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출신들은 군사(軍事)에서 공자(攻者)든 방자(防者)든 냉정하고 침착함 속에 열정을 끌어내야 승리를 기대할 수 있음을 잘 알 터. 토론과 논쟁도 똑같습니다. 묵직하고 냉철한 가운데 의표를 찌르는 논지를 내질러야 승기를 잡습니다. 하지만 그제 공청회에서 국군사관학교 반대론자들은 거의 대부분 군인 출신임에도 이성의 끈을 놓고 광분하는 패착을 뒀습니다.
공청회에 참석한 육군사관학교 생도 몇 명은 달랐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반대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청출어람입니다. 최고령 참석자인 윤광웅 전 국방장관도 조용히 반대론을 폈습니다. 설득력이 컸습니다. 사관학교 출신 퇴역 군인들이 이번 사관학교 통폐합 싸움에서 이기려면 그제 생도들과 윤 전 장관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욕설과 괴성, 훼방에 단상 점거까지…
그제 국군사관학교 창설 공청회에서 이와 같은 룰은 시종일관 무시됐습니다. 공청회 첫 순서로 창설의 필요성을 표현하는 영상을 틀려고 하자 장성 출신이라고 밝힌 퇴역 군인이 뛰쳐나왔습니다. 고성과 욕설을 쏟아붓고 단상에 주저앉으며 상영을 막았습니다. 영상 봤다고 해서 찬성론이 굳세지지도, 반대론이 약해지지도 않을 텐데 막무가내로 저지했습니다.
이어 육해공군 사관학교 총동창회의 대표로 육사 동창회장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시간도 오래 끌었습니다. 다음 순서로 넘어가야 하지만 해사와 공사 출신 퇴역들이 잇따라 마이크를 낚아채서 발언했습니다. 김홍철 국방정책실장이 정책설명을 하는 시간에는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하던 버릇대로 우렁찬 목소리로 훼방을 놓더니 정책설명이 끝나자마자 퇴역들이 한마디 하겠다며 마이크로 달려들었습니다.
겨우 뜯어말리고 토론으로 넘어갔지만 반대론자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대론자들의 야유와 괴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반대론 토론자들의 말도 이성보다 감정이 우선이었습니다. 질문하고 답변 기회 안주기, 말꼬리 잡기 등 얕은 수법으로 일관했습니다. 반대론자들끼리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언정 설득력을 얻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냉정 붙잡은 생도들, 홀로 빛난 윤광웅 전 장관
공청회 막판에 참석자 중 최연소인 사관학교 생도들에게 발언 기회가 돌아갔습니다. "현행 사관학교가 국군 장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생도들은 사관학교 시설 노후화에 개의치 않는다"며 차분하게 풋풋한 반대론을 폈습니다. 반대론자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제 공청회에서 반대론자들이 눈을 매섭게 뜨고 큰 목소리로 무수한 이야기를 했지만 남는 것은 퇴역 군인들의 추태뿐이었습니다. 윤광웅 전 장관과 생도들이 있어서 그나마 체면치레했습니다. 사관학교 통합과 국군사관학교 창설을 막고 싶다면 반대론자들은 윤 전 장관과 생도들의 자세를 본받아 진용을 재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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