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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역의 추억'

안녕하세요? 설날이 코 앞입니다. 1월 1일 전후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를 무척 많이 했었는데, 다시 하고 있습니다. 이중과세라는 느낌도 들지만,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여러 번 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

안녕하세요? 설날이 코 앞입니다. 1월 1일 전후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를 무척 많이 했었는데, 다시 하고 있습니다. 이중과세라는 느낌도 들지만,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여러 번 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래 글은 '클럽 발코니' 1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지난해말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됐던 오페라 '파우스트'를 보고 나서 썼는데, 저의 '악역의 추억'이 담겨있는 글입니다. 대학 시절 연극반에 잠깐 있었다고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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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무대와 맺은 인연

지금이야 공연을 취재하는 기자가 돼 있지만, 나도 관객 앞에서 하는 공연에 출연한 적이있다. 대학 1학년 때 얘기다.

친한 과 선배 중에 연극반 소속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연극을 보러 다녔고 이른바 ‘문학 소녀’였던 나에게는, 연극 무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그 선배를 따라가 연극반에 가입한 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환상은 금세 깨지기 마련이다. 매주말 진행됐던 단체 연습에 몇 번 참여하면서, 나는 결코 ‘연기’라는 걸 할 끼도, 배짱도 없다는 걸 깨달았고, ‘천상 배우’ 같은 다른 친구들의 흘러넘치는 끼가 부러우면서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난 배우 못해. 그냥 관객이나 할래. 나는 얼마 후 연극반을 탈퇴했다.

여배우가 없어서......하필이면 악역을

그러나 나와 무대의 인연은 거기서 끊어지지 않았다. 2학기 들어 내가 다니던 단과대학에 연극반이 생겼다. 오래 전 없어진 단과대 연극반이 부활되는 것이었다. 연극반 부활과 함께 여는 워크숍 공연에는 당연히 여배우들도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단과 대학에는 여학생이 무척 적었다. 잠시라도 본부 연극반 소속이었던 나는, 거의 ‘의무적’으로 그 연극에 출연하게 됐다.

대학의 연극이 ‘사회에 대한 발언’이 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할 때였다. 대본은 나보다 1년 위의 선배가 썼다. 대본에는 5월 광주에서부터, 노동 문제, 통일 문제까지, 많은 얘기를 담아내려는 의욕이 넘쳤다. 지금 생각하면 엉성한 구석이 많은 대본이지만, 우리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대사의 토씨 하나를 놓고도 격렬한 토론을 자주 벌였다. 그 때마다 대본은 수정됐다. 특히 결말 부분은 진도가 나아가지 않아, 요즘 드라마 찍듯, 날마다 조금씩 나오는 ‘쪽 대본’을 들고 연습해야 했다.

 

나는 ‘천민자본주의’의 화신이라 할 벼락부자의 딸 역할을 맡았다. 치장에 공들이고, 사생활 문란하고, 간교하고, 탐욕스런 인물이다. 아버지가 짝지어준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서도 여러 애인과 ‘적절치 못한’ 연애를 즐기는가 하면, 자신을 쫓아다니는 순진한 대학생을 도둑으로 몰아붙이고, 마구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틀림없는 악역이었다.

 

나는 내 역할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다소 ‘야한’ 상황과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해 내기는 쉽지 않았다. 날마다 선배들에게 지적을 받았다. 그래도 연습이 진행될수록내 연기는, 내가 느끼기에도 조금씩 나아져갔다. ‘야,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그랬어’ 하는 선배의 칭찬을 들은 다음날, 나는 좀 더 역할에 몰입해 보려고 평소에 입지 않는 미니 스커트를 사 입고 연습장에 나갔다.

욕 먹고 기분 좋았던 사연

우여곡절을 거쳐 드디어 공연이 개막됐다. 첫날 공연은 소속 단과대학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했다. 비록 아마추어 연극이라 해도,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아, 이래서 연기를 하는구나’, 했다. 다음날부터는 출연자의 친구나 가족들이 주요 관객이었다. 나의 부모님과 동생들도 공연을 본다고 학교로 찾아왔다. 가족들 앞에서 연기하려니 약간 쑥스럽기도 했지만, 연극이 시작되자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연극이 끝나고 분장도 지우지 못한 채 가족들을 만났는데,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막내 동생이 씩씩대며 나에게 ‘보고’를 한다.

“누나, 아까, 어떤 아저씨가 누나 보고 욕했어.”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동생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남학생이, 내가 ‘싸가지 없는’ 대사를 읊고 퇴장하는 장면에서 ‘저런 미친 X!'하고 욕을 했단다. (어떤 대사였는지는,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순진한 동생은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그 학생에게 ’우리 누나한테 왜 욕해요?‘ 하고 대들었다는 거다.

“그 아저씨가, ‘저 여자가 네 누나니?’ 하더니, 잘 몰라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했어.”

 

동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보고를 마쳤고,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친 X!'이라는,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할 욕을 먹었는데도, 그 때문에 동생이 흥분했는데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연기를 그렇게 못 한 건 아니구나. 이게 악역 하는 배우의 ’보람(?)’이구나. 나는 큰 깨달음을 얻은 것만 같았다.

 

동생은 이상하다는 듯 내 표정을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 왜 누나 욕하는 거야? 에이 참, 누나, 왜 자꾸 웃기만 해!”

'파우스트'로 떠올린 '악역의 추억'

얼마 전, 성남아트센터가 제작한 오페라 ‘파우스트’를 보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공연 내내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은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주인공 마르그리트가 광란에 사로잡혀 자신이 낳은 아기를 목 졸라 죽일 때, 메피스토펠레스가 크게 웃으며 손뼉을 치는 장면에서 나는 소름이 쫙 끼쳤다. 자신의 왕국 발푸르기스에서 향락과 퇴폐와 광란에 빠져드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은, 욕망의 화신 그 자체였다.

사무엘 윤은 훌륭한 성악가이면서 탁월한 배우다. 그에게 ‘파우스트’는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의 출세작이나 다름없다. 그가 이미 잡혀 있던 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독일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것은 바로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집에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고행길을 마다 않고 분당까지 간 것도 그의 메피스토펠레스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공연 전 ‘영원히 잊지 못할, 끔찍한 악마를 보여주겠다’고 했었다. 과연 그의 메피스토펠레스는 끔찍했다. 나는 그의 열연에 매혹됐다. 그는 또 ‘야하고 적나라한 연기’를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은 걱정도 된다고 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친근감까지 느꼈다. 나도 악역을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안다는 생각에.

 

물론 내가 대학 시절 겪었던 악역의 경험이라는 것은, 사무엘 윤이 메피스토펠레스를 연기하기 위해 바쳤을 세월과 노력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공연을 보면서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상을 떠올리는 것은 관람객의 자유일 터, 나에게 오페라 ‘파우스트’는, ‘악역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기에 더욱 인상 깊은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관람객들이 빠져나간 오페라 극장 로비. 분장을 채 지우지 못한 사무엘 윤이 자신의 가족들과 환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무엘 윤에게 그 때 나처럼 어린 동생은 없는 것 같았다. 당시 누나가 욕먹는다고 흥분했던 내 동생도 이제는 군대까지 다녀온 어른이 됐다. 동생은 그 때 누나가 욕을 먹고도 웃었던 이유를, 악역을 맡은 배우의 보람을, 이해했을까. 나는 혼자 빙그레 웃으며 공연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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