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다음 달 공연이 열리는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관한 글을 보내드립니다. 바로 8월호를 끝으로 없어지는 ‘인쇄매체로서의’ SBS 매거진에 제가 마지막으로 실었던 글입니다. (얼마 전 제가 ‘SBS 매거진’과 이별을 고했던 것, 기억하시죠?)
지난 6월, 생전 처음 러시아를 다녀왔습니다.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된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키로프 극장으로 알려졌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프로덕션입니다. 지휘자는 마린스키의 수장인 발레리 게르기예프. 볼쇼이 극장이 개보수를 위한 장기 휴관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고른 대작이었죠. 이 작품은 다음달 한국에도 옵니다.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입니다.
바그너는 유난히 열성 팬이 많은 작곡가로 꼽힙니다. (한편으로는 바그너가 인종주의자였고 히틀러가 유난히 바그너에 심취했다는 이유 때문에 자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바그너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의 열성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 세계의 ‘바그네리안’들은 매년 여름 독일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바그너 축제에 기꺼이 ‘순례객’으로 참가하지요.
2천석 규모의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바그너가 직접 완성한, 오로지 이 축제만을 위한 공연장입니다. 축제 기간 외에는 문을 닫습니다. ‘니벨룽의 반지’는 바로 1876년 이 극장 준공 기념으로 공연된 오페라입니다. 바그너는 기존의 오페라를 넘어, 음악과 드라마가 완벽하게 결합되는 종합예술로서 ‘악극’을 꿈꿨고, ‘니벨룽의 반지’는 그가 꿈꾼 ‘악극’의 ‘결정판’이었습니다.
‘니벨룽의 반지’는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져, 흔히 ‘반지 4부작’으로 불립니다. 나흘간 공연에 총 16시간이 걸리는 대작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주는 반지를 둘러싸고, 권력과 탐욕, 사랑과 배신, 희생과 구원의 장대한 드라마가 신들과 인간 세상을 넘나들며 펼쳐집니다.
북구의 신화와 게르만족의 전설에서 영향을 받아 바그너가 직접 쓴 대본에는 신과 인간의 관계, 물질적 탐욕과의 투쟁,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 같은 주제가 담겨있습니다. 그 유명한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본에서도, 음악에서도, 단숨에 다가서기는 어렵지만, 듣다 보면 어느새 몰입하게 되는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룻밤에 짧아도 2시간 반, 길면 5시간 반에 이르는 공연 시간은 관객과 연주자 모두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그너 전문 가수들은 우렁찬 성량과 깊이, 테크닉과 체력을 동시에 갖춰야 합니다. 바그너 전문 테너를 ‘영웅적인 테너’라는 뜻의 헬덴테너(Heldentenor)로 부를 정도입니다. ‘포효’하는 오케스트라의 울림(‘지옥의 묵시록’의 폭격 장면에 삽입돼 더욱 유명해진 ‘발퀴레의 비행’을 떠올려 보시길)을 뚫고 객석을 압도할 수 있는 바그너 전문 가수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라인 강 밑바닥에서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 세계까지 오가는 공간적 배경, 여기에 인간과 요정, 신, 거인과 난쟁이에 이르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은 수준급의 연출력과 제작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무대에 구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반지’ 공연에는 종종 현란한 특수 효과와 첨단 기술이 동원됩니다.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이 ‘니벨룽의 반지’로 오페라 연출에 데뷔한다는 소문은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끕니다.)
따라서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모두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니벨룽의 반지’는 바이로이트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북미와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만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은 전국 방방곡곡의 결혼식장에서 날마다 수없이 울려 퍼지고 있지만, ‘반지’는 물론이고 바그너의 오페라 자체가 거의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일본 니키카이 오페라단이 세종문화회관 초청으로 공연한 ‘탄호이저’가 30여 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바그너 오페라였습니다.
볼쇼이 극장에서도 ‘반지 4부작’이 모두 공연되는 것은 197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2천여 석 규모의 볼쇼이 극장은 전 세계에서 온 음악 팬들로 가득했습니다. 공연 내내 빈 자리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제 자리 근처의 러시아 할머니는 젊은 시절 볼쇼이 극장에서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모두 본 것이 바로 엊그제 같다면서 감개무량해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 뉴욕에서 온, ‘해리엇 비튼’이라는 이름의 여성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니벨룽의 반지’가 공연되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찾아간다는 이 여성은 마린스키 극장과 게르기예프의 열성적인 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공연이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부티 나는 귀부인’이 아니었습니다. 공연 한 번 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해리엇은 경비를 아끼기 위해 언제나 가장 싼 민박집에 묵는다면서, 서울에서도 그런 숙소를 구할 수 있는지 물어왔습니다. 이들의 열정은 공연 취재를 담당하는 기자인 저에게 감동적이기까지 한 것이었습니다.
게르기예프의 ‘니벨룽의 반지’는 이렇게 열성적인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미 바그너의 고국인 독일 공연에서도 찬사를 받았던 터입니다. 공연 도중에는 아무리 멋진 아리아가 나와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바이로이트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 관객들은 막이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습니다. 고대 거석문화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무대장치, 시시각각 변하며 강렬한 인상을 창조하는 조명, 시간적 배경을 ‘역사의 시원’으로 되돌린 무대는 무척 간결하고 상징적이라, 현대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습니다.
무엇보다 압권은 음악이었습니다. 게르기예프가 직접 발탁한다는 마린스키의 가수들은 넓은 공연장을 꽉 채우고도 남는 우렁찬 성량과 테크닉을 자랑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울부짖으며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게르기예프의 열정적인 지휘에서는 이 ‘거대한 공연’을 이끄는 그의 카리스마가 배어났습니다.
이틀째 공연인 ‘발퀴레’에서 맨 앞줄에 앉았던 나는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모습을 지척에서 바라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좀 과장한다면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러시아 예술 중흥의 기수요, 요즘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지휘자 중 한 명인 게르기예프의 진면목을 본 듯했습니다.
저는 사실 지난해 ‘니벨룽의 반지’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얘기를 처음 듣고 반신반의했었습니다. 과연 우리 공연시장이 이 작품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는지. 공연을 제대로 다 보기 위해서는 관람료 부담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휴가’와 ‘사전 학습’이 필요할 것 같은 이 작품이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한국에서 처음 공연되는 ‘니벨룽의 반지’는 그래서 우리 관객층이 얼마나 두터워졌고 다양해졌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 같습니다.
출장을 마치고도 꽤 시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공연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얼마 후면 이 공연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의 바그너 팬들은 ‘반지’ 4부작을 보기 위해, 매년 많은 돈을 들여 해외로 ‘원정’을 떠나거나,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물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공연은 이들에게는 ‘커다란 축복’이 될 것입니다. 또 바그너 오페라를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볼쇼이 극장에서 저를 감동시켰던 열성적인 관객들을 서울에서 ‘재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 뵙겠습니다.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여름,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기자 블로그 http://ublog.sbs.co.kr/shkim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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