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유의하세요.)
맨발의 기봉이는 TV 다큐멘터리 [인간시대]에 나왔던 실존 인물을 영화화했습니다. 어릴 적 열병을 앓아 몸은 40대지만 정신연령은 8살에 머물러있는 인물로 8순 노모에 대한 효도가 극진해서 방영당시 많은 시청자들을 울린 바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영화화하는데는 기봉 역으로 나오는 신현준씨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자신이 출연했던 비천무를 찍을 때 조감독이었던 친구 권수경 감독에게 녹화 테이프를 빌려주며 영화화를 타진했고 노모 역으로 김수미씨를 캐스팅하기 위해 직접 편지도 쓰고 방송국 녹화장으로 직접 찾아가 거듭 부탁을 드렸다고 합니다.
충청도 바닷가의 아름다운 시골마을 다랭이에 40살 노총각 기봉이(신현준)가 8순 노모(김수미)를 모시며 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앓은 열병으로 몸도 불편하고 지능은 8살 언저리에 머물러 있지만 착하고 성실해서 동네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받고 있습니다. 축사 분뇨치우기, 농약치기 같은 일을 하며 받는 일당으로 노모와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식기 전에 엄마한테 갖다 드리려고 맨발로 뛰어다녀 버릇해서 달리기 하나만큼은 잘 합니다.
엉겁결에 동네 달리기 대회에 참가해 우승까지 하게 되자 항상 옆 동네에 비해 열등감을 느끼던 이장님(임하룡)은 기봉이를 훈련시켜서 전국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시키려고 합니다. 이가 부실해서 제대로 씹지 못해 항상 소화불량에 고생하는 엄마에게 틀니를 해줄 비용 마련을 위해 기봉이는 참가를 결정하고 열심히 훈련합니다. 한참 훈련에 열을 올리다가 갑자기 쓰러지고 병원 진단결과 심장이 약해 달리기는 무리라는 진단이 나오자 이장님과 기봉이는 낭패에 빠집니다.
신현준은 장시간의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몸과 말이 불편한 기봉이 역할을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김수미, 임하룡 두 중견 연기자도 균형을 잘 잡아나가며 안정적인 연기를 펼칩니다. 김수미씨는 일용엄니와 어떻게 차별할 것인가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장님의 말썽꾸러기 아들로 나오는 탁재훈도 영화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닙니다.
기봉이가 마라톤 대회라는 목표를 향해 나가며 시련을 겪고 또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드라마의 기본 틀을 구축했는데 영화는 이런 내러티브의 전개보다는 기봉이와 엄마, 이장, 동네 사람들의 관계에서 기봉이라는 인간의 인품과 고귀함을 엿보는 것이 영화의 주제라고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동의 기제는 그리 효율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달리기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꾸려가지만 그보다는 기봉이와 엄마와의 소박하고 극진한 효에 대한 에피소드들만 나열되는 느낌입니다. 이런 에피소드들을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려 마지막에 러브하우스같은 감동과 여운이남는 클라이맥스를 보여줘야 하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시사회를 같이 본 동료 기자가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많이 울었는데 영화는 조금 울려다 말았다고 하더군요, 실제 기봉씨의 생활에 카메라를 들이댄 다큐멘터리와 영화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큐멘터리는 편집이라는 인공적인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실제 생활을 연출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는 영화의 의도와 관계없는 또는 방해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잔가지 치기처럼 배제하고 가공하는데 바로 이 ‘잔가지’가 감동의 힘이 될 수 있고 ‘가공’이 오히려 감동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주인공들도 착한데 이장님 아들(탁재훈 분)만 빼고는 동네사람들 모두 착하고, 기봉이를 달리기 대회에 악착같이 내보내려는 이장님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중심을 잘 못 잡아 가장 감동을 느껴야할 달리기 장면의 감정고조를 방해합니다. 사족 같은 이야기지만 동네 허드렛일 도와주고 받는 품삯으로 노모와 생활을 꾸려가는 기봉이가 만사 제쳐두고 달리기 연습에 몰두할 때 가난한 모자의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했는지, 이장님이 계속 도와줬는지, 그동안 저축해놓은 돈으로 살았는지 불명확한 점도 불만입니다.
이런 구조상의 미흡함과 뒷부분의 관습적인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휴먼드라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자신도 불편한 몸이지만 엄마를 더 걱정하고 위해주는 기봉이, 또 엄마 앞에서 재롱도 무리고 응석도 부려보는 기봉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훈훈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세상살이에 시달린다는 핑계로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부모님과 효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신현준씨는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엄마에게 전화라도 한통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다가 쓰러진 기봉이의 뇌리에 스치는 엄마와의 한때를 그린 장면의 감동이 가장 크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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