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1장. 모자이크의 역사
1. 콘 모자이크
2. 페블 모자이크
3. 오푸스 시그니눔
4. 오푸스 테셀라툼--오늘 이야기
5. 오푸스 섹틸레
6. 오푸스 무세움
7. 흑백 모자이크
8. 북아프리카 모자이크
9. 기독교 모자이크
10. 모자이크 기법
4. 오푸스 테셀라툼(Opus Tessellatum)
◆1. 오푸스 테셀라툼의 등장
모자이크를 대표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모자이크의 대명사다. 각종 색 대리석이나 유리, 도자기 파편을 수없이 많은 조각, 즉 테세라(Tesserae, 규칙적으로 자른 돌)와 칩(Chip, 불규칙적으로 자른 돌)으로 자른 뒤, 특정 모양으로 연결해 화려한 컬러(Polychromy)의 세계를 구현한 모자이크 양식을 말한다. '테세라'는 그리스어로 숫자 4, 또는 4각형을 뜻한다. B.C 4c 까지는 불규칙하게 자른 형태의 돌(칩)을 사용했고, 차츰 같은 크기의 4각형 돌(테세라)로 조각 내 바닥 포장에 사용하면서 오푸스 테셀라툼(Opus Tessellatum)즉 테세라 모자이크(Tesserae Mosaic)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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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장면. 작은 테세라를 붙여 나가며 작업하는 장면. 비엔느 박물관. ⓒ김문환 |
오푸스 테셀라툼은 알렉산드리아등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이후 형성된 헬레니즘권 도시에서 크게 발달해 B.C 1c 말 이후 지중해 주변 로마문명권 전역으로 확대됐다. 헬레니즘에서 꽃을 피워 로마로 전수해줬다는 얘기다. 전원의 목가적인 풍경과 농경, 동식물등 전원과 농촌의 풍경을 주로 담은 오푸스 테셀라툼은 그 어느 예술장르보다 공이 많이 들어간다. 잘게 썬 수십, 수백만개의 돌이나 유리 조각으로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해내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의 노동과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이후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닥 포장재로서의 견고함, 즉 내구성과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2. 오푸스 테셀라툼 등장의 배경
정치,경제적인 환경변화도 오푸스 테셀라툼이 자리잡는데 한몫 거들었다. 그리스 문명권 북부의 한 왕국에 불과하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그리스 전역을 굴복시킨 뒤 페르시아를 멸하고 서쪽으로 이집트에서 동쪽으로 중앙 아시아, 인더스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비록 알렉산더는 죽었지만, "가장 강한 자가 후계자리를 차지하라"는 알렉산더의 유언대로 실력있는 부장들이 치열한 다툼 끝에 제국을 갈라 다스렸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오리엔트의 셀레우코스 왕조, 그리스 본토의 마케도니아 왕조는 3대 강국이었다. 이밖에 아나톨리아의 페르가몬... 마케도니아 왕국 후예들이 그리스 전통에 동방의 문화를 섞어 창조해 낸 문명을 헬레니즘(Hellenism)이라고 부른다.
헬레니즘시대 문화의 중심은 파피루스의 산지인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 알렉산드리아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 안타키아(안티오크), 양피지의 고장 페르가몬이었다. 학문을 담는 그릇 즉 종이나 그 대용품과 관련된 지역임을 눈치채야 한다. 수출로 벌어들인 엄청난 보화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지역에서 모자이크의 새로운 기풍이 탄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갈을 갈아 사용하던 차원에서 벗어나 좀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많은 돈을 들여 재료를 찾은 결과 오푸스 테셀라툼 기법이 나왔다. 광에서 인심 나듯, 두둑한 금고를 배경으로 다양한 색상의 원석과 유리를 잘라 쓰면서 B.C 2c 알렉산드리아는 고도로 세련된 형태의 오푸스 테셀라툼 모자이크를 실현시키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에게해의 로도스와 델로스 역시 오푸스 테셀라툼의 중심지였다. 특히 프랑스 고고학팀이 19c 말에서 20c 초에 걸쳐 발굴한 델로스는 모자이크의 보편화를 보여준다. 알렉산드리아나 펠라에서 보는 것처럼 대저택이 아니라 일반 주택에 까지 모자이크가 설치된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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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스 전투. 알렉산더가 결연한 모습으로 그리스의 공격을 지휘한다. 나폴리 박물관.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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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스 전투. 겁먹은 표정의 다리우스와 밀리는 페르시아군의 묘사가 뛰어나다. 나폴리 박물관. ⓒ김문환 |
이무렵 지중해 서쪽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던 로마제국이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이베리아 반도를 손에 넣은 뒤, 지중해 동부 즉, 헬레니즘 세계로 파고들었다. 로마는 군사력으로 헬레니즘의 각 왕국들을 무찔렀지만,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 세계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헬레니즘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헬레니즘의 성과물을 부지런히 고국 로마로 실어 날랐다. 모자이크도 예외는 아니다. 로마 남부 캄파니아 지방의 국제 무역항 폼페이. 이곳 '파우노의 집'에서 발견된 이수스 전투 모자이크는 이같은 전파 경로를 잘 보여준다. 가로 5.1m, 세로 2.7m에 모두 백 50만개의 테세라를 사용해 만든 이수스 전투 모자이크는 오푸스 테셀라툼의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 동방의 헬레니즘 세계에 설치됐던 것을 이탈리아 반도로 가져간 것으로 밝혀졌다. 모자이크 예술양식 자체뿐 아니라 작품도 옮겨갔던 것이다.
