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커녕 완전히 격리돼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알려주지 않았고, 반대로 우리가 죽어도 가족한테 통보를 안 했다."
1984년부터 3년간 '북파공작원'으로 훈련받았던 67살 하태준 특수임무수행자 유족동지회 회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헌법 밖'에 머물던 공작원들 삶을 회고하며 한 말입니다.
최근 북파공작원 출신 주인공을 다룬 배우 소지섭 주연 드라마 '김부장'이 인기를 끌면서 과거 울분에 찬 공작원들의 삶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던 북파공작원들은 남북 대치가 이어지던 1948년부터 군과 정보기관의 지휘 아래 적군 생포와 사살, 첩보 수집 등 비밀 임무를 가지고 북한으로 보내졌습니다.
6·25 전쟁 시기부터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1972년까지 무려 1만 3천여 명이 북한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가운데 실종 처리된 인원만 7천726명에 달합니다.
하 회장은 "국가기관에서 평생 일하고, 먹고살게 해주겠다며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정부가 주로 포섭했다"고 말했습니다.
정작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며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지원자들은 가족에게 통보조차 되지 않은 채, 체력 테스트를 이유로 외부와 격리된 훈련소로 끌려가 '살인 무기'가 되기 위한 극단적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 훈련은 기본이었는데, 결국 훈련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평생 장애를 안게 된 부대원들도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음지에 묻혀있던 이들의 존재는 2002년 법원이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마련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생존자와 유족은 충분한 명예 회복이나 보상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현재 특수임무유공자들은 참전유공자나 다른 국가유공자가 받는 정기적인 수당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습니다.
하 회장은 "국가가 북파공작원들의 공과 희생, 피해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고 그에 걸맞은 예우와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취재 : 정다은, 영상편집 : 나홍희, 디자인 : 이정주, 제작 : 디지털뉴스부)
"'살인 무기' 만들려 고문…먹고살게 해준다더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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