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셰이크 타눈 UAE 국가안보보좌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아랍에미리트(UAE)의 인공지능(AI) 기업 G42의 중국 유착 의혹을 비밀리에 조사하고 의혹 해소를 위한 조언까지 제공하면서 UAE의 미국산 첨단 AI 반도체 확보를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CIA는 2023년 베테랑 요원 조니 개넌을 UAE 수도 아부다비에 파견해 UAE 국가안보보좌관이자 대통령의 동생인 셰이크 타눈 빈 자예드 알나하얀이 실소유주인 AI기업 G42와 중국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에서는 G42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AI 반도체 수출을 승인할 경우 미국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 하와이에서 대학을 다닌 G42의 최고경영자(CEO) 펑 샤오의 이력도 이런 의구심을 부추겼습니다.
샤오는 2015년 아부다비 소재 사이버보안회사 '다크매터'의 AI 사업을 이끌었는데, 다크매터는 전직 미국 국가안보국(NSA) 해커들을 동원해 UAE의 정적과 활동가, 언론인 등을 감시한 것으로 미 검찰은 파악했습니다.
샤오의 부서는 직원 상당수가 중국 출신이었으며 중국 내에 연계 사무소도 열었고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도시 감시용 AI 기술을 개발하는 협약도 체결했습니다.
다크매터는 2019년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 이후 사실상 해체됐고, 이후 샤오와 그의 부서가 분리돼 현재의 G42로 이어졌습니다.
주UAE 미국대사관 직원이라는 위장 신분으로 활동한 개넌은 G42를 감시하는 동시에 미국 정부가 문제 삼는 사항을 G42와 UAE 관계자들에게 전달하며 중국과의 관계를 정리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 결과 G42는 1억 5천만 달러 상당의 화웨이 장비를 철거하는 등 중국과의 기술 협력을 축소했다고 밝혔고, G42의 규정 준수 여부를 검증할 외부 감사인을 선임하라는 미국 측 요구도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 일각에서는 G42가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한 척만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이어졌습니다.
일부 당국자들은 G42와 중국 국영기업 간 접촉이 계속되고 있다는 정황을 확인해 보라고 개넌에게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개넌은 이같은 접촉이 샤오의 지시가 아닌 하급 직원들의 독자적인 활동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샤오가 미국과의 약속을 어긴 증거로 볼 수는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미 행정부 내에서는 G42와의 협력을 통해 UAE를 미국 진영으로 끌어들이고 자국 기업의 AI 사업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과, 중국과 가까운 UAE에 첨단 AI 기술을 넘길 경우 미국의 전략적 우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맞섰습니다.
이런 행정부내 시각차는 2024년 6월 버지니아주 맥클린에 있는 타눈의 저택에서 타눈과 샤오, 개넌, 미 행정부 당국자들이 회동한 자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샤오는 중국 기업 딥시크가 개발 중인 AI 기술을 거론하며, G42의 협력이 없다면 중국 AI가 미국의 AI 우위를 곧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로부터 7개월 뒤인 지난해 1월 실제로 딥시크의 AI 모델이 공개됐고, 미국 정부는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이 퇴임하기 일주일 전 UAE가 조건부로 엔비디아의 AI칩을 공급받을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UAE가 중국 기술을 배제함으로써 미국의 편에 서도록 돕는 계기가 됐다고 WSJ는 전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UAE의 미국산 AI 반도체 접근이 한층 더 확대됐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 UAE' 프로젝트와 관련, G42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오픈AI와 엔비디아 등 미국 기술기업이 참여하는 협약이 체결됐습니다.
이어 미 상무부는 지난 10일 UAE에 대한 AI 반도체 수출 통제를 대폭 완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G42는 앞으로 최소 9개월간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에서 반도체를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됩니다.
타눈 보좌관 측이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 트럼프 일가가 설립한 가상자산 기업 월드리버티파이낸셜에 5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하면서 일각에서는 이해 충돌 의혹이 제기됐지만, 백악관은 이를 부인한 상탭니다.
미국과 중국의 AI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G42를 겨냥한 CIA의 활동과 이후 미국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은 첩보 활동과 외교, 산업 정책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기술 패권 경쟁이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WSJ는 "기술 패권 경쟁의 미래를 놓고 첩보 활동, 외교, 상업적 로비가 뒤섞인 새로운 외교적 회색지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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