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HBM4
미국의 대중 수출금지 조치에도 밀수업자들이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든 첨단 고대역폭 메모리(HBM) 칩을 중국으로 빼돌리고 있다고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최근 확산하는 밀수 수법은 HBM을 저가형 서버 프로세서와 함께 기판에 패키징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 HBM 단독 수출이 아니라 서버 프로세서 항목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수출 제한 규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미국 수출 규정에 따르면 패키지의 전체 연산 능력은 메모리 칩이 아닌 서버 프로세서가 기준입니다.
중국 현지에서는 이렇게 들여온 패키지에서 HBM을 다시 분리하는 작업을 벌입니다.
이 분야의 기술자들이 패키지에 열을 가해 납땜을 녹인 뒤 필요한 메모리 스택을 떼어내고 나머지 서버 프로세서는 폐기합니다.
이 분리 작업은 매우 정교한 것으로, 실패율도 높습니다.
열을 너무 빨리 가하거나 너무 오래 가하면 내부의 메모리 스택이 뒤틀리거나 균열이 생기기도 합니다.
밀수업자들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이 작업으로 얻는 이익도 크기 때문입니다.
확보한 HBM은 주로 중국의 종합 IT·통신 기술 기업인 화웨이 테크놀로지스의 고객사들에 판매됩니다.
화웨이 공급망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화웨이는 최근 일부 고객사에 차세대 주력 AI 칩인 '어센드 960DT'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한 HBM이 상당 부분 탑재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화웨이는 어센드 960DT가 기존 칩보다 성능이 두 배 뛰어나며, 중국이 자체 제조할 수 있는 강력한 프로세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화웨이는 또 한국 기업으로부터 필요한 메모리 칩을 구매할 수 없게 되자 자사 AI 칩을 주문한 일부 고객사에 필요한 메모리 칩을 직접 구하라고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기술 대기업들도 AI 칩을 위해 한국의 고성능 HBM이 필요하게 된 셈입니다.
▲ 화웨이 어센드칩 전시 부스
화웨이는 딥시크와 같은 중국 오픈소스 모델을 효율적으로 구동할 수 있을 만큼 성능이 좋은 칩을 공급해 왔습니다.
그러나 HBM은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며, 중국 내 생산량은 극히 미미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이런 상황이 골치 아픈 문제라고 디인포메이션은 짚었습니다.
자사 메모리가 탑재된 중국산 AI 칩이 발견되면 미국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타이완 TSMC는 2024년 자사가 만든 칩이 화웨이 제품에서 발견된 뒤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받았고, 이후 미국은 TSMC에 중국으로의 AI 칩 수출을 전면 중단하도록 명령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미국과 한국의 수출통제 규정을 포함해 관련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며 2020년 미국의 수출 규제 시행 이후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AI 야망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목은 HBM 부족으로 꼽힙니다.
HBM은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전송할 수 있어 AI 칩의 최대 처리 성능을 이끌어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AI 칩이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특히 거대 AI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HBM과 엔비디아 제품 같은 강력한 AI 프로세서를 결합해야 합니다.
충분한 메모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딥시크나 문샷 등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 AI 모델을 지속적으로 학습시키고 배포하는 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에서 밀수 메모리 중개 일을 하는 한 20대 중개인은 스스로를 밀수업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일을 애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디인포메이션에 "조국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요 급증으로 가격이 치솟았다며 "1년 전만 해도 HBM3E 1개가 중국에서 수백 달러에 거래됐는데, 지금은 약 4천 달러에 거래된다"고 말했습니다.
AI 칩 패키지 하나에는 이런 메모리가 6∼8개 필요해, AI 칩 자체와 서버, 전력 비용을 빼고도 메모리 값만 2만 4천∼3만 2천 달러가 더 들어갑니다.
한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주문해온 한 밀수업자는 모방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제 이 일에서 손을 떼야할 때가 됐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사용하는 경로를 이제 다른 여러 업자도 함께 이용하고 있다.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규제 당국에 발각되기도 쉬워진다. 한국과 미국의 단속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다. 내년에는 회사 지분 대부분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SK하이닉스·삼성전자 제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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