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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 입지로 나라 두 쪽 날 판 [이브닝 브리핑]

반도체 공장 입지로 나라 두 쪽 날 판 [이브닝 브리핑]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선정을 둘러싸고 나라가 두 쪽 날 판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초대형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논의를 둘러싸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친 마찰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야권은 정치적 개입과 졸속 추진 가능성 우려를 쏟아내고 여당은 지역 갈등 조장이라며 반박합니다. 특히 국민의힘 소속 TK 의원들은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었습니다. "국가 전략산업을 선거 논리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도 페이스북 글에서 "반도체 공장 입지 결정을 '명청 대전' 전대용 총알로 쓰면 안 된다"고 직격했습니다. 이에 대해 광주에 지역구를 둔 안도걸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국민의힘은 기업 미래를 위한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투자 결정마저 정쟁 소재로 삼는다"고 공박했습니다. 해묵은 지역 갈등의 망령이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를 불쏘시개로 다시 활활 타오르는 모양새입니다.

상식적으로 공장 입지야 해당 기업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자신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곳을 알아서 선택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기업에게만 맡겨 놓기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단순히 해당 기업의 득실을 넘어 나라 전체의 중요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이 사안을 쉽게 풀기 위해 우선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의 핵심 고려 요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들어설 용인 반도체국가산단 조감도 
(사진=용인시 제공, 연합뉴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의 핵심 고려 요인

반도체 제조 공장을 짓고 가동하는 데는 기술적·물리적으로 필수적인 인프라가 있어야 합니다. 1순위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입니다. 거대한 첨단 클러스터를 가동하려면 GW급의 막대한 전력이 24시간 단 1초의 끊김 없이 공급돼야 합니다. 다음은 풍부한 공업 용수입니다. 웨이퍼를 세척하는 등 제조 공정 전반에 하루 수십만 톤의 깨끗한 물이 필요합니다. 용수 확보 실패는 곧 가동 중단을 의미합니다. 석·박사급 전문 인재도 필수적입니다. 글로벌 기술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우수한 연구·엔지니어 인력이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인재의 수도권 선호 현상은 기존 반도체 공장이 수도권에 몰리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지반 안정성과 물류 편의성도 긴요합니다. 미세 공정을 다루기 때문에 지진이나 주변 진동이 없어야 합니다. 또 세계로 수출하려면 공항이나 항만 등 물류망과의 접근성이 좋아야 합니다.

이런 요인들을 고려할 때 수도권은 사실상 포화상태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입니다. 수도권은 사실상 자체 발전 용량이 0에 가깝습니다. 지역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장거리 송전망을 이용해 끌어와야 합니다. 하지만 장거리 송전으로 인한 전력 손실은 차치하고라도 어느 지역이든 자기 땅에 송전탑을 세우는데 극력 반발하는 만큼 송전망 구축은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용수 확보도 쉽지 않습니다. 수도권의 인구밀도가 워낙 높다 보니 생활 용수 확보조차 허덕이는 상황에서 대규모 공업 용수 확보는 난제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1, 2순위 요인부터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부지를 찾아야 하는 또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입니다. 대만의 TSMC는 지진이나 안보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신주, 타이중, 가오슝 등 전국으로 팹을 분산 배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 지역에 국가 핵심 자산이 집중되는 리스크를 피해야 합니다. 이른바 '분산형 듀얼 허브' 전략입니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분명한 명분도 있습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고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반도체 같은 앵커 산업의 지방 이전이 필수적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해서 정부는 유력 후보자로 호남을 꼽고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

핵심 요인으로 본 호남의 적합도 분석

호남, 특히 최근 논의되는 광주·전남 지역은 뚜렷한 장점과 치명적인 약점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RE100 대응력입니다. 현재 수도권 용인 클러스터는 전력 공급, 특히 'RE100(재생에너지 100% 이용)' 달성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입니다. 호남은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자립률이 국내에서 가장 높습니다. 앞으로 추가적인 신재생에너지 생산 잠재력도 큽니다. 갈수록 거세지는 글로벌 바이어들의 친환경 제조 요구를 충족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습니다. 송전탑 건설 갈등에서도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무엇보다 중후장대 산업 시설이 많은 영남에 비해 대형 산업이 부재하다시피 한 호남을 균형 발전 차원에서 배려해야 한다는 정치적, 정무적 이유도 분명히 있습니다. 자체 생산 시설은 물론 배후 인프라까지 수백조가 투입될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다면 뿌리 깊은 '호남 소외론'은 일거에 해소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인재 유치와 용수 확보에서는 뚜렷한 약점이 있습니다. 정주 여건 등 문제로 수도권 인재들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현실적 벽이 존재합니다. '반도체 공장의 남방한계선이 평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최근 환경부와 학계의 분석 결과 호남 지역에 대규모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우 장기적인 공업용수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계 전환, 즉 다른 지역의 강물을 인공 수로를 통해 끌어오는 등 거대한 인프라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과제도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맞이하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합리적 결정을 위한 우리 사회의 자세

이 갈등이 파열음으로 끝나지 않고 생산적인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감정적 지역주의'와 '단선적 경제주의'를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영남 물 먹이고 호남만 챙긴다"는 식의 대립 구도는 망국적 지역감정만 자극할 뿐입니다. 수도권은 R&D와 시제품 생산 거점으로, 호남·지방은 친환경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그린 제조 거점'으로, 영남은 반도체와 AI 연관 산업 기지로 역할을 나누는 상생형 분업 구조로 접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입지 선정 과정에 정치적 압력이 개입되는 순간 국가 경쟁력은 무너집니다. 정부는 기업에 이전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세제 혜택을 주거나 교육, 의료, 주거 등 정주 여건과 용수 인프라를 정부 주도로 완벽히 해결해 주는 등의 '유인책' 중심의 합리적 접근을 취해야 합니다.

실제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용인에 짓기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지 않고 지방으로 가는 차원은 절대 아니다", "수도권에 있는 시설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벨트를 (지방에) 새로 만드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태원 SK 그룹 회장에 이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습니다. 어제 오후 5시쯤 청와대에서 이 회장을 만나 약 1시간 동안 신규 반도체 투자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울러 오는 대통령 주재의 지방균형 국가 달성 논의를 위한 민관 합동회의를 가질 예정입니다.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라는 이름의 이 회의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비롯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호남, 충청, 영남권 투자 계획을 공개할 계획입니다. 호남에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영남에 피지컬 AI 생산 단지, 충청에 GW 단위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 1극 체제 극복을 위해 핵심 첨단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영남이나 충청, 강원, 제주, 호남 등으로 확대하는 획기적인 전략산업 다극화가 필수적"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가 미래를 걸고 펼치는 사업인 만큼 더 충분히, 신중하게 의견을 모으고 논의해서 최대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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