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핵무기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이행에 본격 돌입하면서 이제 핵협상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란 핵 문제는 북한 핵 문제와 함께 전 세계 비확산 체제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이슈로 거론되어 왔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미·이란 핵협상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란 핵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지금, 북한의 속내는 어떨까요? 이를 살펴보기 위해 우선은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북한의 반응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북한 매체가 미·이란 전황과 종전 결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미·이란 종전에 '침묵'…하메네이 폭사에 전황 보도 기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동부 시간 기준으로 14일 오후 트루스소셜에 이란과의 합의가 마무리됐다고 썼습니다. 이란 외무 차관과 파키스탄 총리도 종전 합의를 확인했고, 전쟁은 개전 106일만에 사실상 종료됐습니다.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전쟁이었지만, 북한은 19일 오전까지 종전이 이뤄진 사실에 대해 대내외 매체를 통틀어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전쟁 기간 내내 미·이란 전황을 전파하는 데 극도로 소극적이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의 중동 관련 기사들을 3월 1일부터 지난 16일까지 전수 점검해 본 결과, 미국과 이란 간의 직접적인 전황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의 무력 충돌 상황은 100건 이상, 하루 한 건 이상을 실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레바논을 폭격하는 이스라엘을 맹비난하면서도 이란을 타격하는 미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선택적 대응의 원인은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폭사했다는 사실 때문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의 권위가 절대적인 북한 체제 특성상 아무리 타국이라고 하더라도 최고 지도자가 미국의 정밀 타격으로 하루 아침에 숨졌다는 사실은 주민들에게 절대 알려서는 안 될 '가장 불편한 뉴스'였을 겁니다.
이란 핵협상과 북한의 수지타산..불편함 드러낸 연쇄 담화
이번 종전 MOU 내용을 두고 대규모 경제 재건 기금 마련 등 이란이 사실상 외교적 승리를 거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미국 안팎에 거셉니다.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등 핵심 쟁점은 사실상 내주고 종전과 보상을 약속했단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도 이란 종전을 보면서 수지타산을 맞춰보고 있을 겁니다. 미국을 상대로 선전한 이란의 모습을 보며 북한도 '트럼프와 다시 협상해 볼만하다'고 느꼈을까요?
이란이 얻게 된 것들이 적지 않아 보이고 실제로 북한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대목도 있습니다. 공개된 종전 양해각서를 보면 이란은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겠다고 재확인했지만, 농축우라늄 처리 문제와 핵 프로그램의 향방 등 핵심 쟁점은 최종 협상으로 넘겼습니다. 북한으로선 가장 핵심적이라고 볼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우선 종전에 합의한 셈입니다. 미국이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 이전에도 정치적 합의와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사례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주장해 온 '핵을 가진 상태에서의 협상'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세가 북한에 그리 달갑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미·이란 전쟁의 여파가 북핵 문제로 번지며 북한을 꽤나 '불편한' 처지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외교 테이블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던 '북한 비핵화' 의제는 미국이 이란 전쟁 수행의 '명분'을 뒤늦게 찾는 과정에서 다시 수면 위로 강제 소환되었습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이란 핵 문제를 강조하면서 북핵 문제 역시 함께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바깥에서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던 북한으로서는 복병을 만난 셈입니다.
북한은 최근 며칠간 비핵화가 언급된 한미일의 관련 협의와 G7 정상회의를 향해 반발하는 담화들을 잇따라 쏟아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14일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미일 간 확장억제대화(EDD)에서 '비핵화'가 등장한 것에 대해 비핵화는 최종적으로 종결된 사안이라며 발끈했습니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도 18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 의지를 담은 주요 7개국 정상 성명에 "시대착오적"이라며 "'비핵화'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불퇴의 선"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한미 NCG 공동언론성명에는 지난해 빠졌던 비핵화 표현이 재등장했고, G7 공동성명도 올해 북한 비핵화를 다시 명시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두 담화의 핵심은 "비핵화는 이미 끝난 얘기인데, 왜 다시 꺼내기 시작하느냐"로 바꿔 말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정작 미·이란 협상 전황에 대해서는 입을 닫으면서도, 국제사회의 비핵화 재부각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현재 북한이 느끼는 불편함을 드러내는 정황입니다.
이란 다음은 북한?…트럼프의 '밀당'에 시진핑 향해 '러브콜'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13일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사진을 트루스소셜에 깜짝 게재했습니다. 마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6월 12일 즈음이었습니다. 이란 숙제를 풀고 나면 다음은 북한 문제 해결하겠다는 의향을 보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과거의 극적인 만남을 환기시키며 북한의 반응을 떠보고, 여전히 북한 문제를 잊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은 반응이 없는 듯 보입니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없고, 과시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하면 물밑에서의 반응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럴 법한 상황입니다. 트럼프가 이란 핵문제를 어떻게 푸는지는 지금부터가 본격 라운드인 만큼 우선은 닥친 숙제부터 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우선일 겁니다. 또 현재 미국과의 대화를 서둘러 가동해야 할 만큼 북한이 코너에 몰려 있지 않습니다. 강력하게 복원된 북중·북러 관계라는 버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정세의 돌파구를 만들여야 할 만큼 북한을 움직이게 할 만한 요소가 그리 눈에 띄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생일을 맞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16일 밝혔습니다. 통상 5년, 10년 단위의 이른바 '정주년' 생일에만 축전을 보내던 관례를 깨고 올해 73세 생일에 맞춰 러브콜을 보낸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은 14일이었습니다. 북미 대화의 불씨가 살아있던 2019년에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생일 축하 친서를 보냈지만, 지금은 트럼프가 아닌 시진핑 주석의 손을 잡고 있는 형국입니다. 북한은 당분간 중국·러시아와의 전략적 공조를 방패 삼아 미국이 제기하는 비핵화 의제는 단호히 일축하는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북한 역시 트럼프 임기가 기회의 창이라는 점은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과 북핵 문제에 이 정도 수준의 파격적인 관심을 보이는 미국 대통령이 또 나오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화의 문 자체를 완전히 걸어 잠그지는 않은 채 트럼프가 이란 핵협상 이후 자신들에게 어떤 다른 카드를 던질지 지켜보며 저울질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진=트루스소셜·IRIB 텔레그램 채널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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