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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전 253승' 신화…에티오피아 강뉴부대를 아시나요

부산항 도착한 '강뉴부대' 장병들 (사진=국가보훈부 제공, 연합뉴스)
▲ 부산항 도착한 '강뉴부대' 장병들

한반도 전역에 전쟁의 신음과 포성이 이어지던 1951년 5월 6일, 구릿빛 피부에 낯선 외모의 청년들이 군복 차림으로 부산항에 발을 디뎠습니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에티오피아란 나라에서 온 '강뉴부대' 장병들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지원해달라는 국제사회의 호소를 듣고 1만여㎞ 떨어진 고국에서 수송선을 타고 장장 21일에 걸쳐 한국에 왔습니다.

부산항에 도착한 이들은 곧장 트럭에 올라 부산 동래의 유엔군수용소로 향했습니다.

6주간 이곳에서 한반도 기후와 지형에 적응하고 현대식 무기 작동법을 익혔습니다.

에티오피아 전사들은 이후 미 7사단 32연대에 배속돼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1951년 8월 12일 중동부전선인 강원도 화천군 적근산 일대에서 첫 교전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약 2년간 한반도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습니다.

황실근위대 출신 최정예 병력 1천200여 명으로 구성된 강뉴부대는 유엔군 중에서도 유독 용맹하고도 강했습니다.

화천지구 전투, 양구 전투, 삼각고지 전투, 요크·엉클고지 전투 등에서 맹활약한 강뉴부대는 6·25전쟁 참전기간 '253전 253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쓰면서 한국을 지켜냈고 오늘날까지도 피를 나눈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24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기간 강뉴부대로 연인원 총 3천518명을 한국에 파병했습니다.

강뉴부대는 보병대대 규모로, 당시 병력은 1천200여 명 수준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뒤 유엔 요청으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한 국가입니다.

1950년 8월 파병을 결정했고, 부대 편성과 자체 훈련을 거쳐 이듬해 4월 파병부대 출정식을 했습니다.

당시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파병부대에 '강뉴(칵뉴·Kagnew)부대'란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강뉴'는 에티오피아어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또는 '초전박살'(初戰撲殺)'이란 뜻입니다.

황제는 출정식에서 장병들에게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란 특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에티오피아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낯선 땅에 목숨을 걸고 파병을 결정한 것은 자신도 침략전쟁으로 나라를 빼앗겼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1935년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고 국제연맹에 지원을 호소했으나, 국제사회의 냉담한 반응 속에 1936년부터 5년여간 식민지배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국토 침탈의 역사를 겪었기에 에티오피아는 지구 반대편 한반도 상황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습니다.

아프리카 고원지대 출신인 강뉴부대 장병들은 한반도의 험준한 산맥에서도 전투력을 뽐냈습니다.

전선 투입 일주일 만에 4명의 무공수훈자가 나왔고, 숱한 고지전에서 단 한 번도 적에게 고지를 내주지 않았으며, 특유의 용맹함으로 백병전에 특히 강했습니다.

1951년 9월 강원도 화천 적근산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철의 삼각지' 공방전에서도 활약했습니다.

강뉴부대는 1953년 7월 종전 때까지 연인원 3천518명이 참전했는데, 이 가운데 122명이 전사·사망하고 536명이 다쳤습니다.

특히 난생처음 겪는 한반도 겨울의 매서운 추위에 동상을 입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 참전용사들은 증언입니다.

강뉴부대에는 유엔국 참전국 중 단 한명의 포로도 나오지 않은 유일한 부대라는 대기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엄명에 따라 용감하게 싸웠고, 특유의 강력한 결속력으로 부상자나 전사자, 실종자는 반드시 찾아내 자대로 복귀시켰기 때문입니다.

전우의 시신도 모두 수습해 돌아가 부산 유엔군 묘역에는 에티오피아군 병사의 무덤이 하나도 없습니다.

강뉴부대는 정전협정으로 포성이 멈춘 이후에도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이들은 1956년까지 한국에 주둔하며 비무장지대 순찰 등 전후 복구를 도왔습니다.

특히 부대원들이 월급을 모아 1953년 경기도 동두천에 '보화원'이란 이름의 고아원(보육원)을 세운 뒤 전쟁고아들을 보살핀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보화'(Bowha)는 에티오피아 말로 '하느님의 은혜'란 뜻입니다.

강뉴부대 파병이라는 역사적 유대는 한국과 에티오피아 간 관계의 이정표가 됐습니다.

두 국가는 정전협정 체결 10년 뒤인 1963년 공식 수교했고,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룬 이후에는 에티오피아를 공적개발원조(ODA) 중점협력국으로 지정하고 원조를 이어갔습니다.

강뉴부대 첫 파병 이후 75년이란 세월이 흐른 현재, 당시 강뉴부대 일원으로 한반도에 왔던 참전용사 다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에티오피아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현재 생존 참전용사는 현재 46명뿐이며 이들 대부분이 고령입니다.

하지만 75년 전 이 땅에 왔던 강뉴부대의 정신은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전수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2일에는 강뉴부대 참전용사 테스파예 씨와 참전용사 후손 34명이 국내 비영리단체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내달 말까지 한 달가량 한국에 머물면서 보훈·문화 교류 행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특히 참전용사 후손들로 구성된 '강뉴합창단'은 오늘 국회에서 열리는 '국제보훈·평화프로젝트 음악회' 공연을 시작으로 '유엔군 참전의 날'(7월 27일) 기념 공연까지 한국에서 다양한 일정을 소화합니다.

행사를 주최·주관하는 사단법인 따뜻한 하루는 2016년부터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참전용사 지원사업을 지속해 왔으며, 2018년 강뉴합창단을 창단해 음악 교육과 국제 문화 교류 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사진=국가보훈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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