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질병의 역사'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나?
...하지만 이러한 낙관론은 자만에 불과했으며 다시 '감염병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21세기의 인류는 통감하고 있다.' 이규원 교수의 지적처럼 학습을 통해 진화하고 발전하는 인류의 특성상, 재앙에 가까운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책도 함께 진화되는 게 자연스럽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목숨을 잃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은 쌓여가지만 그 지식은 신종 감염병의 유행 자체를 막는 데는 큰 도움을 주지 못 합니다. 감염병의 유행과 방역을 논할 때 '창과 방패'에 많이 비유하는데, '낡은 방패로 새로운 창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8일과 19일 이규원 교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규원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서 의학과 질병의 역사를 다루는 의사학(醫史學) 전공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의 객원교수로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책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의 옮긴이이기도 합니다.) Q. 코로나19와 스페인 독감 상황이 비슷하다. A. 당시 상황을 보면 지금과 비슷하다. 콜레라 같은 소화기 질환과 달리 스페인독감은 주로 폐와 관련된 호흡기 질환이고, 주요 증상(물론 세부 증상은 다르다)이나 빠른 전파 속도, 감염 경로 등에 있어 유사하다. 또 둘 다 RNA바이러스가 병원체이기 때문에 변이의 속도도 빠르다. 특히 코로나19와 스페인 독감 모두 공기를 매개로 감염되기 때문에 마스크를 쓴다든지 밀집 상황을 피한다든지 방역하기 위해 썼던 수단이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특히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이 스페인독감 때 시작된 건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방법으로 감염병에 대처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Q. 신종 감염병은 단시간 내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건가? A. 신종 감염병의 경우 상당 기간 비약물적 개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같은 개인적 대책, 소독과 환기 등 환경적 대책, 격리·검역·봉쇄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 이동제한과 국경폐쇄 같은 이동에 관한 대책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동안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낡은 방패로 새로운 창의 공격을 막는 것이라 '비슷한 상황은 이미 겪었는데 왜 또 이런 상황에 놓인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감염병의 발생과 유입 자체를 막아야 하는데, 글로벌 자본주의 하의 현 상황에서 선제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Q. 인류 역사상 완전히 근절된 감염병이 있나? A. 우리가 흔히 '천연두'라고 알고 있는 '두창'은 지금 완전히 사라졌다. 인류가 근절에 성공한 감염병은 두창이 유일하다. 백신을 이용한 '면역학적 봉쇄 작전'을 철저하게 펼친 결과 1977년 소말리아에 마지막 환자가 나왔고, 2년 동안 환자가 더 생기지 않자 그 이듬해인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두창의 근절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두창바이러스를 미국과 러시아 두 곳에 보존해 놓았고, 마음만 먹으면 실험실에서도 합성이 가능하다. 현재는 예방접종이 중단되어 면역 보유자의 비율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역설적으로 바이오 테러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근절되었기 때문에 유력한 생물학적 대량 살상 무기로 전용될 위험이 상존한다는 얘기다. Q. '집단면역'에 관심이 많다. 언제 도입됐고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됐는지 궁금하다. A. 1920년대 인간이 아닌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감염병을 연구하는 그룹에서 집단면역이라는 개념이 최초 등장했다. 그 당시에도 개인이 획득한 면역에 대한 인식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집단 차원의 면역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것이 생쥐의 실험을 통해 제시되자 홍역을 비롯한 인간의 감염병에도 적용하게 된 것이다. 역학적으로 봤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몇 명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 나타내는 감염 재생산수가 1보다 작아야 유행이 확대되지 않는데, 집단 내 면역 보유자의 비율이 일정 정도에 도달하면 감염 재생산수가 1보다 작아져 결국 유행이 종식된다는 것이 집단면역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면역이라는 것이 실재하는지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개념 자체가 틀린 건 아니라는 게 일반적 견해다. 하지만 경향이 종식을 향해 간다는 얘기지 즉시 종식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집단면역의 달성이 곧바로 코로나19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맹신해서는 안 된다. Q. 문명이 감염병을 낳는다는 말의 의미는? A. 감염병은 바이러스와 세균, 기생충 등의 병원체가 인체에 침입하고 증식함으로써 발병한다. 하지만 인류가 처음부터 대규모 감염병에 희생된 건 아니다. 인류의 삶에 깊이 침투하기 시작한 건 농경사회 이후 야생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고 도시화가 진행돼 인구 규모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서 급성 감염병의 유행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감염병은 문명 특유의 질병이며, 문명이 심화될수록 감염병의 위협도 증대된다고 할 수 있다. 환경 파괴와 밀집 축산 등으로 야생동물로부터 유입된 신종 감염병이 촘촘한 항공망과 도로망을 통해 순식간에 전 지구적으로 퍼지는 현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인류는 감염병을 겪으면서 문명을 발전시킨 점도 크기 때문에 결국 문명과 감염병은 상호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Q.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을 미리 대처하고 막을 순 없나? A. 감염병의 대유행은 감염자의 인명 피해뿐 아니라 경제손실과 의료체계 붕괴 등의 혼란을 단기간에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상당하다. 그런데 아까 상당 기간 비약물적 개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듯이, 신종 감염병과 관련해 선제적으로 의학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일단 병원체의 정체가 밝혀지고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백신이든 치료제든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 공조를 통해 감염병 발생의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고, 철저한 검역과 방역을 통해 유입과 확산을 저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런 점에서 과거의 사례는 어느 정도 보편성을 띠고 반복해서 오기 때문에 감염병과 방역의 역사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규원 교수는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 상황처럼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고전적인 대응에 그치게 된다. 근대 시스템이 감염병 통제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라 감염병의 유행이 근대 시스템의 성립에 기여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전 세계가 공통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지금이야말로 인류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체계를 모색할 기회일지도 모른다.' 정답을 찾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과거 질병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과정 속에 그 답의 단초가 숨어있을 지도 모릅니다. 저희 SBS D 포럼을 기획하는 SBS 미래팀은 코로나 시대 속에서의 올바른 생존해법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따뜻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 구석구석 찬찬히 들여다보고 함께 이야기 나눠 보고 싶습니다. 다음 주 더욱 알찬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참고문헌> Locust Avenue, masks on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To prevent influenza!) Pandemic Influenza: The Inside Story An electron micrograph showing recreated 1918 influenza virions *** SBS 보도본부 미래팀의 취재파일은 이라는 SBS의 대표 사회 공헌 지식 나눔 플랫폼을 중심으로, SBS 보도본부 미래팀원들이 연중 작성합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전하는 뉴스레터 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매주 수요일, 지혜를 모으는 담론의 장이 펼쳐집니다! SBS 미래팀의 취재파일 내용을 접하고 싶은 분은 SDF 다이어리를 '구독'해주세요! ▶ SDF 다이어리 구독하러 가기 SBS 미래팀 / sdf@sbs.co.kr
SBS 뉴스
|
미래팀
|
2021.01.29 |
생활 ·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