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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반영 못한 탁상행정"…농지전수조사에 농촌 혼란·반발

"현실 반영 못한 탁상행정"…농지전수조사에 농촌 혼란·반발
▲ 농지 심층조사 준비 및 추진 상황 점검 사진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농지전수조사에 착수하자 농촌 현실을 외면한 채 경자유전 원칙만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지난달 28일 시행된 개정 농지법은 농지 처분 명령을 재량 규정에서 의무 규정으로 변경했습니다.

종전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처분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했으나 개정법은 이를 의무화했습니다.

특히 정당한 사유 없이 농사를 짓지 않거나 불법으로 임대한 농지 소유자에 대해 처분 의무를 통지하고, 처분 의무 통지를 받으면 원칙적으로 1년 안에 농지를 처분해야 합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 규정이 제각각인 농지 보유 사유와 고령화·농촌 인력 부족으로 경작이 어려운 현실 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농촌 현장에서는 개정법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도시로 나간 자녀에게 농지를 증여한 농민이 손을 보태주는 경우나, 나이가 많아 경작하지 못하는 경우 등 개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실경작하지 않는 농민의 농지를 빼앗아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그것입니다.

전북 남원에 농지를 소유한 양 모(55)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농지를 증여받았는데, 형제들이 모두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탓에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이웃에 농지를 임대하고 있다"면서 "개정된 법안대로라면 처분 명령 대상이 될 것이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까지 내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이어 "농사를 짓고 있지는 않지만, 대대로 3대 넘게 지켜온 집안 재산을 직접 농사짓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분해야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또 남의 농지를 빌려 대리 경작을 하는 농민들도 자신의 협소한 농지만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아 농사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김포시 하성면에 사는 한 농민은 "어차피 내 농사를 짓는 김에 옆 땅까지 빌려 농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내 땅만으로는 소득이 적기 때문에 이런 대리경작은 상당수 농민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자기 땅만으로 농사를 짓도록 한다면 실제 소농들은 수익이 줄어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고 개탄했습니다.

개정법 시행으로 실경작하지 않는 농지 처분이 증가하면 지가 하락도 가속할 것이라는 관측도 농민들을 힘들게 합니다.

양 씨는 "법 개정으로 매수 대기자들도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매수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선복 강원도 춘천감자생산협의회장은 "지금 농촌을 한 번이라도 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농지를 제값 받고 판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텐데, 책상머리에서 나온 정책에 농민들은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여기 노인네들은 농사지을 힘도 없어서 1평당 1천 원 정도에 도지(임대 경작) 주고 겨우 용돈벌이나 하는데, 정부는 농가에 지원을 추가해주진 못할망정 힘만 더 빼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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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에 따르면 전수조사 착수(5월18일) 전후의 충북 청주 근교인 남일면의 '답'(논)의 ㎡당 가격은 약 12만7천∼14만6천 원이었으나 현재는 약 9만2천 원으로 28∼37% 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약 4.5개월) 거래 건수도 34건에서 16건으로 절반 이상 크게 줄었습니다.

남일면 한 부동산사무소 공인중개사는 "농지 가격이 예전보다 30% 이상 떨어졌다"며 "시세보다 30∼40% 싸게 나온 매물만 겨우 소화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구조적으로는 상속받은 땅이나 고령으로 농사를 그만둔 경우, 주말농장으로 샀다가 방치한 경우 등 소유 경위가 제각각인데 획일적 기준으로 조사하면 (법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부연했습니다.

경남 밀양시 웅동에서 4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최 모(84)씨는 "팔 사람은 많은데 살 사람이 없다"며 "2년 전만 해도 땅값을 평당 2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10만 원도 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경기 양평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도 "가격을 많이 내려서라도 농지를 팔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전화가 간혹 온다"며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사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귀띔했습니다.

그는 이어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한 경우에는 마땅한 조치를 하는 것이 맞지만, 요즘 아파트가 아닌 농지로 돈을 벌자고 매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이번 정부 조치가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전수조사의 물리적 한계와 조사 후 불명확한 지침에 대한 지적도 제기됩니다.

조사 기간이 짧고 인력이 부족한 탓에 조사율도 저조합니다.

수도권 주민들의 세컨하우스나 귀촌 지역으로 인기가 높은 경기 양평군은 현재 60여 명의 조사원을 채용, 8만6천여 필지를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사를 마친 필지가 1만9천여 필지로, 전체 조사 대상의 24%에 불과해 정부의 계획대로 다음 달 말까지 조사를 모두 끝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총 8만3천여 필지를 대상으로 심증 조사를 하는 여주시의 경우에도 32명의 조사원을 채용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현재 조사율이 43%에 머물고 있습니다.

특히 농촌 지역이 많은 지자체의 상황은 이보다 더 좋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또 조사 결과에 따라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에 앞서 청문 절차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이에 드는 시간과 업무량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자체 공무원들의 전언입니다.

지자체들은 일단 정부의 지시에 따라 조사를 진행하고는 있으나, 고령화로 경작을 못 하는 토지나 상속받은 토지 등을 무조건 매도하도록 해야 하는지 등 조사 결과에 대한 지침도 명확하지 않다며 혼란스럽다는 입장입니다.

경북 청송군에서도 최근 들어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한 농민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지침이 없어 대응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경자유전 원칙'이라는 법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적지 않다"며 "미경작 토지를 무작정 팔라고 할 경우 농촌지역이 활력을 잃을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농지 소유주로부터 '팔려고 내놔도 팔리지 않는데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항의성 전화가 적지 않다"며 "정부가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보완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사진=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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