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영영이별 영이별/청령포에 가고 싶다

청령포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BR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도 영월 청령포, 산과 강이 절묘하게 조화된 곳. 초록빛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서있고, 남한강 상류의 맑은 물이 휘돌아나가는 곳. 우거진 솔숲과 백사장이 그림 같은 곳. 그러나 아름다움

청령포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도 영월 청령포, 산과 강이 절묘하게 조화된 곳. 초록빛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서있고, 남한강 상류의 맑은 물이 휘돌아나가는 곳. 우거진 솔숲과 백사장이 그림 같은 곳. 그러나 아름다움 속에 애잔함과 한이 느껴지는 곳.


저는 2003년 여름 이 곳을 갔었지만 빗줄기가 거세 강을 건너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열 일곱 소년 단종이 갇혀 있었던 그 곳의 경치를 바라보기만 했었습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저는 영월로 유배되는 단종을 호송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비 앞에서, 숙연한 기분으로 서 있었습니다. 하늘도 물길도 우는 듯 했습니다. ‘저 물도 내 안 같아야’라고 읊은 시구가 실감났습니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꼭 다시 한 번 와 봐야겠다, 다짐하며 발길을 돌렸었습니다.

 

영영이별 영이별

얼마 전 연극 ‘영영이별 영이별’(산울림 소극장, 19일까지, 전화 334-5915)을 보다가 당시 청령포의 정경을 떠올렸습니다. ‘영영이별 영이별’은 비운의 단종비 정순왕후의 이야기를 풀어낸 모노 드라마입니다. 산울림 소극장 창립 20주년 기념공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원작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이별한 영영이별 다리, 청계천 영도교의 사연을 모티브로 써낸 김별아 씨의 소설. 연극 대본은 전옥란 씨가 썼습니다.


“나는 우는 듯 웃으며 죽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당신이 계신 그곳으로 갈 일밖에 없네요. 깊고 어두운 숲을 지나고 안개 자욱한 강을 건너는 머나먼 길이라지만 흔연한 마음에 한달음에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다만 심사에 깃드는 걱정은 헤어진 지 꼬박 예순다섯 해, 이제는 여든두 살의 백발노인이 되어버린 나를 행여 당신이 알아보지 못할까 하는 것뿐입니다.. ”


정순왕후 역의 윤석화 씨가 나직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이 대사를 읊는 순간부터, 저는 완전히 연극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우리말의 멋스러움이 아프도록 느껴지는 유장한 대사. 단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시조창과 살풀이춤. 저는 연극을 보는 내내 숨을 죽였습니다. 제 숨소리조차 이 아취 있는 무대에 방해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단종을 먼저 떠나보낸 뒤에도 5명의 왕이 바뀌는 것을 보며 천수를 다한 정순왕후. 왕비에서, 대역 죄인으로, 걸인으로, 날품팔이로,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여인.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살아내라는, 살아서 견뎌내라는 ‘삶의 준엄한 명령’에 복종했던 여인. 죽은 뒤 남편을 만날 것을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며 평생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여인.

 

"당신, 나를 다시 만나면 칭찬해 주셔요. 왜 이제야 왔나 탓하지 마시고 그동안 수고했다 애썼다 다독다독 어깨를 두들겨 주셔요.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삶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수는 없을지언정 질기고 모진 목숨을 이어 이만큼이나 오래 살아내고야 만 것이, 결국 내게 허락된 유일한 복수였으니까요."


단종애사의 뒤편, 잘 몰랐던 정순왕후의 모습을 만나며 저는 정순왕후의 아픔이 마치 제 것인 양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영영이별 다리를 건너는 통한의 이별, 그리고 단종의 죽음에,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흐느낌을 흑, 속으로 삼켰습니다. 연극을 보면서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치 제가 갔던 그 날, 청령포 하늘과 물도 울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청령포의 바위를 쓰다듬으며


‘영영이별 영이별’의 무대 한 구석에는 하얀 바위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이 바위가 자꾸만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이 걸터앉기 좋을 만한,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이 바위에 윤석화 씨가 앉아 독백하는 모습이 제 가슴을 쳤습니다. 연극이 끝난 뒤 윤석화 씨를 인터뷰할 때, 저도 이 바위 위에 살며시 앉아봤습니다.


“이 바위, 청령포에서 가져온 거예요. 영월군에서 협조를 받았죠.”


아, 그랬구나. 저는 청령포에서 온 이 바위를 쓰다듬었습니다. 청령포의 정경이 또 눈에 밟혔습니다. 윤석화 씨는 이 바위에 앉을 때마다 정순왕후의 영혼이 곁에 있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연기가 잘 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이 바위가 무대에 어울릴지 걱정을 했었는데, 가져다 놓고 나니 볼수록 정겹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이 연극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꼭 청령포를 다시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사랑’에 삶을 바쳤던 정순왕후. 그리고 단종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 싶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

 

**2003년 7월 청령포에 다녀왔을 때도 여기 글을 썼었습니다. 정치부에서 일할 때였군요. 당시에도 청령포는 무척이나 마음에 남는 곳이었습니다. 글을 보시려면-->

http://news.sbs.co.kr/sbsnews_NewsDetail.jhtml?news_id=N0311455987

 

**블로그

http://ublog.sbs.co.kr/shkim0423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