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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인데 졌다"…재판장도 고개 숙인 '권경애 노쇼'의 결말 [스프]

⚡ 스프 핵심요약

'학폭 노쇼' 민사소송 패소 확정: 권경애 변호사의 재판 불출석으로 패소한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대리인 과실의 본인 귀속' 원칙을 이유로 항소 기각을 유지했습니다.

헌재, 과거사 재심 청구권 확대 결정: 같은 날 헌법재판소는 직계가족이 없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조카·제수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절차주의와 실질적 정의의 충돌: 두 사건은 한국 사법 제도가 지닌 '대리인 방기 시 당사자 보호 미흡'과 '시간 경과에 따른 과거사 구제 단절'이라는 구조적 빈틈을 명확히 드러냈습니다.
지난 2023년 6월 19일 권경애 변호사의 재판 불출석으로 소송에서 진 학교폭력 피해자 유족 이기철 씨가 취재진과 인터뷰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변호사가 고의로 소송을 말아먹었는데, 그럼 전 어떻게 해야 되냐?"

2026년 6월 24일, 서울고등법원 법정. 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 이기철 씨가 재판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기 전 이례적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결론은 냉정했습니다. "항소 취하 간주 효력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 권경애. 그는 2022년 항소심 재판에 세 차례 연속 불출석했고, 5개월간 유족에게 패소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상고 기간이 지나버린 뒤에야 유족은 모든 것을 알게 됐죠. 3년 만에 다시 열린 법정. 하지만 법원은 "이미 끝난 소송"이라며 문을 닫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헌법재판소는 전혀 다른 사건에서 중요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국가폭력으로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의 조카와 제수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이죠. 70여 년 전 여수·순천 사건, 50여 년 전 민주화 탄압. 직계가족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진실을 밝힐 권리는 남아 있다는 겁니다.

왜 한쪽에선 "법은 바꿀 수 없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할까요? 이 모순 속에 한국 사법의 세 가지 구조적 구멍이 있었습니다.

1. "변호사 실수는 본인 책임" — 미국 대법원도 인정한 냉혹한 원칙

왜 법원은 그토록 냉정했을까요?

사실 이 원칙은 한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미국 유력 법률 매체와 판례 연보에 따르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2년 'Link v. Wabash Railroad' 판결에서 이미 못을 박았습니다. "당사자는 자신이 선택한 변호사의 작위와 부작위의 결과를 피할 수 없다." 변호사는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라 당사자를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서울고법도 같은 논리였습니다. "권 변호사의 행위는 위법성이 매우 중대합니다. 그러나 항소 취하 간주는 민사소송법 268조의 요건이 충족되면 법률상 당연히 발생하는 효과입니다." 즉, 변호사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과 소송이 끝났다는 것은 별개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정말 '모든' 경우에 그럴까요?

2. "단순 실수 vs. 완전한 방기" — 미국 대법원이 인정한 예외

해외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2012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Maples v. Thomas' 사건에서 중요한 구분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사형수의 변호사 두 명은 사무실을 떠났고 로펌 우편실이 법원 통지서 자체를 반송해버렸습니다. 대법원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건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방기'입니다. 변호사가 사실상 대리관계를 끊어버렸다면, 그 결과를 당사자에게 기계적으로 떠넘길 수 없습니다."

권경애 변호사 사건은 어떨까요? 세 차례 연속 불출석. 5개월간 은폐. 상고 기회 박탈. 유족 측은 "이건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 방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인 신청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항소 취하 간주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진짜 싸움터는 어디일까요? 법정이 아니라 국회입니다.

3. "당사자 본인에게 통지했어야" — 제도 설계의 빈틈

유족 측이 가장 강하게 문제 삼은 지점이 있습니다.

"변호사가 불출석했다면, 다음 재판 날짜를 당사자 본인에게도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 55조는 이미 법정에 한 번 출현한 당사자에 대해선 디폴트 판결 이전에 서면 통지를 요구합니다. 물론 항소 취하 간주와 완전히 같은 제도는 아니지만, 핵심은 같습니다. 절차가 한 번 시작된 뒤 당사자 본인에게 경고 장치를 둘 것인가?

재판부도 이 논점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제도 개선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항소 취하 간주 효력을 배제할 근거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즉, 법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죠.