한편, 오푸스 테셀라툼 가운데 특히 더 섬세하고 잘게 다듬은 재료로 만든 모자이크를 오푸스 베르미쿨라툼(Opus Vermiculatum)이라고 부른다. '작은 벌레'처럼 잘게 다듬은 재료를 사용한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오푸스 베르미쿨라툼은 4c 모자이크가 기독교 모자이크로 옮아 가면서 중세 교회를 장식했던 성서관련 모자이크에서 절정을 이뤘다.
◆3. 테세라 모자이크의 재료(Material)
오푸스 테셀라툼(테세라 모자이크)의 생명은 다양한 색상의 재료를 구하는데 달려 있다. 흰색과 검정색을 나타낼 때는 드물게 대리석도 썼지만, 주로 석회석을 사용했다. 검정색의 경우 화산지대의 현무암을 조각 내 쓰는 경우도 많았다. 붉은색과 노란색은 자연상태의 대리석에서 찾았지만, 흙을 구워 사용하는 방식이 더 손쉬웠다. 흙에 색을 입혀 구운 테라코타 조각의 쓰임새가 컸다. 그러나,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선 비록 비싸지만, 유리를 사용하는 게 효과 만점이었다. 유리는 가격도 비쌌고, 바닥에 사용할 경우 위험도 뒤따라 주로 분수의 벽이나 천장 모자이크에 붙이는 게 상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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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 악사들. 오푸스 베르미쿨라툼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폼페이 키케로네 빌라에서 발굴됐다. 나폴리 박물관. ⓒ김문환 |
재료를 자르는 작업은 어디서 이뤄졌을까? 채석장이나 제작공장이 따로 있었지만, 대개 모자이크를 설치하는 작업 현장으로 직접 돌을 가져와 잘랐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모자이크 설치 장소에서 자연석을 조각 내 테세라를 만들다가 매몰된 현장이 오늘날 그대로 발굴됐기 때문에 잘 설명된다. 그러나, 수요만큼 좋은 품질의 재료를 원하는 대로 공급받기는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웠다. 이렇게 수요와 공급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생기는 강제적인 수단이 무엇일까? 강탈과 절도가 재료를 취하는 주요수단의 하나로 떠올랐다. 좀더 점잖은 축은 특정 건축물에 사용했던 재료를 몽땅 사들여 다른 지역으로 옮겨 쓰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한 곳에서 쓰고,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쓰는 재생재료가 많았다는 얘기다. 특히 완제품 자체를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4. 테세라 모자이크의 설치(Practice)
망치나 정으로 자연석을 자르고, 필요한 크기로 조각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재료가 유리인 경우 작업이 더 어렵고 더뎌서 특별히 고안된 틀을 사용해 작은 크기로 잘랐다. 이는 제작기간을 늘려 가격을 비싸지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가로, 세로 1m 크기의 모자이크를 설치하는데 평균 1주일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남긴 기록을 토대로 설치방법을 들여다 보자. 바닥에 돌을 까는 작업인 만큼 로마시대 도로를 만들던 기법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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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작업중인 조각. 실제 설치되는 모자이크의 두께를 들여다 볼수 있다. 델로스 박물관. ⓒ김문환 |
①스타투멘(Statumen)--도로를 설치할 때나 바닥 모자이크를 만들 때 맨 밑에는 먼저 기초층, 즉 스타투멘을 설치한다. 도로에는 스타투멘에 큰 자연석을 놓지만, 모자이크에는 크고 단단한 자연석을 자갈 크기로 잘라 촘촘히 깔았다. 8cm 정도의 두께가 적당했다.
②루두스(Rudus)--스타투멘 위에 돌을 잘게 부순 조각과 석회석을 섞어 끈끈한 모르타르 혼합물을 만들어서 20cm 두께로 부었다. 이를 루두스라고 부른다.
③누클레우스(Nucleus)--루두스 위에 테라코타 조각이나 석회석, 모래 등을 아주 잘게 갈아 고운 모르타르를 만들어 덮었다. 이는 누클레우스 층으로 부른다. 두께는 12-15cm. 누클레우스까지 시공하고 간단한 무늬만 넣으면 모르타르 모자이크, 즉 오푸스 시그니눔이 된다.
④테세라(Tesserae)--누클레우스 모르타르가 굳기 전에 그 위에 모자이크용으로 정교하게 자른 네모난 대리석조각이나 유리조각 즉, 테세라를 빈틈없이 붙여 나간다. 그러면 오푸스 테셀라툼이 완성된다. 이때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됐음은 물론이다.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고 울퉁불퉁 할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뒤틀려 바닥이 갈라지거나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모자이크 작품은 현장이 아닌 박물관에서 접한다. 대부분 테세라 부분만 따로 떼어 내 벽에 걸어놓고 본다. 그러나 실제 바닥에 바닥에 설치할 경우 앞선 과정을 거치며 제작돼 실제 두께는 수십cm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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