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 수사는 부실했고, 그때부터 김진주 씨는 '싸우는 피해자'가 됐습니다. 일일이 가해자에 대한 형사재판을 방청하며 귀동냥하듯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진주 씨는 '공판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 기록에 대해 접근하는 것마저 쉽지 않았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형사소송 확정 판결 이후, 김 씨는 부실 수사 책임을 묻기 위한 국가 배상소송을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폭행 정황의 핵심 증거였던 청바지 DNA 감정서에 대한 열람·등사 신청, 즉 피해자도 사건 기록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법원과 검찰에 요청했지만, 김 씨가 받은 문서는 사진처럼 온통 까맣게 가려져 있었습니다.
수사기록을 보관 중이던 검찰은 해당 감정서를 비공개한 이유로 '사생활 보호'와 '수사 기밀 누설 우려'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인 김진주 씨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옷에서 나온 수사기관의 DNA 감정 결과를 정작 본인이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인 자신이 수사 기밀을 외부에 누설할 연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도, 검찰의 비공개 결정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진주 씨는 검찰을 직접 찾아간 다음에야, 해당 감정서 원본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사건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에 따른 공개 조치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지침을 적용하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공개되고, 어떤 경우에는 비공개되는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김 씨 뿐만 아니라, 실제 많은 범죄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가해자의 형사 재판 소송 기록 전부에 대해 증거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도 검찰은 김진주 씨가 낸 탄원서나 재판 과정에서 이미 공개된 서류처럼 굉장히 일부만 보냈어요. 수사와 관련된 기밀은 아예 보내주지 않았고요. 국가배상 소송을 위해 꼭 필요한 자료니까 DNA 감정서는 달라고, 다시 요구했던 건데 저렇게 답변이 왔던 거예요. 김진주 씨가 검찰청에 가서 직접 받아낸 서류 외에 대부분의 수사 기록은 결국 못 받았죠.
형사소송 진행 중에 피해자가 수사 관련 기록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 사건은 형사소송이 다 끝난 후에 국가배상을 위한 소송 준비과정에서 검찰에 자료를 요청한 것인데요. 사실은 검찰 측에서 기록을 안 주겠다고 하면 그 의지를 꺾기는 쉽지가 않죠" - 한주현 변호사 /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 씨 변호인
피해자는 '재판 주체' 아냐…핵심 기록 접근하기 어려워
형사 재판의 주체가 검찰과 피고인, 법원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국가가 '우리를 짐짝으로 취급하고 있구나' 그게 너무 느껴지는 거죠. 피해자들이 증거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올바른 질문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데 결국 수사기관은 (피해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피해자들이 다 힘들어서 저렇게 호소하는 거다, 하는 거죠. 결국에는 저희는 정말 '논리'가 없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애초에 제대로 된 질문도 할 수 없고. 저희가 결국에 할 수 있는 말은 탄원서에 '힘들다'라는 얘기밖에 못하는 거예요." -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 씨
우리나라 형사절차는 오랫동안 국가의 강력한 형벌권에 맞서는 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반면 범죄 피해자는 정작 자신이 당한 사건의 당사자임에도 형사소송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절차에서 충분한 역할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피해자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제한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이제는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형사 절차는 국가가 피고인을 처벌하는 절차이죠. 국가가 개인들의 '사적 제재'를 금지하는 대신 형벌권을 독점하고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돕는 측면이 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권리는 너무 약하고, 피고인 인권 중심의 사법 체계가 꾸려져 오면서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증거마저도 오직 법원과 검찰이 재량으로 '주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고 있어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요."- 오지원 변호사, 법무법인 법과치유
통지도, 열람도 재량…"기준부터 제대로 세워야"
핵심 기록에서 밀려난 피해자들…"이건 알지 말라는 거잖아요, 국가가."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위로의 말도, 범죄 피해자들에겐 두 번 상처가 됐습니다. 김진주 씨 역시, 생업을 포기하고 공판을 쫓아다녀야 했습니다.
아무도, 김진주 씨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재판을 참석하거나 사건번호를 매일 분초마다 검색하고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저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접근성이 없으니까. 가해자가 반성문을 제출했다든지. 이런 게 피해자 측에 알림이 오면 모르겠지만,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루 종일 검색하는 구조예요. 그래놓고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거예요? 결국에는 피해자들도 결국 포기해요. 이건 알지 말라는 거잖아요, 국가가."
김진주 씨는 인터뷰 도중 '기울어져 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변호사도, 기자도, 그 누구도 피해자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는데, 범죄 피해자 마주한 수사와 공판 과정은 정의의 심판대라기보다 기울어진 시소처럼 너무나 피해자에게 불리한 구조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저희(피해자)는 주연도 아니고 엑스트라예요. 신빙성이 없고, 무언가를 요구해도 항상 거절을 당하죠.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피해자들은 어디를 가도 정보를 못 받아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피해자가 '합리적으로'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하는 기분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다들 모르는 것 같아요."
법정 밖에서 말했더니…"피해자도 언론 플레이"
김진주 씨의 국가를 향한 싸움은 결론이 났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13일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를 인정하고 국가가 1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지 3년 8개월 만이었습니다. 법무부는 항소를 포기하면서 피해자에게 사과했습니다. 김 씨가 포기하지 않고, 3년 8개월 동안 법정 밖에서 계속 말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는 피해자를 보복 협박한 혐의로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김진주 씨와 전화 인터뷰를 한 지 약 일주일 뒤인 지난 9일, 부산고법 형사2부 재판장은 증인신문 도중 피해자 역시 재판 과정에서 상당히 언론 플레이가 있지 않았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이 정치화되는 느낌이 든다고도 했습니다.
피해자가 법정 밖에서 말하기 시작한 건, 법정 안에서 말할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호소에 따른 보완 수사로 가해자의 죄명이 바뀌었고, 법원 역시 국가의 부실 수사 책임을 인정했는데도, '침묵하기'를 거부한 피해자의 태도에 대해 재판부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친 겁니다. 범죄 피해자가 마주하는 한국 사회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