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벌금 최고액, 그리고 이어진 반전
[조장현 / 당시 부산지법 공보판사 (2019년 1월 15일 SBS '8뉴스') : 무료 일본 여행을 시켜주겠다는 등의 유혹으로 일반 시민을 이용해서 범행을 적극적이고 장기간 이어왔기 때문에 죄질이 불량하다고….]
여기까지가 그간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 뒤 반전이 있었는데요. 1심 선고 반 년 뒤에 항소심에서 대폭 감형이 되면서 A 씨가 풀려난 겁니다. 2심 재판부는 "죄책은 무겁다", 하지만 "천문학적 벌금형이 이들의 가담 경위와 범행 이익을 아는 국민의 법 감정 등에 맞는지는 의문"이라며 A 씨에게 징역 1년 4개월과 벌금 6,623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내야 할 벌금이 절반가량 줄었지만, 여전히 역대 최고액 수준, A 씨 선택은 도주였습니다. 석방 직후 자취를 감춘 A 씨는 이후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도피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유령처럼 사라진 A 씨
[염철진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A 씨는 사실 단서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통신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상 유령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벌금 미납자 추적은 형이 확정된 뒤 집행하는 단계에서의 일이라서, 범죄 수사 단계에서 허용되는 여러 장치와 기법을 쓰기가 어렵고, 때문에 실시간 위치 추적 등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단 게 현장의 목소립니다.
[염철진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형 집행 단계에서는 그러한 (압수·계좌 등) 영장이 허용이 되지 않고 있고요. 휴대전화를 의도적으로 숨긴다고 한다면, 통신영장으로도 얻을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거든요. 결국은 수사관들이 직접 밤낮없이 몸으로 뛰는 수밖에….]
담당자가 여러 차례 바뀌는 사이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필사의 추적 끝에 잡고 보니 "벌금 못 내, 노역하겠다"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형사소송법 개정안 초안에는) 검찰 수사관이 더 이상 형 집행 업무를 할 수 없는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10월 안에 A 씨를 포함해서 그동안 장기 미제 사건을 처리해야 된다고….]
유령처럼 사라졌단 A 씨, 검찰은 그 주변인들에게 주목했습니다. 마음먹고 숨어버린 A 씨에게 분명 조력자가 있을 거라고 의심을 한 건데, 우여곡절 끝에 단서가 나왔습니다. 서울 종로 귀금속거리 일대를 A 씨 지인들이 이상할 정도로 자주 찾는단 사실을 포착한 겁니다.
[염철진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조력자로) 유력한 사람들을 저희가 선별을 해서, 금괴 밀수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종로구에 있는 금은방 거리를 많이 간다면 그건 이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지난한 탐문을 거쳐 지인들이 모인 종로 한 카페에서 A 씨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바로 알았습니다, A 씨라는 것을. 너무 소름이 사실 돋았습니다. 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저희에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최초로 저희가 그 모습을, 실물을 보니까….]
역추적이 시작됐습니다. 대중교통을 타더니
[전화를 하는데?]
A 씨가 도착한 곳, 영등포구 은신처가 마침내 확인됐습니다. 지난달 21일 체포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수사관이 은신처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가더니 급히 빠져나오고 곧이어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A 씨입니다.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인기척을 들으려고 갔는데, 현관 센서등이 켜지면서 갑자기 통화 소리가 뚝 끊기는 겁니다. 눈치챌 수 있다고 생각하고 황급히 골목 밖으로 나왔고요.]
수사관들을 빤히 바라보던 A 씨, 등을 돌리고 사라지자마자 수사관들이 전력질주하고,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멀리서 그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고요. 문을 닫고 잠그려는 순간에 저희가 문을 당겨서….]
수갑을 채우면서 7년 만의 도피 생활은 끝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A씨는 공기계를 포함해서 휴대전화 여러 대를 돌려 쓰고 외국인 명의로 텔레그램 메신저를 사용하는 등 수법으로 추적을 피해온 걸로 드러났습니다.
[염철진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휴대전화를 사용 목적별로 다 달리해서 세 대를 갖고 있었고요. 일본인 명의를 빌려서 텔레그램에 접속하고 있었고….]
A 씨는 도망자라곤 믿기 어려운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CCTV 영상만 봐도 평온한 표정으로 담소를 주고받는가 하면 이웃 주민과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주민 : 전화 통화를 계속 많이 하시던데, 돈 이야기도 있었고.]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정말 의외였던 게 마스크도 전혀 쓰고 있지 않았고, 뭐라도 본인이 스스로를 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런 거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검거 직후 순순히 고의적으로 숨어지내왔다고 인정했다는 A 씨. 그러면서도 이런 질문을 계속 던졌다고 합니다.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벌금 시효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집행해도 되느냐'고 계속 묻더라고요, 검찰청으로 데려오는 내내. 시효가 끝나기만 기다렸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벌금 미납자의 기본 시효 5년이 지났단 주장인데, 검찰이 이걸 2029년 1월까지로 연장한 상태였거든요. 이런 사실을 알자 이번엔 벌금 낼 재산이 없다면서 버티기에 들어갔습니다.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본인 재산이 전부 추징당해서 재산이 하나도 없다, 나는 벌금 납부할 수가 없다, 노역을 하겠다라고….]
A 씨는 결국 다시 철창 신세가 됐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점이 나옵니다.
어렵게 붙잡아도 '황제 노역'하면 그만?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좀 허탈하긴 했습니다. 매달 200억 원의 벌금을 탕감받게 되는 꼴 입니다. 노역장 유치 제도의 본래 취지는 벌금 납부가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마련된 제도라고 제가 알고 있는데, 고액 벌금을 탕감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올 7월 기준 검찰이 파악한 전국 벌금 미납액은 5조 5천억 원에 육박합니다. A 씨 혼자 10% 정도를 차지하거든요. 뒤집어서 말하면 찾아야 할 벌금 90%가 남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벌금을 추적, 환수하는 게 형 집행 업무를 맡아온 검찰과, 앞으로 출범할 공소청이 풀어야할 주요 과제가 될 전망입니다. 물론, 마냥 기대만 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염철진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2026년에 서부지검의 전체 벌금 (미납) 건수가 1600건입니다. 주력 담당 수사관은 2명밖에 없습니다. 다 해결할 수가 없거든요.]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검거 현장에 나가보면 매우 다양한 일들이 많은데 사실 되게 위험한 일도 많고요. 인력 증원과 수사 장비 확충은 반드시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검찰청은 SBS에 재산형집행 인력 증원과 교육 확대를 통한 역량 강화, 재산 추적 관련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SBS 보도 이후?
[염철진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선고되더라도 집행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요. 어떤 사람에게도 법 집행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국민들께서도 이 업무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김학록 / 서울서부지검 집행과 : 단순히 한 사람을 검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법 집행이 잘 돼야 한다는 국민의 신뢰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원칙과 책임감을 갖고….]
검찰은 공소청 개편 이후에도 엄정한 형 집행을 통한 국가 정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는데요. 국가 정의를 비웃으며 숨고 붙잡혀도 배째라식으로 버티는 이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손 볼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은 아닐까, 곱씹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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