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김일성 주석궁을 폭파하려는 목적으로 모집된 특공대원 30여 명 가운데 일부가 1969년 말이나 1970년 초 실미도로 옮겨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장지량 전 공군 참모총장은 21일자 국방일보에 연재된 '빨간 마후라, 하늘에 등불을 켜고'라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모집해 공군 특수부대에 넘겨준 특공대원들이 실미도로 옮겨갔다고 주장했다.
장 전 총장은 "공군총장 재임시절 6개월간 특공대 훈련을 맡게 됐으며 이후 김성용, 김두만 총장이 인수했다"면서 "특공대원들은 1969년 말이나 1970년 초 실미도로 옮겨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당시 김형욱 부장이 특공대원 30여 명을 모집해 1968년 4월 공군 특수 부대에 넘겨줬으며, 이들을 인수한 공군 특수부대는 6.25전쟁 때부터 운영돼 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장 전 총장은 "중정이 차출해 공군에 보낸 준 특공대원들은 출동하면 언제든지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에서 비롯된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김일성 숙소를 때려 부순다는 것은 미국의 만류와 저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위해 김일성을 만나는 상황에서 북을 치기 위한 특공대의 인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다. 때문에 특공대원들이 극도로 신변불안을 느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고공침투로 북파하려던 계획이 해안상륙 작전으로 전환되면서 실미도로 훈련장이 바뀌고 먹을 것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등 처우가 허술한 데다 목표가 사라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가운데 1971년 8월 실미도 난동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이해한다고 장 전 총장은 말했다.
장 전 총장은 "당시 주에티오피아 대사로 근무하면서 실미도 난동 사건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1968년 1.21사태 직후 중정에서 차출된 상당수 인원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대원들은 냉전과 데탕트 분위기 와중에 희생된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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