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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11번 급소 타격…"목줄 끊을 것" 죽음의 시나리오

1.
지난 5월 타이완 현지 언론에서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보도됐습니다. 타이완 정부가 스타링크 측과 벌이던 협상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내용인데요. 아시아에서 스타링크가 없는 5개 지역, 북한,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중국에 타이완이 포함돼 있습니다. 저궤도 위성 도입에 사활을 건 타이완이었지만 결국 협상은 깨졌습니다. 법적 규제 문제도 있었지만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라는 일론 머스크 발언이 결정적이었고, 중국 정부가 머스크에게 타이완에 스타링크를 제공하지 말라고 압박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고 했습니다. 타이완 정부는 대신 유럽계 저궤도 위성망 원웹을 서둘러 도입하고 아마존과도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2027년을 목표로 저궤도 통신위성을 직접 쏘아 올리는 목표까지 세우고 있습니다. 4G, 5G 쓰는 사람이 이미 인구 99%를 넘는, 면적도 좁고 인구 밀도도 높은 최첨단 인터넷 사회인 타이완이 왜 이렇게까지 저궤도 위성에 매달리는 걸까요?

2.
지난해 타이완 해역에서 벌어진 사건 하나를 보겠습니다. 2025년 1월 타이완 북부 해역에서 국제 해저통신 케이블이 손상됐습니다. 타이완 당국이 의심한 건 순싱 39호라는 화물선. 2024년 12월부터 타이완 주변 해역에 머물렀던 이 선박은, 케이블이 끊긴 당일 식별 장치를 껐고 이후 한국 방향으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통신은 백업망으로 우회돼 대규모 장애는 피했지만, 타이완은 이 사건을 예민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한 달 뒤인 2025년 2월에는 타이완 본섬과 펑후를 잇는 해저 케이블이 또 손상됐고, 타이완은 중국인 선장이 몰던 화물선 홍타이 58호를 나포했습니다. 검찰이 선장을 해저 케이블을 고의로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타이완 당국에 따르면 2025년에만 해저 케이블 손상 사건이 5건, 그 전 2년 동안에도 각각 3건씩 발생했습니다. 물론 모든 케이블 손상이 고의적 공격 때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중국과 가까운 해역에서, 중국과 연결된 선박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3.
타이완이 걱정하는 시나리오는 명확합니다. 중국이 침공에 앞서 먼저 인터넷과 통신망을 뒤흔드는 것입니다. 섬나라는 특히나 해저 케이블 훼손에 취약합니다. 실제로 중국 본토와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데다 크기가 작고 케이블 수도 적은 마쭈열도에서는 2023년 2월 해저 케이블 2개가 잇따라 손상되면서 주민들이 몇 주 동안 인터넷 장애를 겪었습니다. 온라인 뱅킹이 멈췄고, 카드 결제 단말기는 먹통이 됐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공공 와이파이를 찾아 통신사 건물 주변에 모여야 했고, 인터넷 속도는 평소의 5%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타이완 당국은 중국 어선과 중국 화물선이 각각 케이블을 훼손한 것으로 파악했지만, 고의성 여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4.
문제는 단순히 인터넷이 느려지는 수준이 아닙니다. 은행 간 결제, 주식 거래, 국제 송금, 클라우드 서버, 군사 정보, AI 학습 데이터가 모두 이 선, 해저 케이블을 타고 오갑니다. 해저 케이블이 끊기면 군 지휘체계와 정부 행정망, 금융망, 응급 통신망까지 모두 붕괴될 수 있습니다. AI 시대가 될수록 데이터 이동량은 폭증하고, 해저 케이블의 중요성은 더 커집니다. 그런데 이 해저 케이블, 공격하기는 쉽고, 지키기는 참 어렵습니다. 해저 케이블은 길고, 얇고, 또 대부분 민간 소유입니다. 바다 밑 수천 킬로미터에 깔려 있어서 전부 감시하기가 어렵죠. 선박이 닻을 끌고 지나갔다고 해도, 그것이 실수인지 명령받은 작전인지 밝히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에는 항상 군함이 아니라 상선, 어선, 유조선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 애매함 때문에 해저 케이블은 회색지대 전쟁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5.
이런 전술을 구사하는 건 중국뿐만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아니 러시아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건으로 유럽이 발칵 뒤집힌 적도 있습니다. 2024년 12월 25일, 발트해에서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잇는 전력 케이블 EstLink 2를 포함해 5개의 해저 케이블이 한꺼번에 끊어졌습니다. 러시아 '그림자 선단'과 연관된 유조선 Eagle S가 90km 가까이 닻을 끌고 간 것으로 조사됐고, 핀란드 검찰은 선장 등 3명을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사고 지점이 영해 밖이라 관할권이 없다며 사건을 각하했습니다. 찝찝하게 끝이 났지만 관련국들은 모두 러시아 소행으로 의심했습니다. 이후 유럽은 발트해를 사실상 해저 인프라 전장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나토는 발트해 감시 임무를 만들었고 EU는 해저 케이블 긴급 수리 선박 확보와 감시 체계 강화를 논의하고 있고요. 미국 의회도 해저 케이블 훼손 문제와 관련해 중국 장비와 러시아식 사보타주 가능성을 동시에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짐 리시/미 상원 외교위원장 (지난 4월 청문회) :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 세계 통신 트래픽의 95% 이상이 오갑니다. 러시아는 첨단 해저전 능력뿐 아니라 닻을 끌고 간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저기술 수단도 개발했습니다. 해저 사보타주를 끝내려면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청문회 직후 미국은 실제로 중국 장비가 들어간 해저 케이블 규제를 강화했고, 미국과 동맹국의 해저 케이블을 보호하고, 중국산 장비 의존도를 낮춘 신규 케이블 구축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해저 케이블이 더 이상 통신망이 아니라 군사기지, 항만 같은 국가안보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는 겁니다.

6.
이 이야기는 유럽과 타이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도 국제 금융 거래와 클라우드 서비스, AI 데이터 이동 대부분을 해저 케이블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수출 국가인 한국은 반도체 설계와 생산, 연구개발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일본의 기업들과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습니다. 대한민국 전체 산업의 해저 케이블 의존도가 크다는 뜻입니다. AI 시대가 되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데이터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라면, 해저 케이블은 그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송유관입니다. 전쟁은 더 이상 전선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에 인터넷이 끊길 수 있고, 총성이 울리기 전에 금융망과 통신망, 군 지휘체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전쟁의 첫 장면은 거대한 폭발이 아니라 접속 장애, 그리고 일상의 붕괴일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바다 밑 케이블에 주목하는 이유이자, 발트해와 타이완 해협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가 의미심장하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취재·구성 : 김민정, 영상취재 : 박우진·황세회, 영상편집 : 김혜주, 디자인 : 이수민, 도움 : 류지수·서병욱, 제작 :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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