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공장 입지야 해당 기업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자신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곳을 알아서 선택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기업에게만 맡겨 놓기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단순히 해당 기업의 득실을 넘어 나라 전체의 중요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이 사안을 쉽게 풀기 위해 우선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의 핵심 고려 요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의 핵심 고려 요인
이런 요인들을 고려할 때 수도권은 사실상 포화상태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입니다. 수도권은 사실상 자체 발전 용량이 0에 가깝습니다. 지역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장거리 송전망을 이용해 끌어와야 합니다. 하지만 장거리 송전으로 인한 전력 손실은 차치하고라도 어느 지역이든 자기 땅에 송전탑을 세우는데 극력 반발하는 만큼 송전망 구축은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용수 확보도 쉽지 않습니다. 수도권의 인구밀도가 워낙 높다 보니 생활 용수 확보조차 허덕이는 상황에서 대규모 공업 용수 확보는 난제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1, 2순위 요인부터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부지를 찾아야 하는 또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입니다. 대만의 TSMC는 지진이나 안보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신주, 타이중, 가오슝 등 전국으로 팹을 분산 배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 지역에 국가 핵심 자산이 집중되는 리스크를 피해야 합니다. 이른바 '분산형 듀얼 허브' 전략입니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분명한 명분도 있습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고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반도체 같은 앵커 산업의 지방 이전이 필수적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해서 정부는 유력 후보자로 호남을 꼽고 있습니다.
핵심 요인으로 본 호남의 적합도 분석
반면 인재 유치와 용수 확보에서는 뚜렷한 약점이 있습니다. 정주 여건 등 문제로 수도권 인재들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현실적 벽이 존재합니다. '반도체 공장의 남방한계선이 평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최근 환경부와 학계의 분석 결과 호남 지역에 대규모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우 장기적인 공업용수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계 전환, 즉 다른 지역의 강물을 인공 수로를 통해 끌어오는 등 거대한 인프라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과제도 있습니다.
합리적 결정을 위한 우리 사회의 자세
실제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용인에 짓기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지 않고 지방으로 가는 차원은 절대 아니다", "수도권에 있는 시설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벨트를 (지방에) 새로 만드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태원 SK 그룹 회장에 이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습니다. 어제 오후 5시쯤 청와대에서 이 회장을 만나 약 1시간 동안 신규 반도체 투자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울러 오는 대통령 주재의 지방균형 국가 달성 논의를 위한 민관 합동회의를 가질 예정입니다.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라는 이름의 이 회의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비롯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호남, 충청, 영남권 투자 계획을 공개할 계획입니다. 호남에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영남에 피지컬 AI 생산 단지, 충청에 GW 단위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 1극 체제 극복을 위해 핵심 첨단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영남이나 충청, 강원, 제주, 호남 등으로 확대하는 획기적인 전략산업 다극화가 필수적"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가 미래를 걸고 펼치는 사업인 만큼 더 충분히, 신중하게 의견을 모으고 논의해서 최대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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