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의회가 현지시간으로 3일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번 독립선언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됐던 옛 공산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완전히 해체됐습니다.
남 슬라브인의 땅이라는 뜻의 유고슬라비아는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유럽의 동남부 발칸 반도에 연이어 존재했던 나라를 말합니다.
처음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18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란 이름으로 건국되었으며 1929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바뀌었으나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추축국의 침공으로 멸망했습니다.
다음으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인 1945년 "유고슬라비아 민주연방"이라는 이름으로 건국되었습니다. 1946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인민공화국"으로, 다시 1963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992년 여섯개의 구성 공화국 중 넷인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 공화국·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분리 독립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은 1992년 잔류한 세르비아(코소보와 보이보디나 자치주 포함)와 몬테네그로 영토에 발족했습니다. 2003년에는 좀 더 느슨한 연방 체제로 바뀌면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개명, 유고슬라비아라는 명칭은 폐지되었습니다.
특히 지난 3월 대세르비아주의를 제창하던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의 사망에 이어 몬테네그로의 독립으로 결국 유고슬라비아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밀로셰비치는 1989년 5월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대 세르비아' 주의를 제창하여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에 거주하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공연한 민족주의를 고취시켜 세르비아에 의한 유고연방 통치에 대한 야심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민족주의적 정책은 다양한 민족이 혼재하는 유고에 필연적으로 유혈사태를 야기시켰습니다.
유고연방이 해체되기 시작할 무렵인 1992년 보스니아는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보스니아내 소수민족인 세르비아계도 보스니아에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어 1992년 4월 EU가 보스니아 독립을 승인하자 이에 반발한 세르비아계와 유고연합군은 보스니아회교정부를 공격했습니다. 탈냉전 이후 보스니아 내전은 유럽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로 등장하였고 이에 개입을 미루어 오던 UN이 군사개입에 나섰고 보스니아 내전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휴전과 재확전을 반복하던 보스니아 내전은 1995년 12월 미국 의 주도하에 분쟁당사자와 신유고연방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25만 사망하고 300만 이상 난민이 발생한 내전은 끝이 났습니다.
밀로셰비치는 1998년에도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를 자극, 코소보사태를 일으켜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 85만 명을 몰아내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 대선 후 민중봉기로 코슈투니차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1999년 5월 국제유고전범재판소는 밀로셰비치를 전쟁범죄, 학살죄,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하였고, 2001년 4월 세르비아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전범재판을 받던 도중인 올해 3월 11일 밀로셰비치는 감옥에서 숨졌고 이로써 그의 '대 세르비아'주의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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