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광주 '아내 살해' 공무원
경기 광주시에서 벌어진 공무원 남편의 '이혼 소송 아내 살해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 피해자의 주소가 소송 서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법 시스템의 맹점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주소 비공개 제도가 마련돼 있음에도 철저한 '신청주의'에 갇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어제(2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30대 남성 A 씨는 이혼소장에 적힌 주소를 보고 아내 B 씨의 거처를 알아내 출근 시간에 맞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소송 서류가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위치를 알려준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 셈입니다.
현행 민사소송법 제163조 등에 따르면 생명이나 신체 위해 우려가 있는 소송 당사자는 '소송관계인 개인정보 보호조치' 신청을 통해 주소 등 개인정보를 상대방에게 비공개할 수 있습니다.
가사소송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 제도가 있었음에도 피해자의 주소는 왜 고스란히 노출됐을까?
수원가정법원 확인 결과 B 씨의 이혼소송은 피해자보호명령 청구보다 먼저 접수됐습니다.
당시 이혼 소장에는 B 씨의 현주소가 기재돼 있었으나 B 씨가 별도의 개인정보 보호조치 신청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상황에서 법원이 위험성을 선제적으로 인지해 직권으로 주소를 가리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기에 소장은 통상 절차대로 송달됐습니다.
이후 별도로 진행된 피해자보호명령 사건에서 송달된 임시보호명령서에는 B 씨의 주소가 가려져 있었지만, 이미 이혼 소장을 통해 A 씨에게 알려진 뒤였습니다.
이렇게 무방비로 노출된 주소는 이번 참극의 결정적 단서가 됐습니다.
'소송관계인 개인정보 보호조치'는 소송 서류 송달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거처가 노출돼 보복 등 2차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7월 본격 시행됐습니다.
그러나 법조인의 도움 없이는 해당 절차의 존재를 스스로 알기 어려운 데다, 법원 등에서 이를 사전에 의무적으로 안내해야 할 규정도 없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처럼 피해자가 직접 신청해야만 작동하는 현행 제도의 맹점은 이미 예견된 바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제도 시행 직전인 지난해 6월 발간한 '민사소송에서의 범죄피해자 개인정보 보호 강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사각지대를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해당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 등에는 여전히 송달 과정에서 피고(피해자)의 주소가 노출돼 추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소 표기 자체를 제한하거나 송달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등 다각적인 보호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다만 법원 실무상 모든 소송에서 당사자의 주소를 처음부터 비공개하는 것은 현실적인 한계가 따릅니다.
민사소송법상 주소는 당사자를 특정하고 관할 법원을 지정하거나 향후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기재가 요구되는 필수 항목이기 때문입니다.
주소가 누락되거나 송달 장소가 불명확하면 법원의 보완 요구 대상이 되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소장 자체가 각하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주소를 법원에는 정상적으로 제출하되 상대방(피고)에게만 공개하지 않도록 예외적인 '보호조치' 조항을 둔 것이지만, 정작 제도를 알지 못해 신청을 누락한 피해자에게는 무용지물이었던 셈입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법적 지식이 부족한 피해자도 필요한 경우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정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가사 전문 변호사인 조철현 법무법인 고운 대표변호사는 "변호사가 없는 경우 원고가 주소지 비공개 제도를 스스로 알기는 어렵다"며 "제도 홍보 시스템을 강화해 법원 접수처 등에 안내 포스터를 붙이는 등 강화된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과거에도 소송 절차에서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알아내 범행에 악용하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해 온 만큼, 신청주의를 넘어선 근본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립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혼 절차는 재범률이 높은 관계성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더욱 적극적인 개인정보 보호 조치가 요구된다"며 "대상자에게 공개 동의 여부를 필수로 사전 확인하는 등의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관련 기관과 시민사회단체 역시 송달 제도의 허점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성명을 내고 "법원이 임시보호명령까지 내려놓고 고작 피해자의 주소도 못 지켰다"며 "피해자가 알아서 신청해야만 작동하는 제도로는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최소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고 가해자를 선제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신청하면 가려준다'는 소극적 행정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의사를 선제적으로 확인해 주소 노출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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