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이흥구 대법관 퇴임 행사
이흥구(63·사법연수원 22기) 대법관이 6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늘(7일) 퇴임하면서 "사법 3법(법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 증원) 이후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법원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중앙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법원에 대한 불신을 신뢰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마지막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 대법관은 "사법 3법은 오랫동안 유지되던 재판 제도나 대법원의 위상과 구조를 크게 바꾸게 될 것"이라며 "법원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입법 과정이 충격적이고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주권자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은 법원으로서는 앞으로 어떤 국민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흥구 대법관은 "이런 입법의 배경에는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오래된 불만, 불신이 깔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대체로 불공정하거나 충실하지 못한 재판, 당사자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전문적이지 못한 재판,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재판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법부의 변화 방향은 아직 남아있는 권위적인 모습을 내려놓고 더 전문적이고 투명하며 설득력 있는 재판을 하는 것, 그리고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더욱 존중하는 쪽"이라고 말했습니다.
재판소원·법왜곡죄를 두고는 "법원이나 법관의 업무수행에 상당한 제한으로 작용하겠지만, 지위와 역할에 본질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런 외부적 환경은 법관이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재판을 함으로써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법관 증원을 놓고는 "대법원의 구조와 기능, 전체 법원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법원을 꿈꾸고 만들 것인지 고민을 시작하고 집단 지성의 힘으로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이 시대가 요구하는 법적 문제에 기준을 제시하는 본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대법원의 가장 큰 문제는 사건의 홍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시스템 속에 있다"며 "법원 전체의 두뇌로서의 역할, 즉 이 시대에 꼭 해결되어야 할 법적 문제를 적시에 찾아내 그 기준을 신속하게 제시하고 장단기 과제를 적절히 설정하고 해결하는 등 정책적 기능을 수행할 여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너무 많은 역량이 투입되고 있는 사실심의 보완기능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하고, 고등법원이 그 역할을 최종적으로 감당하게 하고 전문성과 투명성이 더욱 강화된 항소심 구조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며 "대법원과 사실심 법원의 올바른 자리매김이야말로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또 "12·3 비상계엄 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대법원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께 법원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거나 실패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시점에 가장 적절하게 소통하면서 사법부가 어떤 판단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잘 설명하고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법원에 대한 불신은 점점 심각해지고, 비판과 변화 요구는 매섭다"며 "불신의 신뢰로 바꾸기 위해선 이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보다는 그 원인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해소해 나가려는 미래지향적인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페르시아 시인 사디의 시구를 인용한 그는 "다른 이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법관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는 말은 사람의 재판을 담당하는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 새겨야 할 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흥구 대법관은 2020년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제청해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됐습니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부산·창원·대구 등 지역에서 판사 생활을 한 이른바 '향판'(鄕判) 출신입니다.
진보 성향 판사들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 당시 오경미 대법관과 함께 다수의견인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에 반대하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청와대와 사법부 간 견해차로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공백 상황이 반년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흥구 대법관마저 후임 인선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이날 대법원을 떠나게 됐습니다.
이로써 대법관은 당분간 2명 공석 체제가 이어지게 됐습니다.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된 김성수 후보자는 인사청문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의 경우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달 18일 청와대와 합의를 보지 못한 채 손봉기 후보자를 서면 제청했습니다.
이에 청와대는 열흘 뒤인 28일 재제청을 요구했습니다.
갈등 상황이 이른 시일 내에 해소되지 않으면 상고심 재판에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와 관련해 이번 주 중으로 입장을 밝힐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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