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호 법무부 장관(앞줄 가운데)이 13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제81주년 광복절 기념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을 마친 뒤 후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독립 유공자 후손 23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새로운 출발에 나섰습니다.
법무부는 오늘(13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5개국 출신 독립 유공자 후손 23명(중국 12명, 러시아 5명, 카자흐스탄 3명, 우즈베키스탄 2명, 쿠바 1명)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행사는 광복 81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그 후손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국적 취득자 중에는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인재를 양성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끈 김경천 선생의 후손과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교정과 인쇄, 배포에 참여한 신숙 선생의 후손, 만주와 연해주에서 항일 언론·선전 활동과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헌신한 전일 선생의 후손이 포함됐습니다.
만주에서 대종교의 항일 포교 활동과 민족 운동 지원에 힘쓴 권상익 선생의 후손도 한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이날 대표로 소감을 발표한 권상익 선생의 후손 권성자 씨는 "독립운동가 선조의 희생과 헌신을 가슴에 새기며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질서를 존중하고 선조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더불어민주당 김용만 의원과 수여 대상자 가족 등 130명이 참석했습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2004년부터 이날 대상자를 포함해 독립 유공자 후손 총 1,448명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했습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독립 유공자 후손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고 그 후손들과 대한민국의 역사적 인연을 이어가는 뜻깊은 일"이라며 "앞으로도 독립 유공자 후손을 발굴하고 국적 취득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후손 23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 독립 유공자 15명의 공적 사항 (더 자세한 내용은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김경천 (1888. 6. ~ 1942. 1.)
- 1919년 2·8 독립선언 이후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본격 투신.
-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활동하며 무장투쟁 인재 양성과 군사 기반 강화에 힘씀.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항일 역량 재건에 힘쓰다 소련 당국에 체포돼 옥고 겪음.
2) 신숙 (1885. 12. ~ 1967. 11.)
-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교정·인쇄·국내 배포 활동에 참여.
- 1921년 군사통일회의 의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세력 통합에 기여.
- 1930년 한국독립당 조직과 한국독립군 참모장 활동으로 무장 항쟁 전개.
3) 전일 (1893. 12. ~ 1938. 5.)
-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만주로 이주해 광성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전개.
- 1918년 한인사회당 창립에 참여하고 항일 언론 활동과 군자금 모집에 힘씀.
- 1919년 대한국민의회 서기와 비밀결사소년단 단장으로 항일조직 활동 전개.
4) 최병수 (1876. 7. ~ 1919. 4.)
- 1919년 4월 4일 선장 장날 시위를 계획하고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
- 독립 만세를 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에 체포돼 연행.
- 주재소에서 일본 헌병의 발표로 순국하며 항일독립운동에 헌신.
5) 최이붕 (1897. 11. ~ 1973. 7.)
- 1919년 철혈광복단에 참여해 간도 일대 결사대 조직과 대원 모집에 힘씀.
- 청년회를 조직해 교포들의 동맹 사직과 항일 운동 참여를 적극 촉구.
- 1921년 적기단 단장으로 선출돼 만주 각지 지부 설치와 무장 활동을 주도.
6) 최재형 (1860. 8. ~ 1920. 4.)
- 1909년 안중근 등과 단지동맹에 참여하고 국내진공작전을 지원하며 무장투쟁 전개.
-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출됐고 독립단 조직을 주도.
- 1920년 일본군에 체포돼 총살당하며 연해주 항일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순국.
7) 이여송 (미상 ~ 1936. 2.)
- 1930년대 군사 조직 개편과 혁명 전선 구축을 목표로 하는 조선혁명군에 가담해 항일 무장 독립운동에 참여.
- 제1사 부관으로 무기 구입을 담당하며 무장투쟁 기반 강화에 기여.
- 1936년 집안현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하며 순국.
8) 임천택 (1903. 3. ~ 1985. 9.)
- 1922년 쿠바 이주 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중심으로 독립운동 전개.
- 민성국어학교와 청년학원을 세워 한인 동포와 청년 대상 민족 교육에 힘씀.
- 1938년 대한여자애국단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활동으로 항일 운동 참여.
9) 조근백 (1872. 3. ~ 1908. 6.)
- 1906년 정용기의 산남의진에 참여해 영양·청송·진보 일대에서 항일 투쟁 전개.
- 1907년 입암전투 이후 의진이 해산되자 은둔하며 재기 도모.
- 1908년 자택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현장에서 총살당하며 순국.
10) 권상익 (1900. 11. ~ 1943. 5.)
- 1913년 만주 밀산현으로 이주해 대종교에 입교하고 독립운동 지원에 참여.
- 만주사변 이후 대종교의 항일 포교 활동과 민족 운동 지원에 힘씀.
-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과 관련해 대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됨.
11) 남인상 (1868 ~ 1951. 5.)
- 1919년 용정에서 재남북만주 조선 민족 대표 17인 중 한 사람으로 활동.
- 3·13 만세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포고문 발표와 시위 운동 전개에 참여.
- 대한국민회 성원으로 군자금 모집과 독립군 양성 등 항일 활동에 힘씀.
12) 신홍균 (1881 ~ 1940)
- 1911년 만주 장백현으로 이주해 원종교 및 대진단 소속으로 항일 운동 전개.
- 1933년 원종교도 500여 명을 이끌고 지청천의 한국독립군에 합류해 대전자령 전투에서 군의로 활약.
- 영안·목릉·밀산 일대에서 1930년대까지 항일 활동 지속하고 독서회 등 개최해 한인들의 항일 사상 고취.
13) 최현구 (1898. 5. ~ 1941. 1.)
- 1919년 울산 하상면 일신학교 일대에서 약 200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기를 들고 독립 만세운동 참여.
- 경찰관 주재소까지 행진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항일 시위를 지속적으로 전개.
- 체포 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돼 대구형무소에서 장기간 옥고를 치름.
14) 구철성 (1902. 2. ~ 1937. 12.)
- 1920년 북로군정서에 가입해 군자금 모집과 항일 무장투쟁 활동 전개.
- 대한의용군에 편제돼 항일전에 참여했으나 자유시참변으로 고초를 겪음.
- 러시아 연추 지역에서 보병 중위로 활동하며 항일전에 참여.
15) 장영석 (1891. 10. ~ 1964. 5.)
- 1919년 칠곡 석적면에서 장영창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
- 안동·선산 지역 만세 운동 확산에 호응해 동지들과 거사를 결의.
-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과 태형 90도를 받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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