영국 법률 서비스 감독 기구인 영국 법률 옴부즈맨 2023/24 보고서를 보면, 조사한 사건 중 46%에서 1차 불만처리가 부적절했다고 나옵니다. 변호사 서비스 실패는 어느 나라든 개별 일탈이면서 동시에 제도적 감시 대상입니다. 한국은 지금 그 감시 장치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4. 학교폭력, 숫자는 낮지만 '고강도 사례'는 여전하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학교폭력이 있습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인 OECD PISA 2022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월 수회 괴롭힘 피해 비율이 8~10%로 OECD 평균(20~21%)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학교 안팎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학생 비율도 낮죠.

그러나 수치가 낮다는 것이 문제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인 UNESCO는 학교폭력이 학업성취, 중도이탈, 신체·정신건강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합니다. 즉, 통계상 평균이 낮더라도 중증·집중 피해 사례가 남기는 파괴력은 여전히 큽니다. 이번 소송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강도 피해 사건에서 사법적 대응이 실패하면, 피해자 신뢰 전체가 무너집니다.

5. 70여 년 전 억울함, 조카도 재심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날 헌법재판소는 중요한 결정을 냈습니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 피해자들은 징역형을 받고 수감됐다가 재판 절차와 무관하게 군 방첩부대와 헌병대, 경찰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또 다른 사건으로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지학순 주교 사례도 있습니다. 그의 조카가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70여 년, 50여 년이 지난 지금, 배우자와 직계가족도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건 조카, 제수뿐이죠. 그런데 형사소송법은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해놨습니다.

헌법재판소는 7대 2 의견으로 이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했습니다. "국가폭력 사건은 오랜 시간 진상규명이 불가능했고, 일반 형사사건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온 가족이 희생돼 재심청구권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회는 2027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2028년 1월 1일부터 이 규정은 효력을 잃습니다.

국제 인권기구의 판단도 이와 궤를 같이합니다. 미주인권위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대한 인권침해의 진실을 알 권리가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에게도 귀속된다고 봤습니다. 유엔도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한 효과적 구제와 배상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왔죠. 한국의 이번 결정은 바로 이 국제 기준과 충돌을 줄이는 방향입니다.

6. "시간이 국가 편으로 작동한다" — 과거사의 잔혹한 구조

왜 과거사 사건은 특별한 규칙이 필요할까요?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과거사 사건은 시간이 국가 편으로 작동합니다. 피해자가 이미 사망했고, 가장 가까운 친족도 세월 속에 사라지며, 가족 전체가 해체되거나 분산됩니다. 재심청구권을 핵가족 범주에 묶어두면, 국가는 형식상 "재심 제도는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가장 오래 은폐된 사건일수록 구제 가능성이 낮아지는 역설을 만들게 됩니다.

한국 진실화해위원회 자료를 보면, 위원회는 2025년 11월 26일 제2기 임기를 마쳤습니다. 2024년 5월 기준으로 위원회는 총 20,245건 중 6,293건에서 진실을 확정했습니다. 2022년 말 기준으로도 이미 1,179건이 진실규명 결론이었죠. 이런 규모를 보면 재심청구권 문제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제도 전체의 병목에 가깝습니다.

7. "검사가 대신 재심 청구하면 되지 않나?" — 그건 기대하기 어렵다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헌재 재판관 2명은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망인의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로 재심청구권자를 한정한 것은 구체적 정의와 법적 안정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검사가 직권으로 재심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 의견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검사의 직권 재심 청구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에 대해 검사의 직권 재심 청구가 처음 이뤄졌고, 그마저도 사회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좌우됐습니다."

실제로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가 2017년 '적극 시정 권고'를 낸 뒤에야 검사의 직권 재심 청구가 이뤄졌고 이를 통해 일부 과거사 사건에서 무죄가 나왔습니다. 즉, 검사의 재심 청구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불안정한 경로라는 겁니다.

8. "대법원 판결이 불충분하다" — 재판소원은 왜 각하됐나

유족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권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은 위자료 6,500만원을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유족 측은 "대법원이 나머지 상고이유 6가지는 한 문장으로 일괄 기각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냈습니다. "주장에 대해 이유 있는 판단을 받을 권리, 재판청구권을 명백히 침해했다"는 취지였죠.

