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과 함께 발견된 금팔찌 사진을 들어 보이는 김연화 씨
"지난 세월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팔찌를 매만지는 것밖에 없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정보거든요."
가족의 흔적을 찾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전을 찾은 미국 입양 한인 브랜디 올리버(52·한국명 김연화) 씨는 지난 15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한국을 찾아오기까지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다"며 "친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아주 작은 단서, 조금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어 제가 태어난 곳에 오게 됐다"고 했습니다.
김연화 씨는 1974년 4월 11일 대전 중구 은행동 은행교 부근에서 포대기에 감싸진 채 발견돼 대전벧엘원에 맡겨졌습니다.
김 씨가 발견될 당시 옷가지 등에서 정확한 인적 사항이 적힌 쪽지나 편지는 따로 없었지만, 그는 당시 갓난아기였기에 1974년생으로 보입니다.
김 씨는 그해 8월 홀트아동복지회를 거쳐 미국 미시간주의 한 시골 마을로 입양됐습니다.
김 씨의 부모는 아이의 품 안에 금팔찌를 남겼는데, 김 씨는 유일한 흔적인 이 금팔찌를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중히 간직해왔습니다.
그는 이달 초 첫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에 자신의 한국 이름 연화가 친부모가 물려준 것이 아니라 보육원에서 지어준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유년 시절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미국인 양아버지의 심각한 알코올중독 증세로 양부모는 그가 12세일 때 갈라서야 했습니다.
양어머니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며 억척스럽게 김 씨와 베트남에서 입양된 남동생을 홀로 부양해왔지만, 김 씨가 17세일 때 세상을 등졌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힘들게 학업을 마친 김 씨는 일본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98년 일본에서 귀국한 뒤부터 줄곧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진로 변경을 위해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지금은 종양 전문 간호사로 재직하며 슬하에는 쌍둥이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김 씨는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친부모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한층 선명해졌다고 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는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함으로 차츰 변했습니다.
자녀에게도 가족의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항상 가슴 한쪽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습니다.
1장짜리 아동 신상기록과 평생 지닌 팔찌 하나에만 의존해 태평양을 건너온 그는 지난 15일 하루 동안 본인이 발견됐던 장소와 당시 대전벧엘원 자리(현 장애인복지시설 하람)를 둘러보고, 대전중부경찰서와 중구청 등지를 방문했습니다.
대전을 방문하기 직전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DNA 정보를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하람에 남아있던 과거 사진첩과 문서를 꼼꼼히 확인하던 그는 기록에 남아있는 본인의 이름을 보고 놀라워하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70대 초반일 것 같다. 혹시라도 돌아가시거나 더 늦어지기 전에 찾고 싶었다"며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괜찮으니 부모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DNA 정보가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기적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어떤 판단이나 분노 없이 있는 그대로 제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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