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재판부 사찰 의혹 문건 어떻게 볼 것인가 - 내용 분석과 판단 기준
...공무원이 행정규칙에 정해진 직무 범위에 벗어나는 일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부당행위나 불법행위, 또는 징계사유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직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는 '대검찰청 사무분장 규정'에 보면 7조에 '인권정책관'의 직무 범위도 규정돼 있습니다. '검찰사무와 관련된 인권보호 정책, 인권침해 예방·감독, 검찰청 내 양성평등 정책 및 성비위 예방·감독 등 업무의 총괄 기획·조정·지휘 및 감독에 관한 사항'입니다. 이는 수사정보정책관의 직무 범위와 명백히 다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수사정보'로 볼 수 없는 '양성평등 정책' 등에 대한 자료나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했다고 해서 이를 부당행위나 징계사유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불법행위나 부당행위 또는 징계사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직무 범위를 벗어나서 한 행동이 타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등의 부당한 행위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직무범위를 벗어난 정보 수집 행위라고 해도 이것이 양성평등 정책 관련 정보 수집 같이 타인의 권리 제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행동이라면 징계사유로 볼 수 없겠지만, 직무 범위를 벗어나 누군가를 체포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면 당연히 징계사유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판사 관련 정보수집 행위를 양 쪽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가 될 것입니다. ● 판사 관련 정보와 대법원의 2016년 판결 이와 관련해서는 2016년 8월 17일에 대법원이 선고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판례를 참고해 볼만 합니다. 이 판결의 취지는 '공개된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의 별도의 동의 없이 영리목적으로 수집하여 제3자에게 제공한 행위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거나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여 위법한지 여부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입니다. 공개된 개인정보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수집하는 것은 원칙적 차원에서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로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당사자 동의 없는 개인 정보 수집과 처리가 가능한데, 그 기준에 대해 대법원이 설명한 것입니다. 먼저 대법원은 선행 판례를 판단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합니다. '정보주체가 공적인 존재인지, 개인정보의 공공성과 공익성, 원래 공개한 대상 범위, 개인정보 처리의 목적·절차·이용형태의 상당성과 필요성, 개인정보 처리로 인하여 침해될 수 있는 이익의 성질과 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인정보에 관한 인격권 보호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그 정보처리 행위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정보처리자의 알 권리와 이를 기반으로 한 정보수용자의 알 권리 및 표현의 자유, 정보처리자의 영업의 자유, 사회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 등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비교 형량하여 어느 쪽 이익이 더 우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그 정보처리 행위의 최종적인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고, 단지 정보처리자에게 영리 목적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그 정보처리 행위를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1. 9. 2. 선고 2008다4243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2다49933 판결 등 참조)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대법원은 이미 공개된 정보를 제3자가 다시 이용하는 경우와 관련해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다음을 제시합니다.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수집․이용․제공 등 처리를 할 때는 정보주체의 별도의 동의는 불필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러한 별도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나 제17조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었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인지는 공개된 개인정보의 성격, 공개의 형태와 대상 범위, 그로부터 추단되는 정보주체의 공개 의도 내지 목적뿐만 아니라, 정보처리자의 정보제공 등 처리의 형태와 그 정보제공으로 인하여 공개의 대상 범위가 원래의 것과 달라졌는지, 그 정보제공이 정보주체의 원래의 공개 목적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지 등을 검토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대법원은 이 같은 기준을 근거로 해당 사건에서 문제가 된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제3자에게 제공하였더라도 그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법적 이익이 그와 같은 정보처리를 막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보주체의 인격적 법익에 비하여 우월하므로, 피고의 행위를 원고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로 평가할 수는 없다.'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2014다 235080 판결) ● 문건 작성의 법적 이익과 판사의 인격적 법익 따져봐야 이를 대검의 판사 관련 정보 수집 및 문건 작성 행위에 적용해보면, 공개된 정보 등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수집해 관련 업무를 하는 검사들에게 제공한 행위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법적 이익이 이와 같은 행위(정보처리)를 막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판사들의 인격적 법익에 비해 우월한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평가해야지만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문건 작성 행위가 부당하거나 불법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 수집 및 문건 작성 행위가 부당하거나 불법적이지 않다면 설령 이 행위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행정규칙 상 직무범위를 벗어난 것이더라도 그 자체로 징계사유로 삼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이론적으로는 부당행위 여부와 관계없이 직무범위 이탈만으로도 징계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 수는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극히 가벼운 징계에 해당할 것입니다.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청구 사유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결국,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된 정보나 법조계 지인 등을 통해 알려진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행위가 기자, 시민단체, 법무법인 등의 판사 관련 정보 수집 행위처럼 이로 인해 얻어지는 법적 이익이 이를 막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판사들의 인격적 법익에 비해 우월하다고 볼 수 있는지, 아니면 민간기관의 경우와는 달리 대검의 문건 작성으로 인해 얻어지는 법적 이익이 판사들의 인격적 법익에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는지가 징계 사유 성립 여부를 가르는 핵심 판단 기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법률 용어를 빼고 평범한 말로 바꾼다면 직무 범위 논란을 떠나서 '공개된 정보를 이 정도로 이용하는 행위가 해도 괜찮은 정도의 행위이냐, 아니면 무리한 행위냐'가 대검의 문건 작성 행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취재파일을 통해 제시된 문건 내용 전체에 대한 분류 및 분석, 그리고 작성 경위 등에 대한 설명 등을 바탕으로 각자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취재파일을 쓴 목적 이 취재파일의 목적은 대검의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 작성 행위가 불법 사찰에 해당한다거나, 정당 행위에 해당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설사 불법 사찰이 아니고 징계 사유로 삼기에도 근거가 취약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여전히 이와 같은 행위를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보다 각 사건을 담당하는 대검 부서나 고검 공판부 등이 맡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든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과거 논란 등에 비춰볼 때 이와 같은 판사 정보 수집이 다른 부당한 목적을 가진 활동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한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취재파일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론하면서도 실제로 내용은 제대로 뜯어보지 않는 이른바 '재판부 불법 사찰 의혹' 문건의 내용을 정확하게 분류해 제시하고, 이에 대한 판단의 근거들을 제공하기 위해 작성됐습니다. 벌써 보름 가까이 대한민국 전체를 논란에 휩싸이게 한 윤석열 총장의 징계 논란,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재판부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데에 이 취재파일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첨부]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 전문 (9쪽)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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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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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7 |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