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클래식 음악계 세계적인 '스타'들의 공연이 참 많았습니다. 지난달말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공연을 다녀와서 감상을 쓰려 했지만 여유가 나지 않아 결국 못 썼는데, 주말에 열린 피아니스트 키신의 공연은, 도저히 글 한 줄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제 블로그(http://ublog.sbs.co.kr/shkim0423)에도 올린 글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기 글을 올리고 나니, 제가 처음에 썼던대로 띄어쓰기와 단락 구분이 제대로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읽기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지난 토요일밤 11시 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벅찬 기분으로 나섰다.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바깥까지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귀가가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사인받는 건 포기했지만 지금도 아쉽다.
'신동'으로 일찌감치 이름을 날리던 키신.
하지만 한국 팬들과의 만남은 공연기획사들의 10년이 넘는 구애 끝에 이뤄졌다. 키신의 '전설'을 음반으로만 접하던 팬들은 첫 내한공연 소식에이미 한 달 전, 모든 표를 동나게 했다.
그리고 그 '전설'은 관객들의 눈앞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콘서트홀은 공연 시작 한참 전부터 근래 들어 가장 많은 관객들로 붐볐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로비에서 모니터를 통해서나마 그의 모습을 보겠다며 모여들었다.
합창석까지 모두 꽉 찬 콘서트홀에는 기대와 설렘이 넘실댔다. 약간 뻣뻣한 걸음에, 트레이드마크인 마구 부풀려진 곱슬머리로 등장한 키신. 객석의 환호성은 대중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베토벤 소나타 3번과 26번 '고별'을 연주한 1부. 소나타 3번은 나도 어렸을 때 쳤던 곡인데, 피아노에서 손 놓은 지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키신의 연주를 보며 내가 그 때 얼마나 이 곡을 멋없고 지루하게 쳤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완벽에 가까운 기교와 온몸으로 피아노를 향해 돌진하는 듯한 에너지. 몰아칠 때는 무서울 정도로 격정적으로 몰아치는가 하면,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여리고
아름다운 연주.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감정 과잉이라는 위험을 피해가며, 키신은 감정의 진폭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관객의 넋을 빼앗았다.
나는 자신의 피아노 선율에 따라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를, 마치 환청인 양 들은 듯도 했다.
1부가 끝난 뒤 휴식시간, 로비에서는 벌써부터 관객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남편은 '키신이 모짜르트 같은 천재인가 보다'고 했고, 공연계의 한 지인은 '정말 미친 놈 같다'고까지 했다.
쇼팽의 스케르쪼 4곡을 연주한 2부는 더 환상적이었다. 자유롭고 낭만적인 그의 연주에 따라 나는 공중으로 솟구치듯 희열감에 들뜨기도 했고, 온 몸이 나른해지는 애상에 젖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그리고 아마도 쇼팽의 스케르쪼 가운데 가장 유명할)2번, 의미심장한 셋잇단음표로 구성된 첫 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환희로 온 몸을 떨었다.
그리고, 피아노 선율에 따라 흥얼거리는 키신의 목소리도 이제는 분명히 들리기 시작했다. 키신도, 나도, 다른관객들도, 음악속에 푹 빠져버렸다.
키신이 땀에 젖은 채 스케르쪼 4번까지 연주를 모두 마쳤을 때, 객석은 그야말로 '환호의 도가니'였다.
