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회사 눈치를 좀 보면서 낸, 비교적 긴 휴가에다 추석 연휴까지 이어져, 한참을 업무와는 담 쌓고 지냈지요. 무엇보다도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에서 해방된 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저도 어느 새 '블로그 질'에 중독이 됐는지, 그동안 올리던 평양 출장기를 한동안 중단하게 된 건 굉장히 마음에 걸리더군요. 돌아오자마자 다시 시작했지요.^^ (http://ublog.sbs.co.kr/shkim0423)
미국 뉴저지에 있는 동생 집, 그리고 과테말라에 있는 작은 아버지 댁에 다녀왔습니다. 숙식은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 번 갈아타는 싼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뉴욕에 갔지만 유감스럽게도 오페라나 발레는 아직 시즌이 시작되기 전이라 이렇다 할 공연이 없었기 때문에 뮤지컬만 몇 편 보고 왔습니다. 이번에 본 뮤지컬 얘기는 다음 기회에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이번 주말 개막하는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얘기입니다.
-----------------------------------------------------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가 24일이면 한국 초연 무대의 막을 올립니다. 바그너 필생의 걸작인 ‘니벨룽의 반지’는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지는 대작입니다. 세상을 지배할 힘을 주는 반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권력과 탐욕, 사랑과 증오, 희생과 구원의 장대한 드라마입니다.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은 러시아 공연예술의 중심지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프로덕션이라 더욱 관심을 끕니다. 마린스키의 수장 발레리 게르기예프. 요즘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지휘자입니다. 지난 1988년,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뒤를 이어 마린스키 극장을 맡은 것이 그의 나이 35세 때의 일입니다. 그동안 마린스키는 전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최일류 극장으로 거듭났습니다.
게르기예프는 ‘니벨룽의 반지’를 한국 공연에 앞서 지난 6월초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도 선보였습니다. 저는 이 공연을 취재하러 생전 처음 러시아를 다녀왔습니다. 볼쇼이에서도 30여 년 만에 처음이라는 ‘반지’ 전막 공연. 극장 전면에는 게르기예프의 얼굴이 선명한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게르기예프의 링’이었지요.
공연은 만족스러웠습니다. 고대 거석문화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무대 장치, 시시각각 변하며 강렬한 인상을 창조하는 조명, 시간적 배경을 ‘역사의 시원’으로 되돌린 무대는 무척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이었으며, 현대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습니다. 게르기예프가 직접 발탁한다는 마린스키의 가수들은 넓은 공연장을 꽉 채우고도 남는 우렁찬 성량과 테크닉을 자랑했습니다. 아, 저 발퀴레들의 ‘호요토호!’ 노랫소리라니, 저 당당함이라니. 오케스트라는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울부짖으며,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발퀴레’ 공연 때 객석 맨 앞줄에 앉아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모습을 지척에서 바라보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좀 과장한다면,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러시아까지 날아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무대를 장악하고, 관객들의 감각까지 손아귀에 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었지요. 이 거대한 공연의 ‘정점’에 게르기예프가 있었습니다.
‘발퀴레’ 공연 다음 날. 게르기예프와 인터뷰하기로 돼 있었던 날이라, 아침부터 저는 가벼운 흥분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장소는 게르기예프가 묵고 있는 볼쇼이 극장 근처의 호텔.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타난 게르기예프는 약간 피곤한 기색이었습니다. 간밤의 공연이 끝난 게 새벽이니, 바로 몇 시간 전입니다.
“한국에서 공연하는 것은 생전 처음입니다. 공항에는 비행기 갈아타면서 몇 번 가 봤지만. 이번 공연을 아주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그동안 한국의 경제나 문화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또 한국의 축구에서, 한국인들의 열정과 단결 정신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연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겠지요. 저에게는 이 공연이 아주 중요하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니벨룽의 반지’ 서울 공연은 이 프로덕션으로서는 여섯 번째 공연입니다. 아시아 초연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러시아 에서 세 차례, 그리고 독일에서 두 차례 공연됐습니다. 바그너의 고국인 독일에서도 이 프로덕션은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희는 독일의 오페라 극장들이 하는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난 세기말에 많이 선보인 것 같은 스타일로 하고 싶진 않았죠. 저도 베를린, 뮌헨, 바이로이트, 슈투트가르트에서 여러 프로덕션을 접했습니다. 물론 모두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5년이나 10년마다 유행을 타고, 그 유행은 곧 한물 간 것이 되고 맙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는 누구하고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독일 오페라 극장들은 항상 경쟁을 해요. 누가 더 독특하게 만드나, 누가 더 튀게 만드나....... 하지만 저는 이런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니벨룽의 반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라고 게르기예프는 말했습니다. 4부작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장치는 계속 바뀌지만 기본이 되는 것은 4개의 거대한 돌, 조각상들입니다. 그는 이 무대 장치가 ‘모든 것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니벨룽의 반지’ 이야기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천 년 전에도, 2천 년 전에도, 또 3천 년 전에도 사람들이 권력을 위해 싸웠다는 것, 그리고 사랑과 증오, 자연의 힘, 강력한 힘을 가진 물과 불,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 존재해 왔다는 것이죠.
