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한강이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에서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15일(현지시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심화하는 혐오를 "극복해야 할 숙제"라고 규정하면서도 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희망적인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열린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한강은 "혐오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라며 "어떻게 하면 이 혐오의 시대에서 방향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혐오를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좋은 일"이라며 "혐오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문제라는 데 우리가 일치된 생각을 갖고 있다면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한강은 이런 혐오의 문제가 최근 불거진 배재고 야구부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고 봤습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광주제일고와 경기에서 상대 팀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등의 구호를 외쳐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한강은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 친구들도 이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뭘 할 수 있을까', '기성세대로서 어떻게 하다가 우리는 이렇게 실패를 하게 됐나' 이런 고민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이런 중요한 사건이 나타났을 때 충격과 놀라움 속에서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며 "만약 이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 것이라면,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를 잘 포착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충격이 또 다른 충격을 덮고, 그다음 충격이 이전 충격을 덮어서 이렇게 쓸려가 버리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개별 사건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회적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한강이 한국 언론과 공개적으로 질의응답을 한 것은 2024년 노벨문학상 시상식 이후 처음입니다.
그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며 "그래서 좀 칩거했는데, 지금은 관심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털어놨습니다.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어를 공식 초청언어로 선정하고 한강을 초청해 지난 12일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제주 4·3을 다룬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이탈리아 연극과 프랑스 연출가의 낭독 공연 '새'를 공식 프로그램에 포함했습니다.
15일 밤 아비뇽 페스티벌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교황청 명예극장에서 선보인 낭독 공연에선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각각 소설 속 경하와 인선을 맡아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두 인물의 독백과 대화를 풀어냈습니다.
공연 마지막엔 한강이 깜짝 출연자로 무대에 올라 제주 4·3사건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참상을 서술한 소설 후반부를 차분히 낭독했습니다.
한강은 공연 전 가진 간담회에서 낭독 공연에 대해 "책을 읽는 것이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공연은 함께하는 경험"이라며 "문장이 만들어내는 감각과 감정에 더해 배우들의 목소리와 움직임, 표정까지 함께 음미할 수 있는 무대"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내가 생각한 문장과 배우가 자기 몸을 통해 해석해 내보내는 음악적 요소는 서로 다르다"며 "'작별하지 않는다'를 책으로만 읽은 분들이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공연을 본 프랑스 관객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한국의 비극적 역사에 놀라움을 표하며 배우들의 연기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50대 여성 카트린느씨는 "너무 아름다운 글이면서 동시에 무척 가슴 아픈 역사 이야기"라며 "한국에 이런 역사가 있는지 몰랐다. 이 연극을 보고 나니 직접 책을 읽고 싶어졌다"고 말했습니다.
플로랑씨는 "완전히 매료됐다. 두 여성의 우정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고, 극의 배경이 된 제주도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공연은 오는 10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국내 관객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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