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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성 범죄'를 뿌리 뽑는 방법 [취재파일]

'관계성 범죄'를 뿌리 뽑는 방법 [취재파일]
▲ 관계성 범죄

사회부 기자인 제가 올해 들어서 취재한 강력 범죄의 대부분은 이른바 '관계성 범죄'였습니다. 이번 달만 해도 관계성 범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울 송파구에서 장모를 살해하고 아내를 납치한 사건(10월 11일), 제주 연동에서 연인 관계였던 4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10월 12일), 전북 전주에서 접근 금지 처분을 받은 남성이 별거 중이던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사건과 충남 아산에서 스토킹을 당하던 여성이 피살당한 사건(10월 13일) 등은 모두 아는 남성에 의해 피해 여성 혹은 그 가족이 살해된 사건이었습니다. 살인 범죄 5건 중 1건은 교제 폭력이나 스토킹과 같은 '관계성 범죄'가 선행되었다는 통계도 암울한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사건 이후가 아니라 사건 이전에 살고 싶다"

범죄의 결과가 꼭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 말고도 피해자를 흉기로 위협하거나 가족을 협박한 사건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스토킹 범죄에 시달리고 있는 한 피해자가 "(강력) 사건 이후가 아니라 사건 이전에 살고 싶다"는 말은 오랫동안 귀에 맴돌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관계성 범죄 소식은 당장 내게 닥친 일이 아닐지라도 피해자들의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한 무게로 남았습니다.

해법은 여러 갈래로 제시됐습니다. 우선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관계성 범죄의 특수성을 더 예리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관계성 범죄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신고를 원하지 않거나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히더라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관계의 맥락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겁니다. 피해자가 신고 의사를 거둔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건을 처음 마주하는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설득하고, 이들의 안전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피해자가 숨는 것 아니라, 적극적인 '가해자 격리' 필요"

스마트 워치
피해자의 손목에 스마트워치를 채우고 순찰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관계성 범죄를 막지 못한다는 지적도 관계성 범죄 때마다 되풀이됐습니다. 송란희 여성의전화 상임 대표는 "스마트워치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장치일 뿐, 가해자에 대한 기본적인 제재를 회피하면서 범죄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것인지 무슨 의미냐"고 되물었습니다.

잠정조치 가운데 그나마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조치인 '접근금지 명령'마저도 위반하는 사례는 속출하고 있습니다. 올해 8월까지 법원의 100m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사례만 950건을 넘었습니다. 가해자는 여전히 피해자 곁을 맴돌고, 피해자는 언제 닥칠지 모를 위협에 불안해하며 일상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 이것이 지금 관계성 범죄 피해자들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잠정조치 4호 인용률은 오히려 하락

경찰은 관계성 범죄 대응을 강화하면서 유치와 전자장치 부착 등 물리적 격리를 위한 신청이 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신청이 늘어난 만큼 법원이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국회입법조사처 분석에 따르면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의 유치"가 가능한 잠정조치 4호의 경우 아래와 같이 경찰의 신청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지만, 법원의 인용 결정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법원의 인용 기각 사유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취재파일] '관계성 범죄'를 뿌리 뽑는 방법
법원의 낮은 인용률은 관계성 범죄를 마주하는 일선 수사관들의 판단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칩니다. 잠정조치를 통해 가해자 격리 효과를 실제로 체감한 경찰은 향후에도 유치 등의 조치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뚜렷한 사유 없이 법원에서 신청이 기각된 경험이 쌓이면 아예 신청을 꺼리게 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 법원의 반복된 기각이 현장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이어지고,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물리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수단마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할 수 있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관계성 범죄, 뿌리 뽑으려면

돌이켜보면 관계성 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은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습니다. 몰라서 막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반복되는 전수 조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빈틈없는 피해자 보호·지원 체계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집중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관계성 범죄를 뿌리뽑겠다'는 절박함이 수사와 사법의 현장에서 지금 바로 실현되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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