그러나 헌재는 2026년 6월 23일 이를 각하했습니다. "판결이 개별적·구체적 판단 이유를 충분히 기재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2026년 4월 30일 기준 통계를 보면, 헌법소원 접수 56,031건 중 36,135건이 패널 단계에서 사전 심리착수 전에 정리(각하)됐습니다. 즉, 재판소원은 원래 매우 좁은 문으로 작동합니다. 억울함과 위헌성은 다른 개념입니다.

9. 세 사건이 보여주는 공통 구조 — 절차 vs. 실질

세 사건을 함께 놓고 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학교폭력 민사소송에서는 변호사 방기와 당사자 귀속이 충돌했습니다. 국가폭력 재심 사건에서는 시간 경과와 유족 범위 제한이 충돌했죠. 재판소원 각하 사건은 그 틈새를 헌법소송이 자동으로 메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Link 판결에서 말한 것처럼, 민사절차는 여전히 강하게 대리인 귀속 모델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Maples 판결이 보여주듯, 그 모델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국제 인권법이 보여주듯, 국가폭력 사건은 일반 절차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시간 경과 자체가 국가에 유리한 장치가 됩니다.

이 세 구조가 겹치면, 피해자는 "어디서도 본안 판단을 못 받는다"는 감각을 갖게 됩니다. 법원은 "법대로 했다"고 말하지만, 피해자는 "법이 나를 버렸다"고 느낍니다.

10. 그래서 뭘 바꿔야 하나 — 세 가지 제도개선 방향

해법은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첫째, 학교폭력·중대 피해사건에는 '대리인 실패'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반복 불출석 시 당사자 본인 직접통지 의무, 일정 횟수 후 법원의 본인확인 절차, 방기 의심 시 취하간주 효력정지 또는 추후 회복 절차. 이미 여러 나라는 디폴트 이전 통지, good cause에 의한 취소, 예외적 복권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둘째, 변호사 책임과 원소송 구제를 분리해 설계해야 합니다. 영국 법률 옴부즈맨 2023/24 보고서는 불만 비율이 가장 낮은 소송(litigation) 분야마저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34%나 됐다고 밝혔습니다. 변호사 서비스 실패는 개별 이탈이면서 동시에 제도적 감시 대상입니다.

셋째, 과거사 사건은 '가족 범주'보다 '진실 접근권'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합니다. 국회가 개정할 때는 단순히 조카·제수 포함 여부를 넘어서, 대체 청구권자 순위, 유족단체·특별대리인 신청, 검사의 재심청구 의무화 또는 심사기준 법정화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6년 6월 24일, 서울고등법원 법정을 나서며 이기철 씨는 말했습니다. "이기기 위해 그 길을 가는 게 아니라, 한 점이라도 제대로 된 구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걸 뭐든지 다 할 것입니다."

같은 날, 헌법재판소는 70여 년 전 억울함에 문을 열기 위한 입법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국회가 열쇠를 만들어야만 실제로 열립니다. 학교폭력 사건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습니다. 변호사 징계와 손해배상만으로는 잃어버린 재판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이 스스로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제도개선의 출발선이 그어집니다. 이번 세 사건이 보여준 것은 바로 그 출발선입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Deep Dive Q&A
Q1. 미국 대법원의 'Maples v. Thomas' 판례가 한국 '학폭 노쇼' 사건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었나요?

A1. 미국 판례는 변호사의 단순 과실을 넘어 '대리관계의 완전한 단절(방기)'이 발생했을 때 예외를 인정합니다. 유족 측은 권경애 변호사의 3회 불출석과 5개월간의 은폐가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한국 법원은 현행 민사소송법 제268조(항소 취하 간주)의 절차적 요건이 충족되면 법률상 당연히 패소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미국서도 기본 원칙은 동일하지만 예외 인정 범위에선 차이가 있습니다. 대륙법계 기반인 한국은 성문법상의 절차주의를 더 엄격하게 적용한 것입니다.

Q2. 헌법재판소가 과거사 사건 재심 청구권에 대해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A2.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리면 해당 조항(형사소송법 제424조 등)이 즉시 효력을 잃어 법적 공백이 발생합니다. 이 경우 직계가족이나 형제자매조차 재심을 청구할 근거 법령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대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헌재는 법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유지하되, 국회에 2027년 말까지 조카와 제수 등 범위를 확대하도록 입법 시한을 부여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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