살리기 운동과 영화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어렵게 개봉을 결정하게 됐다"며 그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김 감독의 발언 내용을 보면 분명 자신의 영화를 외면하는 관객들에 대한 불만도 표출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들이 설 땅이 점점 좁아지는 현실, 그 현실을 움직이는 현재 한국영화의 산업 구조에 대한 불만이 더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해외의 관심과 국내의 관심 사이에 괴리가 좁혀지고, 주류 상업영화들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상상력과 감성을 때로는 거칠게 내뿜는 독립영화들을 지금보다 쉽게 만날 수 있고, 상업영화의 경우 '저 영화 봐야지' 맘먹고 있다가 1, 2주가 지난 뒤 극장을 찾았을 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낭패의 빈도가 줄어들고, 국내 영화시장이 다른 문화선진국들이 부러워할 만큼 규모가 커지고 탄탄해지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감독들이 더 나오고, 그 감독들이 더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며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하는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럼 너는 그렇게 잘났냐'는 식의 맞불 놓기 비난보다는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영화계 사람들이 문제점들에 대해 되돌아보고 더 나은 쪽으로 나가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날 기자간담회의 김기덕 감독의 발언 전문을 싣습니다.(기자들의 질문은 일부 생략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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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에 대해 소개?)
12시에서 시작해서 12시에서 끝나는 영화입니다.
시간은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굉장히 광범위한 제목이구요. 뭐 언론에 대해서 특별히 뭐 그런 건 없고요. 이미지 복사가 계속 반복되는 게 조금 별로 좋은것 같지 않아서……. 좀 화가 난 그걸 표현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개봉 결정 계기는?)
저는 제 영화가, <빈집>, <사마리아>, <활>, <시간> 이러한 영화들은 약 20개국 이상 대부분 수출이 됐고 대한민국도 그 수출한 나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
본인들이 찾아야죠 뭐.
(괴물의 흥행성공에 대해?)
이 프로젝트 내내 생각한 질문 중 가장 무서운 질문이 이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답을 준비 했었는데 어쨌든 가장 피 흘리는 감독으로서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관객의 수준이 잘 만났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현아 씨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성현아 씨는 저희 PD가 캐스팅을 했습니다. 헤이리에 지금 중국 예술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거든요. 좋은 작품들이 많이 와있고 한번 가서 보시면 굉장히 많은 새로운 현대의식에 대해서 좋은 경험을 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제에 갔을 때 폐막작을 봤을 때 계속 두 여배우가 얼굴이 헷갈렸습니다. 그때 이 영화를 생각했습니다.
일?을 때, 거슬러 올라가면 <빈집>을 개봉했을 때부터 아마 제가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어떤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조금 전환된 시기가 바로 <빈집> 개봉 이후였습니다. 그때 <빈집>이 좋은 성적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때 각오한 것이 <활>은 개봉하지 않는게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그 다음에 <활>은 단관개봉을 했지만 극장에서 아마 어려움이 많았는지 일주일이 안되서 순회상영이 중단되었구요. 그 후에 제가 맘을 먹은 것은 <시간>을 개봉하지 않을 것이다. 부산영화제에서 제가 아까 000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맘을 먹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제가 한번 먹으면 절대 뒤로 돌아가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떠한 좋은 조건이 주어 진다해도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늦었다고 저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죠. 제가 이 한국사회에서 한국영화계에서 한국관객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든 없던 이미 늦었다.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그것이 제 철학입니다. 앞으로도. 근데 왜 시간을 개봉했느냐. 아까 말한 것처럼 시간을 판매한 30개 나라 중 한 나라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는 미국에서도 <봄여름가을겨울> 개봉할 때 가서 프로모션 기자회견을 했었기 때문에 그 자리와 똑같은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시간> 을 마지막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의 결과에 따라서 판매를 하는것 조차도 마지막일수 있다는 것이죠. 이건 협박으로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불만, 불평으로 들어도 어쩔 수 없구요. 하소연으로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신문에 따라서 하소연이라고 표현되기도 하고 불만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다양하게 표현되겠죠?
그리고 저는 올해 제 영화를 출품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의 어떤 영화제에도 제 영화를 출품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다음영화를 그러면 어떻게 찍느냐? 저는 제 스스로 장애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주 엄청난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고 그 장애물을 저 스스로 통과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영화감독으로서 인정하지 않겠죠. 그러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되겠죠? 제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것이 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 무엇 때문인지는 자문자답을 수없이 반복할 것입니다. 제 스스로.
제가 안경 쓰고 기자회견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안경 벗고 제가 아는 분들도 보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안경을 쓴 것이고 어쨌든 한국영화계는 아까 제가 어떤 분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관객의 수준이 만난 최고점에 도달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굉장히 부정적인 해석이기도 하고 긍정적인 해석이기도 한데 듣는 사람에 따라서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13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들이 대부분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관객의 숫자의 부가가치가 아니라 아마 한국 영화계에서 한국영화 관객들이 제 영화를 받아들이는 이해하는 부분에서 어떤 부가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하는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이 자리가 제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전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미 늦은 거죠. 저는 제가 작업하고 싶은 한국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같이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제 맘에는 이 영화에 참여했던 분들 배우들에 대한 마음 때문에 사실은 스폰지에 수출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다음영화를 장애물을 극복하고 만들게 된다면 그 영화들이 분명히 개봉되지 않는데 국내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은 상당히 저한테 많은걸 양보해야 되기 때문에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다음 영화를 준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간> 이라는 영화에 어떤 의미에 대해서 제가 어떤 답변을 못 드렸는데 참으로 많이 미안합니다. 왜냐면 제 영화는 수없이 설명되어졌고 수없이 저는 인터뷰를 했었고 수없이 해석을 저는 반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수입해주신 우리 스폰지 대표님에게 감사드리고 그리고 희망하는 것은 이 영화가 참 20만 명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도 <봄여름가을겨울>이 32만 명이 들었고 프랑스에서도 <빈집>이 20만 명이 들었고 이태리에서도 15만 명 이상이 들었고 독일에서도 20만 명 이상이 제 영화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만은 넘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제 생각이 조금은 바뀔 수도 있겠죠. 어쨌든 호기심에서든 관심에서든 애정에서든 그냥이든 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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