이어진 앙코르는 '대단했다'는 말로는 형용하기 어렵다. 무려 10곡의 앙코르 연주에다, 횟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운 커튼콜. 공연 기획사측이 밝힌 앙코르 곡의 목록이다. 공연 3부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1. 시마노프스키 에튜드 b-flat minor
2. 쇼팽 에튜드 Op. 10-4
3. 리스트 헝가리안 랩소디 No. 10
4. 쇼팽 왈츠 c-sharp minor
5. 쇼팽 왈츠 D-flat Major
6. 브람스 왈츠 A-flat Major
7. 베토벤 contra dances
8. 쇼팽 마주르카 No. 14
9. 베토벤 eccossaises
10. 거쉰 kicking the clouds
커튼콜이 거듭됐지만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두 기립했다. 조금이라도 키신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려는 관객들은 앞쪽으로 몰려들었다. 너도나도 손을 흔들고, '키신'의 이름을 부르고, 키신의 얼굴을 사진기에, 휴대전화에 담았다. 여기저기서 번쩍이는 불빛에, 시간이 지나도 잦아들지 않는 박수와 환호성.....
원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촬영이 안되지만, 앙코르가 5곡을 넘어가면서 공연장 직원들도 촬영을 더 이상 제지하지 않았다.
나도 음악회를 꽤 많이 봤지만, 이런 공연은 생전 처음이었다. 이건'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키신은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등장해 객석의 환호에 답례하고는 앙코르 곡들을 연주했다.
키신이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무려 10번째!!!) 거쉰의 경쾌한 곡을 연주하고 나서도 관객들은 박수를 그치지 않았다.
결국은 공연장 측에서 객석에 불을 환하게 켜서 '더이상의 앙코르는 없음'을 알렸다.
(나중에 기획사측 얘기를 들으니, 키신은 공연 들어가기 전에 '앙코르는 한 네 곡 정도로 예상하지만 관객 반응 봐서 한 8곡까지도 할 수 있다'고 했었단다. 기획사 직원은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무슨 여덟 곡까지!'했다는데. 하긴, 키신은 일본 공연에서는 열 네 차례까지 앙코르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관객이 원하면 원없이 한다'는 것 아닌가. 이것도 대단하다.)
앙코르 10곡을 다 듣고 로비로 나오니 11시 15분. 무려 1시간이 넘게 이어진 앙코르였다. 아마 커튼콜 때 키신이 객석을 향해 인사한 횟수만도 수백번은 될 거다.
내가 아는 한, 한국 클래식 음악 공연사에 기록이 아닐까 싶다. 800여명이 줄을 선 사인회는 새벽 1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고 한다. 관객들이 너무 몰리자 안전 문제를 염려한 공연장측이 키신에게 팬 사인회를 취소하자고 요청했지만, 키신은 괜찮다며 그냥 예정대로 사인회를 하자고 했단다.
놀이방에서 놀다 와서 로비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은우는 기다림에 지쳤는지, '앙코르가 너무 지루했어'하고 불평도 했지만, 이런 명언도 남겼다.
"엄마, 오늘 피아노 친 그 아저씨 이름이 뭐였지?"
"키신이잖아."
"아, 맞다, 키신. 그 이름 '귀신'이랑 비슷해서 웃겨. 킥킥."
정말 키신은 '귀신' 같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나 그의 '귀신같은 천재성'도 완벽을 추구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물거품이 됐을 것이다.
많은 '신동'들이 성장과 함께 그저 그런 연주자로 기억에서 잊혀지지만, '신동' 키신은 지금도 가장 인기있는 피아니스트로, 거장의 길을 향해 가고 있지 않은가.
많은 음악가들이 바쁜 해외 공연 일정 때문에 공연일자에 임박해 도착해리허설 몇 번 하고 무대에 서지만, 키신은 완벽한 공연을 위해 1년에 40차례 정도로 공연 횟수를 조절한다고 한다. 이번 공연 때도 키신은 며칠 전에 도착해 다른 일정은 전혀없이 연습에만 몰두했단다. 똑같은 레퍼토리로 이미 다른 나라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한국을 떠난 키신은 '바쁜 일정 때문에 앞으로 또 3-4년 안에는 어렵겠지만, 한국에 꼭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키신의 첫번째 한국 공연이 끝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벌써부터 그를 다시 볼 날을 기다리게 됐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브라보! '귀신' 같은 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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