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50년 만에 멘 가방인데"…'만학도 요람' 폐교에 '눈물'

"50년 만에 멘 가방인데"…'만학도 요람' 폐교에 '눈물'
▲ 오전 10시 한창 수업 진행 중인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65세 고령에도 고등학교와 대학교 진학을 꿈꾸며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 다니는 고 모 씨는 최근 폐교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깝다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서울 마포구의 일성여중고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통학하는 고 씨.

그는 작년 3월 입학을 앞두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꿈을 꿀 정도로 배움을 갈망했습니다.

과거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중퇴한 뒤 50여 년간 가슴 한구석에 배움에 대한 한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TV 토크쇼에 출연한 80대 만학도의 사연을 보고 용기를 얻어 지난해 마침내 입학의 꿈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최근 학교가 폐교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는 또다시 깊은 좌절에 빠졌습니다.

1953년 문을 연 일성여중고는 74년 동안 가난과 전쟁, 사회적 환경 등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운영하며 든든한 교육기관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불린 설립자 이선재 교장이 지난달 10일 별세하면서 2028년 2월 폐교를 앞두게 됐습니다.

개정된 평생교육법에 따라 설립 주체를 법인으로 전환해야 법적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자격을 유지할 수 있지만, 운동장과 실습실 설치 등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폐교 수순을 밟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같은 문제로 폐교된 학교도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의 평생교육시설인 성지중고교는 설립자 사망 이후 3년 만인 2024년 2월 폐교됐습니다.

당시 학생과 교직원들이 학교 존치를 요구했지만 법인 전환을 못 해 학교 운영이 중단됐습니다.

일성여중고 역시 폐교에 대비해 내년도 신입생 모집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통상 매년 5월부터 이듬해 신입생 선발을 준비하지만, 이번에는 모집을 중단했습니다.

내년에 입학할 신입생들이 폐교 전에 중·고교 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 측은 폐교가 현실화할 경우 재학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습니다.

일성여중고에는 현재 중학교 과정 466명, 고등학교 과정 484명 등 총 950명이 재학 중입니다.

조 모(59) 일성여중고 교무부장은 "서울 시내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7~8곳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자체 학생을 우선 선발해 외부 학생이 들어갈 자리가 많지 않다"며 "현재 중학교 1학년 학생이 235명인데 타 학교 수용 가능 인원은 많아야 80명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도 폐교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임 모(65) 씨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생각으로 입학했지, 폐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지금 학교에서 한문 등을 공부하는 게 행복한데 배움이 끊길까 봐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문 모(66) 씨도 "사업을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며 "선생님들을 통해 폐교 소식을 듣고 충격이 컸고 눈물도 났다"고 말했습니다.

문 씨는 "때를 놓쳤어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학교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으면 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일성여중고는 설립자가 사망하면 법인이 아닌 학교 공동체 전체가 존립 위기에 처하는 현행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 등과 협의하고 있습니다.

학교 측은 교육감 지정으로 평생교육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교육감 권한으로 폐교 위기에 처한 시설의 재학생과 교직원을 보호할 수 있는 특례 규정을 신설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11일에는 폐교나 운영 주체 변경 과정에서 재학생의 학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진학·전학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교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보장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도 올렸습니다.

국민동의 청원을 작성한 천 모 교사는 "학생들의 학습권뿐 아니라 교직원들의 생계도 걸린 문제"라며 "학생들이 가족처럼 학교를 믿고 다니고 있는 만큼 많은 관심을 통해 학교가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운영 방안을 여러 가지로 협의 중"이라며 "일단 재학생이 졸업할 때까지는 운영을 연장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저희도 존치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저촉되는 부분이 있는 데다, 학교 시설이 개인 재산에 해당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