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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푸스 무세움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1장. 모자이크의 역사 1. 콘 모자이크 2.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1장. 모자이크의 역사

1. 콘 모자이크

2. 페블 모자이크

3. 오푸스 시그니눔

4. 오푸스 테셀라툼

5. 오푸스 섹틸레

6. 오푸스 무세움--오늘 이야기

7. 흑백 모자이크

8. 북아프리카 모자이크

9. 기독교 모자이크

10. 모자이크 기법

 

6. 오푸스 무세움(Opus Museum)

 

◆1. 유래(Origin)

 

모자이크는 실내나 야외의 바닥 포장으로 출발해 예술로 승화한 장르다. 다시 말해 바닥설치가 기본이다. 그런데, 오푸스 무세움(Opus Museum)은 다르다. 건물의 벽과 천장에 설치하는 모자이크다. 모자이크의 발생지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오푸스 무세움이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로마문명이 헬레니즘의 오푸스 테셀라툼을 받아들여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결과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오푸스 무세움은 어떻게 생겨나게 됐을까? 산속의 동굴 샘에서 비롯된다.

 

분수 유적. 궁륭형 분수의 전형을 보여준다. 로마시대 저택의 실내정원인 아트리움 벽에 설치했던 것을 발굴해 나폴리 박물관에 전시해 놨다. 나폴리 박물관 ⓒ김문환

동굴이나 산속 바위틈 샘에서 솟아나는 물은 인간 생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로마인들은 물의 요정 님프(Nymph)가 생명수를 제공한다고 믿었다. 산속 바위로 둘러싸인 동굴샘은 요정의 영(靈)이 깃든 신성한 장소다. 이를 인공적으로 재현해 낸 샘이 분수(Nymphaeum, 님프가 사는 곳)다. 오푸스 무세움은 교외의 호화 저택, 즉 빌라(Villa)나 도시의 대저택 도무스(Domus)가 있기에 가능했다. 로마 시대 빌라와 도무스에는 인공 동굴(Grotto)을 설치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동굴샘의 천연 바위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 인공샘에 돌장식을 넣는 일이 필요했다. 인공샘 즉, 분수를 장식하는 모자이크가 등장한 사연이다. 처음엔 재질로 속돌(Pumice)을 사용했다. 속돌은 화산의 용암이 갑자기 식어서 된 다공질(多孔質)의 가벼운 돌로 부석(浮石)이라고도 부른다. 동굴 분위기를 내기는 제격이다. 그러다, 차츰 대리석이나 유리로 재질이 고급화 됐다. 기법적으로는 정교한 테세라 모자이크 형태를 띠었다.

 

교외 목욕탕 분수. 화려한 색상이 두드러진다. 폼페이 교외목욕탕에 설치된 분수 모자이크다. 규모도 크고 아름다워 분수 모자이크의 진수를 들여다 보는데 손색없다. 특히 옆에는 프레스코도 함께 있어 로마시대 실내 건축 예술을 살펴보는데 큰 도움을 준다. 폼페이 ⓒ김문환

폼페이에서 변을 당한 박물학자 大플리니우스는 이렇게 만든 분수 모자이크를 무사에아(Musaea)로 불렀다. 이는 [동굴같아 보이는]이란 뜻과 동의어다. 오늘날 사용하는 모자이크(Mosaic)란 말의 어원으로 추정된다. 로마시대 분수의 벽면과 천장을 장식하는 모자이크가 모자이크를 대표하는 말이었음을 암시해 주는 단서다. 그렇다면 무사에아(Musaea)나 무세움(Museum)이란 말의 기원은? 로마인들은 물이 있는 샘에 물의 요정 님프가 산다고 믿었다. 동시에 제우스의 딸로 음악을 관장하는 음악의 요정 뮤즈(Muse)도 샘의 정령으로 받들었다. 산속의 동굴샘을 인공분수로 대체하면서 님파에움이란 용어를 사용했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벽면 모자이크는 '뮤즈'를 따서 '무사에아', '무세움'으로 불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후 분수를 장식하는 모자이크를 오푸스 무세움(Opus Museum, 혹은 Opus Musivum)이라 부르게 됐다.

 

분수.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 모자이크 옆에 자리한 궁륭형 분수. 물이 흐르던 장소다. 숲속을 노닐던 짐승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 반원형과 양쪽 직사각형 홈에는 조각상이 놓였을 것이다. 에르콜라노. ⓒ김문환

오푸스 무세움의 외관은? 집안 실내 정원 벽에 툭 튀어나온 형태의 정자(Pavilion) 모양새다. 정자의 꼭대기는 그리스 로마신전 지붕의 삼각형 공간인 페디먼트(Pediment) 스타일을 따랐다. 중간부는 원통을 반으로 자른 듯 둥글게 파고, 위는 궁륭형으로 만들었다. 표면은 대리석이나 유리를 잘게 썬 테세라로 화려한 색상을 구현했다. 가장자리에는 조개껍질을 테두리처럼 둘렀다. 분수 모자이크 주변 벽에는 프레스코화를 그려 넣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당시 벽면을 장식하던 그림의 소재는 야자수, 나무모양 촛대, 건물의 햇볕을 가리는 차양, 건물 벽에 장식용으로 덧댄 닫집, 각종 무늬가 주를 이뤘다. 신화도 주요 소재인데, 아프로디테가 조개에서 태어나는 장면이나 에로스가 날개를 달고 나는 장면등이 주인공이었다.

