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며칠은 좀 굼뜨다 싶었지만 “선진국들이 너무 인색하다”는 에겔란트 유엔 사무차장의 푸념이 언론을 타기 무섭게 지원 약속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돈 만이 아닙니다. 피해 지역에서는 이미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총 대신 삽을든 강대국 군인들의 복구 작전입니다. 사실 에겔란트의 촉구성 불평 없이도 선진국들의 도우미 행렬은 예상됐던 것입니다. 인도적인 차원이나 자국 국민 피해 때문 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조명 받는 남아시아한때 열강제국들이 불꽃 튀는 침략 경쟁을 벌였던 남아시아는 21세기 들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브라질, 러시아, 중국과 함께 BRICs라는 차세대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불리는 인도를 비롯한 이 지역 국가들에 선진국들이 애타게 찾는 세 가지 보물이 숨겨져 있는 탓입니다. 바로 풍부한 천연 자원과 광대한 시장, 그리고 중국의 팽창을 견제할 전략적 울타리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거꾸로 긴 잠을 깬 황룡이 용트림을 시작할 공간이 되겠지요. 미국의 시각: 중국 견제의 회랑미국부터 가 보겠습니다. “국제적인 재앙이 닥쳤는데 부시는 휴가 가서 놀고 있다. 초강대국 치고는 지원 금액이 너무 빈약하다.” 사태 초기의 이런 비판들은 사실 호사가들의 트집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어차피 복구지원 규모에서 세계를 압도하게 돼 있습니다. 승산 없는 베트남 전쟁에 그토록 몰두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적 이해를 간과할 리가 없습니다. 중부군 사령부를 중심으로 한 중동, 서아시아와 태평양 사령부를 축으로 한 동아시아의 틈새에 위치한 남아시아는 미국을 위협할 가상 적국이 포위망을 가장 손쉽게 뚫고 나올 수 있는 취약 지역입니다. 냉전 시대의 적이 소련이었다면 지금은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미 의회의 대중국 정치.경제 위원회가 지난 해 가을 제출한 보고서도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애치슨 라인이 필요하며 이 라인을 공고하게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동남아시아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더구나 이 지역에는 인도네시아라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와 잇따라 전쟁을 치른 미국으로서는 이슬람권의 반발을 무마하는 게 필수입니다. 인도네시아에 닥친 재앙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호감을 살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일본과 인도의 시각: 안보리 진출의 교두보다음은 일본입니다. 일본은 국력에 비해 국제적 역할에 인색하다는 그 동안의 비판을 일축하듯 무려 5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지원금을 약속해 미국을 머쓱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일본은 과거에도 동남아 시장에 군침을 흘리며 끊임없이 러브 콜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큰 이유가 생겼습니다. 바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 이사국 진출이란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일본의 가쁜 호흡은 애처로울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유엔 최대 주주인 미국의 지지를 얻으려고 국가적 자존심은 다다미 아래 곱게 접어 두고 숭미 수준의 저자세 외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아시아 대 재앙은 ‘이제 일본도 지구촌의 큰 일에 앞장서는 어른 국가다’라는 인식을 심어줄 지름길을 열었습니다. 더구나 쓰나미 피해국 가운데는 상임 이사국 진출의 최대 경쟁자인 인도가 포함돼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세계 최대 구호국 명찰을 달고, 피지원국으로 전락한 경쟁자의 텃밭을 누비는 꿈이 일본으로서는 얼마나 달콤하겠습니까? 인도가 남 못 지 않은 큰 피해를 입고도 국제 지원을 전면 거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인도는 자기 나라에서도 만 5천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도와주러 달려온 국제기구와 NGO들에 대해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다른 피해 국가들에게 현금과 육해공군 지원 병력을 열심히 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인당 국민소득에서 인도를 앞서는 태국에게 까지 구호 성금을 내놨습니다. 남아시아 종주국 역할을 눈에 띠게 잘 해도 유엔 안보리 가기가 쉽지 않을 상황인데 경쟁국인 일본이 세계 최대의 지원국으로 부상하는 마당에 대피소에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다급함의 결과입니다. 유럽의 시각: 미국 견제의 방파제쓰나미의 국제 정치 공식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연합의 대대적인 지원 행렬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지금까지도 남아시아 지역에서 영 연방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이나 인도차이나 반도의 과거 식민지에 깊은 미련을 갖고 있는 프랑스가 우선 그렇습니다. 영화 <연인>이나 <인도차이나>를 보면 옛 유럽의 아시아 식민지에 대한 애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렵사리 유럽연합 (EU)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세계 최강의 영예를 되찾으려는 유럽 입장에서는 인도양 지역을 미국이 장악한 태평양에 버금가는 앞 뜰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담: 동티모르가 내놓은 인도네시아 지원 성금 남의 비극을 소재로 가십 거리 만들기가 조심스럽다는 전제를 깔고 여담 한가지만 하지요. 말레이지아와 함께 동남아 지도국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인도네시아 얘기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2000년 국제 압력에 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독립을 허용했던 과거 자기 나라 촌 동네 동티모르가 옛 지배자의 피해 복구를 지원한다며 5억원을 “쾌척” 하는 바람에 아주 스타일을 구긴 셈이 됐습니다. 예정됐던 동해 행을 취소하고 인도양에 위용을 드러낸 미 항공모함 링컨 호나 성조기를 휘날리며 아체 해변을 누비는 미 해병대의 모습에서 식민지 해안에 무단 상륙하는 제국 열강의 군대를 연상하고 싶은 얄미운 생각이 머리를 쿡쿡 찌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남 돕겠다고 나선 이들인데 이번만은 넉넉한 마음으로 새해 덕담이나 해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같을지 몰라도 과거에는 가난한 나라를 총칼로 짓밟던 제국들이 이제는 돈과 구호품을 들고 몰려와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것을 역사의 발전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덕담 말입니다. |
쓰나미의 국제정치학
남아시아 쓰나미 (津波) 사태에 따른 인명피해가 1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가히 세계사적 재앙입니다. 하필이면 안 그래도 먹고 살기 어려운 지역을 골라 비극을 연출했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반면 세계의 구호지원은 인류애의 치부책에 기록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