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2.이탈리아
1,2,3)로마(Rome) 1,2,3
4,5,6,7)바티칸(Vatican)
8,9,10,11)오스티아(Ostia)1,2,3,4
12)폼페이(Pompeii)
13,14)에르콜라노(Ercolano)1,2
15,16,17,18, 19, 20,21,22, 23,24,25)나폴리(Napoli)1,2,3,4,5,6,7,8,9,10,11
26,27, 28,29)팔레르모(Palermo) 1, 2, 3, 4--오늘 이야기
30,31,32,33,34,35,36,37,38,39)피아짜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
--오늘 이야기
33)피아짜 아르메리나 (Piazza Armerina) 4
◆3. 페리스틸리움
목욕탕을 지나면 야외정원으로 이어진다. 야외정원은 기둥(이오니아나 코린트의 화려한 기둥)이 늘어선 회랑, 페리스틸리움(Peristylium)으로 둘러싸여 있다. 카잘레 빌라의 회랑에는 모두 32개의 기둥이 늘어서 있다. 회랑을 빙 둘러 4면에 모두 13개의 방이 자리한다. 페리스틸리움의 방에는 주인이 거주하기 보다는 노예가 살거나 손님용, 혹은 기타 다양한 용도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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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회랑--연못 비비다리움을 갖춘 정원과 회랑을 이루는 코린트 양식의 기둥, 그리고 회랑 바닥모자이크가 잘 드러난다. 회랑 바닥은 월계수 관으로 만든 둥근 원속에 짐승얼굴을 2줄로 새겨 놓았다. 짐승얼굴은 모두 백 60개나 된다. 유리 보호창 너머 연못은 요즘도 고급 주택에서 흔히 보는 풍경과 다르지 않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직사각형의 회랑 안쪽으로 연못 비비다리움(Vividarium)을 포함한 아름다운 정원이다. 공화정 시절 작고 소박한 뜰이었던 정원은 로마가 제국으로 팽창하면서 화려하게 변신했다.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로 가득 채워 꾸몄다. 조각품도 군데 군데 놓고... 실내 식당 트리클리니움(Triclinium)도 이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저녁에 연회를 여는 장소다. 여름용 야외 식당 엑세드라(Exedra)도 갖췄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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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 바닥을 가득 메우는 짐승 얼굴 모자이크.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기둥과 건물사이 회랑 바닥은 너비가 3.8m고 정원을 둘러싼 4면의 총길이는 3백 80m에 달한다. 이 전체가 모자이크로 뒤덮였다. 엄청난 규모다. 모자이크에는 모두 백60개의 짐승얼굴을 월계관으로 만든 둥근 원 속에 넣어 장식했다. 요즘 집안 실내 인테리어에서 각종 짐승사진 걸거나 박제품 갖다 놓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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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얼굴. 피아자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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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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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얼굴.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4. 드레싱 룸
회랑을 끼고 붙어 있는 13개 방 가운데 맨 처음 나타나는 방이다. 목욕탕의 팔레스트라(전차경기장)와 붙어 있다. 이방은 주인집 식구들만 쓰던 곳인데, 화장하고 머리 매무새를 다듬고 옷도 갈아입는 뭐 그런 용도였다. 여성들 화장은 어떻게 했을까? 요즘 처럼 분이나 크림같은 각종 화장품을 사용했다. 화장품을 담았던 용기는 물론 내용물까지 발굴되곤 한다. 화장품 용기에서 크림을 찍어 바를 때 쓰던 뜨개도 나온다. 부유층은 향수를 특히 애용했다. 유리나 도자기로 만든 향수병은 현대 디자인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병이 깨지기 쉬운 점을 고려해 향수병 보호통까지 나무로 만들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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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가족--5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가운데가 집안 여주인, 양옆으로 2명의 자식이다. 자식 옆으로는 시중을 드는 노예다. 주인네 식구들이 가죽샌들에 화려한 옷을 걸친데 반해 노예들은 신도 다르고, 옷도 평범하다. 노예는 옷과 보석등을 담은 함을 손에 들었다. 목욕하러 가는 장면이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귀부인들은 화장하는 노예만 여러 명을 둘 정도였는데... 화장 한 번 하는데 몇 시간씩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 만큼 만에 하나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노예는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노예가 머리모양을 서투르게 다듬거나 화장의 톤을 잘못 다뤘다면 혼날 법도 하지만, 본인 생긴 것은 생각하지 않고 벼락같이 화를 내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여인네들이 몸을 가다듬고 화장하는 장면은 조각이나 프레스코등에 다수 남아 오늘까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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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 얼굴.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귀금속 치장도 요란했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는 기본이었다. 귀에 달고, 목에 걸고, 팔목에 차고, 손가락에 끼웠다. 그것도 모자라 머리에 금으로 된 망사도 얹었다. 옷은? 무릎까지 오는 짧은 옷 투니카(Tunica)를 걸치고, 그위로 스톨라(Stola)라는 긴 옷, 그리고 맨 위에는 팔라(Palla)라는 겉옷을 입었다. 머리엔 스카프를 둘렀다. 모두 헐렁하다. 속옷은? 당시의 패션잡지가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잡지보다 더 오래가는 유물 즉 조각이나 모자이크, 프레스코를 보면 아찔한 속옷을 애용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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