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비에르 아기레 멕시코 감독이 2026년 6월 18일 멕시코 자포판의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멕시코와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A조 경기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승부는 그라운드 안에서 확정되지만, 경기는 경기장 밖에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자회견장 역시 대표적인 '전장(戰場)'입니다. 그런 면에서 멕시코전, 가장 돋보인 인물, MVP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하비에르 아기레' 멕시코 대표팀 감독입니다. 1958년생. 67살의 노장이고, 멕시코 대표팀 지휘봉을 3차례나 잡은 명장입니다.
경기 하루 전, 공식 기자회견의 경우, 각 팀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습니다. 감독 혼자 참석하거나, 혹은 선수 한 명이 동행하는 것. 아기레 감독은 그 시간, 홀로 '쇼타임'을 연출했습니다. 끊임없는 유머와 여유, 그리고 거침없는 언변으로 현장을 압도했습니다.
"내 나이가 예순일곱이고, 이 빌어먹을 축구판, 아, 아니고 축복받은 축구판에 몸 담은 지 50년이 되어가는데 경기 전엔 여전히 특별한 감정을 느낍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긴장감 같은 겁니다.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온다면 이 일을 그만둬야겠죠."
그가 농담할 때마다 현지 기자들은 크게 웃었고, 불행하게도 저는 FIFA의 동시통역 시스템이 순차 통역에 가깝고, 게다가 자주 끊기는 바람에 공감할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지만 분위기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의 언론관입니다. 아기레 감독은 기자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질문에 답했고, 기자들의 별명까지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고집쟁이 양반', 잘 지냈어요? 존중을 담아서 질문해 봐요." "정말 축구 도사시네." 라며 일반적인 일문일답이 아닌 대화와 소통을 주도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엔 더 돋보였습니다. 심판과 기자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50년 축구인생 동안 제가 '검은 옷을 입은 신사(señor de negro)', 즉 심판들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들으신 적이 없을 겁니다. 절대로요. 왜냐하면 그것이 제가 평생 지켜온 축구인으로서의 규칙이자 불문율(códigos)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언론을 존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저는 기자회견장에서 늘 이런 (솔직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공석에서 여러분과 얼굴을 붉히며 설전을 벌이거나 논쟁하는 일은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미디어가 급변하는 환경에서도 '노장'은 분명한 소신을 밝혔습니다.
"우리 선수들 보니 온종일 스마트폰을 보고, 스마트폰으로 SNS를 붙잡고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찾아보더군요. 이 녀석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언론이나 여론이라는 게 본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될 겁니다. 애초에 신경을 꺼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을 적으로 돌려선 안 됩니다. 저널리스트와 언론인 여러분의 직업적 역할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경기장 위에서 심판들의 판정을 존중하는 것. 이것들은 제가 기억하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늘 가슴에 새겨온 제 인생의 절대적인 철칙(máxima)입니다."
한국 기자단 가운데 유일하게 질문 기회를 받아 '경기 중 제자 이강인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한국과 남아공을 잇따라 상대해 본 입장에서 두 팀을 비교해 줄 수 있는지'는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저희를 포함한 여러 매체에 소개 됐는데, 돌아보니 참 소중한 시간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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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 현장에서 저는 전통 매체,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의 입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국내 주관 방송사는 큰 재정적 위험에 처했고,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 특히 소셜미디어는 각자의 플랫폼에 어울리는 콘텐츠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대회기간 우리 선수들은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수많은 기사가 노출되는 포털사이트 접근은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엔 2차, 3차 가공된 수많은 뉴스가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와 오디오 등 말 그대로 '멀티미디어' 형식으로 올라오고, 이용자의 관심 분야를 예측해 콘텐츠를 추천 제공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뉴노멀'로 자리 잡은 시대,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욕심이겠죠.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변화에 적응해야 하기 위해 애써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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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라하라에서 이정찬 기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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