땅 밑에는 어둠의 세력이 있고, 하늘에는 신들이 있고...... 신들은 세상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들이 자연의 파괴로 이어집니다. 자연의 파괴는 세상의 종말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이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간적 배경을 역사상 특정한 시기로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2050년, 2080년, 미래로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천 년 전,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상상했습니다. 보탄이나 알베리히, 지그프리트가 이 때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무대의 시각적 이미지들은 여러 대륙을 종횡무진 가로지릅니다. 이 작품은 ‘지난 수천 년간의 비주얼’을 담아냅니다. 그는 멕시코, 페루, 이집트, 유럽, 아프리카, 그리스, 중국, 그리고 어쩌면 한국의 고대 문화에서도 찾을 수 있는 이미지들을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게르기예프의 얼굴에서 인터뷰 시작할 즈음의 피곤한 기색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의 눈은 빛났고, 몸짓은 열정적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높은 수준의 무대기술과 창조적인 조명을 보여줍니다. 절대로 구식이 아니지요. 저희가 이뤄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다른 공연에서도 많이 시도했던 것이 아니라, 저희들만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무대 디자이너 조지 티시핀의 역할이 컸어요. 아주 재미있을 겁니다.”
게르기예프의 투박한 말투에서 넘치는 활력이 느껴집니다. 굳은 의지와 정열이 느껴집니다. 그가 어떻게 가히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내는지, 짐작할 만 했습니다. 그가 맡은 직책은, 굵직한 것으로만 읊어도 숨이 찰 정도입니다. 마린스키 극장 예술총감독, 로테르담 필하모닉 음악감독,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수석 객원 지휘자, 상트 페테르부르크 백야 축제 예술감독, 모스크바 부활절 축제 예술감독, 여기에 2007년부터는 런던 심포니 수석 지휘자까지. 빈 필과 베를린 필도 종종 지휘하는 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라는 세간의 평가에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자신이 지휘해 본 오케스트라는 수적으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죠.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가 보통 이상으로 바쁜 지휘자라고 생각합니다. ) 대신 자신이 관여하는 ‘프로젝트’의 수는 꽤 많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1년에 한 편씩 새로운 프로덕션을 선보인다’는 원칙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우선 백야 축제가 있고, 비엔나에서도 빈 필과 함께 많은 공연을 합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적 성취와 우정을 쌓아가지요. 또 작은 페스티벌들이 있어요. 핀란드에도 있고,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도 음악제가 열려요. 1주일에서 열흘 정도, 길진 않지만 아주 특별하게 성장하고 있는 축제지요. 이런 프로젝트에서 제가 하는 일은 지휘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설립자로서, 비전을 전파하고, 젊은이들을 참여시키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비전을 전파한다’는 그의 말에, 마린스키의 소프라노 올가 사보바(전날 ‘발퀴레’ 공연에서 ‘브륀힐데’ 역을 맡았었습니다.)가 인터뷰에서 했던, 아주 인상적인 말이 떠올랐습니다. 게르기예프가 마린스키 극장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지요.
“우리 마린스키의 가수들과 게르기예프의 관계는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발퀴레와 보탄의 관계와 같습니다. 보탄이 신들의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그의 딸들인 발퀴레가 보탄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우리 마린스키의 가수들도 마린스키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게르기예프를 위해 언제든 나설 준비가 돼 있지요.”
게르기예프를 ‘아버지’로 생각하고, 그의 ‘비전’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가수들. 이런 존경과 신뢰를 받는 지휘자가 또 있을까. 저는 게르기예프를 더 ‘탐구’할 시간이 없음을 아쉬워하며 인터뷰를 마쳐야 했습니다. 그는 이 공연을 한국의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굉장히 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젊은이들이 이 공연을 보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공연은 비싼 티켓을 살 여유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오페라를 본 경험이 많은 관객들이 주로 볼 겁니다. 하지만 나는 되도록 많은 젊은이들이 보러 왔으면 좋겠습니다. 독일에서도, 러시아에서도 공연할 때마다 젊은이들이 많이 보러 왔습니다. 우리 공연은 아주 ‘전통적’이면서도 ‘혁신적’이거든요.”
저는 볼쇼이 극장에서,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극장의 팬이라서 공연을 보러 왔다는 외국인 관객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니벨룽의 반지’가 공연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니는 열혈 바그네리안도 있었습니다. 아마 서울 공연에서도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게르기예프의 말대로, 한국의 젊은이들도 이 공연을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다시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세종문화회관 월간지 '문화공간' 9월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