 

◆2. 의미(Meaning)

 

건축학적으로 바닥에 설치하는 오푸스 테셀라툼보다 벽이나 천장에 설치하는 오푸스 무세움 쪽이 작업 강도가 높았고, 숙련도 역시 더 요구됐다. 제작비용도 훨씬 비싸게 먹혔다. 분수모자이크는 요즘식으로 치면 부의 과시수단이었다. 분수 모자이크가 설치된 장소는 현관에서 일직선상으로 바라다 보이는 실내 정원 아트리움인 경우가 많다. 누구든지 집안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화려한 분수 모자이크에 압도되는 구조다. 집주인의 부와 세련된 예술적 감각, 기호에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스토아 철학자이자 네로의 스승이던 세네카는 64년 "유리(모자이크)를 천장에 설치하지 않으면 무척 수치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적을 정도였다.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집 분수 전경. 유적으로 존재하는 분수모자이크 가운데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작품이다. 누구나 한번만 들여다 봐도 그 현란한 아름다움에 고개를 돌려야 한다. 2천년 화산재에 묻혀 있던 색상에 로마인들의 예술 취향이 그대로 묻어 난다. 에르콜라노. 에르콜라노. ⓒ김문환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 야성적인 포세이돈의 근육질 몸이 드러난다. 그의 아내 암피트리테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몸매와 자태는 이 작품을 분수 모자이크의 걸작으로 자리매김 해준다. 에르콜라노. ⓒ김문환

 

당시 벽을 프레스코로 장식하던 관행을 버리고, 분수 벽과 천장에 고비용의 모자이크를 채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방수(防水)목적이다. 습기 가득하고 물방울이 튀기는 분수에서 대리석이나 유리 모자이크를 쓸 경우 습기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유리 모자이크가 갖는 뛰어난 색채감도 한 무시할 수 없다. 유리 조각은 흙을 구워 만든 테라코타나 일반 돌조각보다 밝고, 투명하며 화려한 색조와 분위기를 낸다. 회반죽의 둔탁한 느낌을 주는 프레스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반짝이는 색상을 자랑한다. 특히 기존의 모자이크는 바닥에 주로 설치해 늘 밟고 다니는 탓에 지저분해지고, 여러 오물이 얹혀져 투명한 색상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없었다. 그러나, 벽면의 분수 모자이크의 경우 때가 탈 일이 적고, 오히려 늘 물이 흘러 맑고 깨끗한 색상을 내기 제격이다. 분수 모자이크는 가정집을 벗어나 목욕탕 같은 대형 공공 건물에도 널리 사용됐다. B.C 19년의 아그리빠 목욕탕, 네로 목욕탕, 티투스 목욕탕, 카라칼라 목욕탕...

 

유골의 집 작은 분수. 규모가 작다. 비록 붕괴 방지를 위해 지지대를 세웠지만, 완벽한 간직하고 있다. 에르콜라노. ⓒ김문환

모자이크 기행을 다니면서 확인한 사실 한가지. 박물관에 보관중인 모자이크는 보존상태가 좋다. 잘 닦고, 조명까지 더해 아름답다. 그러나, 현장에 그대로 남겨둔 모자이크는 먼지가 쌓이거나 각종 오물로 탁해지기 일쑤다. 제색을 내지 못한다. 모자이크 특유의 화려한 색채는 간 곳 없다. 이때 물을 한번 뿌려주면 선명한 색상이 되살아 난다. 언뜻 "유물에다 마구 물을 뿌리네"하고 깜짝 놀랐는데... 수리공들은 자연스럽다는 듯이 모자이크 바닥에 물을 뿌려댔다. 정말 아름다운 색상이 2천년을 넘어 되살아 난다.

 

◆3. 화려한 오푸스 무세움의 세계

 

오늘날 지중해 주변 곳곳에서 바닥 모자이크가 압도적으로 많은 데 비해 벽면 분수 모자이크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바닥에 모자이크를 많이 설치했기 때문이다. 특히 목욕탕 바닥과 회랑 복도는 예외없이 모자이크로 가득했다. 둘째, 건물의 붕괴 때문이다. 건물은 자연적, 혹은 전쟁, 증개축의 원인으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결국 무너진다. 분수 모자이크가 훼손된 이유다. 폼페이나 에르콜라노처럼 화산재에 그대로 묻혀 있다 발굴된 경우 예외적으로 존재한다. 유적으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분수 모자이크는 B.C 1c 중반 나폴리 북서쪽 교외 포르미아(Formiae)에 있던 키케로의 별장이다. 숫돌과 조개껍질로 장식된 분수 모자이크의 초기 형태를 잘 보여준다. 섬세하고 세련된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들은 폼페이와 에르콜라노의 주택에서 탐방객을 맞는다. 누구라도 빼어난 아름다움에 탄성을 자아낸다.

 

분수. 폼페이 큰 분수의 집에 남아있는 유적이다. 폼페이. ⓒ김문환

분수. 폼페이 옥타비우스 콰르티우스의 집에 남아있는 분수 유적. 분수 모자이크는 사라지고 프레스코만이 남았다. ⓒ김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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