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인트로
01:23 뒤집힌 판결…1심 '징역 3년' → 2심 '무죄'
02:44 1심 재판부 "A 씨, 태아 살해할 고의 있었다"
03:36 2심 재판부 "A 씨, 태아 사산 사실 몰라…살해 고의 없었다"
05:00 '임신중지 결정=헌법상 자기결정권' 인정한 법원
05:47 "입법 공백 속에서 맞게 된 비극, 사회적 공론화의 계기 됐으면"
06:43 임신중지에 관한 안전한 정보가 제공됐다면
A 씨는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뒤 홀로 월세방에서 지냈습니다. 별다른 소득도 없었고요, 사회적으로는 고립된 상태였습니다. A 씨가 임신 사실을 깨달은 건 임신 34주 차에서 36주 차쯤. 점점 배가 부풀어 올라서 방문한 내과에서 '임신 5~6개월이 넘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음 날, 설마 하는 생각으로 찾은 산부인과에선 '1, 2개월 뒤에 출산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임신을 인지한 지 나흘 뒤, A 씨는 다른 산부인과에서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시 A 씨는 임신 36주 차였습니다. A 씨가 두 번 거절을 당하고도 세 번째 산부인과를 찾아 임신중지를 택한 이유, 경제적 여력이 없을 뿐더러 아기를 낳으면 키울 자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A 씨는 수술 과정 전반을 담은 브이로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제목은 <총 수술비용 900만 원, 지옥 같던 120시간>입니다. 보건복지부는 A 씨의 영상을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수사기관은 조사를 거쳐 A 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죄명은 '살인죄'. A 씨가 임신중지 수술을 받음으로써 태아를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임신중지를 택한 여성에게 살인죄가 적용된 건 A 씨가 처음이었습니다.
1. 뒤집힌 판결…
1심 '징역 3년' → 2심 '무죄'
1심 재판부는 A 씨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가 의료진, 병원장과 함께 태아를 태어나게 한 뒤 살해하기로 공모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최근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실관계는 동일한데,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은 왜 달랐을까요? 핵심은 A 씨가 임신중지 수술 당시 '어디까지 알았냐'는 겁니다. 인지 범위를 통해 A 씨의 의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거죠.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태아가 사산될 줄 알았는지 그리고 태아가 살아있는 상태로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았는지에 따라서 A 씨에게 적용되는 혐의와 그에 따른 양형은 모두 달라집니다. 만약 태아가 살아있는 상태로 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A 씨가 수술을 감행했다면 '살인 혐의'가 적용됩니다. A 씨는 줄곧 '태아가 살아서 태어날 줄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임신중지 수술 당시에 태아가 사산된 상태로 나올 거라고 알았다는 겁니다. 실제로 A 씨는 수술 전, 병원을 연결해 준 브로커에게 '태아가 사산되는지' 물어봤고, '사산된 상태로 나온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습니다.
2. 1심 재판부 "A 씨, 태아 살해할 고의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이런 A 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A 씨가 태아가 살아서 모체 밖으로 나온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수술 과정에서 태아의 출생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의료진이 어떤 방식으로든 태아를 사망하게 할 것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지 수술을 받음으로써 위험을 용인했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A 씨가 태아 사체 처리 동의서에 서명한 점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살인의 고의는 살해 목적이나 의도가 있지 않아도, 자신의 행위로 인해 누군가 숨질 수 있다는 가능성 또는 그 위험을 인지하면 그 자체로 인정됩니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는 A 씨의 미필적 살인 고의를 인정한 겁니다.
3. 2심 재판부 "A 씨, 태아 사산 사실 몰라…
살해 고의 없었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태아가 사산되어 나온다고 알았다'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수술 당시 A 씨는 '살아있는 태아를 제왕절개 수술로 모체에서 꺼낸 뒤에 살해하는 방식'으로 수술이 이뤄진다는 것은 몰랐을 거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즉, A 씨에게 살해의 고의가 없었다고 본 겁니다. 재판부는 A 씨가 "태아는 사산된다'는 브로커의 발언이 의료진에게 문의하지도 않은 채 한 발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습니다. 브로커에게 '태아가 사산된다'고 들었으니, A 씨는 말 그대로 태아가 사산되어 나오는 줄 알았을 거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또, A 씨가 태아 사체 처리 동의서에 서명한 건 태어난 사체에 대한 의료진의 살해를 용인한다는 것이 아니라, "태아의 사체를 위임하는 일반적인 내용으로 보인다"고 봤습니다. A 씨가 유튜브에 게시한 브이로그 영상도 판결의 근거가 됐습니다. 재판부는 "만약 제왕절개 방법으로 수술해서 태아를 모체에서 배출한 뒤 인위적으로 살해하는 방법이나 사정을 A 씨가 알고 있는 상태였다면,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을 게시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 행위로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4. '임신중지 결정=헌법상 자기결정권' 인정한 법원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임신 상태를 유지할지 결정할 권리는 헌법상 보장되는 일반적 인격권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 선고 재판 말미에 재판장인 김용석 부장판사가 직접 밝힌 내용입니다. 재판부는 산모가 임신을 계속 유지할지 결정하는 권리는 '자기결정권'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여성이 임신을 유지할지, 아니면 중단할지 결정하는 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자기결정권'인 만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이 '산모 A 씨의 임신 종결 의사에서 비롯된 것을 양형에 참작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5. "입법 공백 속에서 맞게 된 비극, 사회적 공론화의 계기 됐으면"
"현행 법률이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계속되는 입법 공백 속에서 의료계와 산모 등이 얼마나 큰 혼란에 빠져서 이와 같은 비극을 맞게 됐는지, 사회적 공론화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A 씨의 법률대리인인 김명선 변호사가 2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말입니다. 김 변호사 이야기처럼, 7년 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대체 입법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임신중지는 합법도 아니고, 불법도 아닌 셈입니다. 임신 몇 주까지 임신중지를 허용할 건지,
임신중지를 위해서 산모는 어떤 약물, 시술, 수술을 선택할 수 있는지 등 사회적 합의와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한 겁니다.
6. 임신중지에 관한 안전한 정보가 제공됐다면
A 씨가 살인죄로 기소돼 재판 받는 과정에서 임신에 공동 책임이 있는 A 씨의 파트너나 혹은 보건 당국의 책임은 희미해집니다. 임신중지를 선택할 환경에 놓여, 결국 그 선택을 감행한 산모만 비난 대상이 됩니다. '36주도 생명이다 어떻게 한 생명을 살인할 수 있냐'고 말이죠. A 씨가 임신 사실을 인지한 직후, 임신중지에 관해 도움을 요청하거나 상담할 수 있는 제도적 창구가 있었다면, A 씨에게 임신중지에 관해 보다 정확하고 안전한 정보가 제공됐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사회 제도의 부재로 인해개인에게 비극이 발생했다면,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7년간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서 생긴 제도의 공백을 그저 개인의 '윤리적 결함'으로 메우려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여성의 임신중지는 여전히 비난 대상인 데다, '살인죄'로 처벌될 가능성까지 여전합니다. 정보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출산을 하도록 내몰려선 안 됩니다. 지난달 28일 검찰은 A 씨에 대한 무죄 선고에 대해 상고장을 제출했습니다. 이제는 대법원의 판단이 남았습니다.
(취재 : 조윤하, 구성 : 신희숙, 촬영 : 배문산 영상편집 : 나홍희, 디자인 : 양혜민, 제작 : 디지털뉴스부)
[AFTER 8NEWS] '살인'이라더니 '무죄'? 완전히 뒤집혔다…'36주 낙태 사건' 뒤에 숨은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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