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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도 폴더 인사에 "수고했습니다" [이브닝 브리핑]

90도 폴더 인사에 "수고했습니다" [이브닝 브리핑]
어떤 모습으로 맞이할까? 몸을 낮출 거란 예측이 많았지만,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깊이 몸을 숙였습니다. 정 대표는 90도 허리를 숙이는 이른바 '폴더 인사'로 이재명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오전 11시 반쯤입니다. 유럽순방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고, 도열해 있던 정청래 대표는 90도로 몸을 숙여 인사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정 대표에게 "수고했습니다."라고 짧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열흘 이른바 명청갈등이 극한으로 이어졌던 만큼 혹시 의미심장한 말이 오갈 수 있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폴더인사'와 '수고했다'는 인사말은 스치듯 불과 2~3초 만에 마무리됐습니다.
90도 정청래 인사
정청래 대표는 도열 인사들 중 세 번째 순서에 섰고, 맨 앞은 김민석 총리였습니다. 김 총리도 허리 숙여 인사했는데 대통령은 따로 인사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도열한 환영 인사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차량에 올라 공항을 떠났습니다. 이 대통령이 1호기에서 내려 인사를 나누고 공항을 떠날 때까지, 모든 과정은 딱 2분 걸렸습니다.

대통령이 순방을 떠나는 환송 행사 때는, 대개 대통령과 행사 참석자들이 서울공항 귀빈실에서 차담을 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1호기로 함께 걸어가는 식입니다. 반면 귀국 환영행사는 오늘처럼, 1호기에서 내린 대통령이 도열한 환영 인사들과 인사한 뒤 차량에 탑승해 공항을 떠납니다. 그래서 여당 대표는 차담을 할 수 있는 환송행사에 참석하고, 대통령과 자주 볼 수 있는 총리는 귀국 환영행사에 참석하는 게 관례였던 겁니다. 환송 행사가 아닌 귀국 환영 행사에 참석한 여당 대표, 대통령이 굳이 말을 걸지 않는다면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나란히 선 김민석·정청래...표정은 '냉랭'

오늘 환영행사에서 관심을 모았던 또 하나의 장면은 김민석 총리와 정청래 대표의 만남입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나눌지, 또 어떤 표정으로 마주할지 주목됐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독자들은 어떤 느낌을 받으십니까?
김민석,정청래 나란히 선
많은 언론이, 나란히 서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을 '냉랭한 분위기'라고 표현했습니다. 두 사람의 속마음이야 알 길이 없고, 영상과 사진으로 드러난 표정 그리고 그동안 진행된 갈등 상황 즉 맥락 속에서 추측할 수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청와대 기자들의 공항 풀(출입기자 모두가 동시에 취재하는 데는 제약이 있으니 대표로 몇 명이 취재해 공유하는 내용을 풀이라고 부릅니다) 취재에서도, 김민석 정청래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눴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래서 냉랭한 분위기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청래 대표의 심경은 공항 행사 직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우연히(?) 드러났습니다. 민주당 의원들도 오늘 환영행사에 정 대표가 참석을 할지 관심이 컸던 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많은 의원들이 정 대표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그 과정에서 정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들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흔들리면서 젖으면서 가는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 정청래 대표/오늘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 직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는 자신의 처지와 어려움을 내비친 인사말이겠지요. 그런데 이 발언 중에 "젖으면서"라는 대목이 "져주면서"로 들린다는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짓궂은 시비로 보입니다. 맥락상 눈비 오는 어려움에 몸이 젖는다는 표현으로 들리고, 또 아무렴 정 대표가 "져주면서"라고 말을 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런 짓궂은 시비가 나오는 상황 자체가 현재 여권 내부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거겠죠.

상황관리용일 뿐...세부규칙 기싸움 예고

지난 9일 출국 환송 행사에 정 대표가 불참한 뒤로 여권 내부 갈등, 이른바 명청갈등은 공개적인 충돌로 치닫고 있습니다. 특히 정 대표의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같은 발언이 나오면서, 양측 갈등은 돌아올 수 없는 단계로 넘어간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요즘 강요당하는 느낌"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중간은 없고, 친명과 친청 중 정체를 밝혀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진영의 유튜브 스피커들도 양쪽으로 갈라져 격한 충돌을 이어갑니다. 친명이 친청을 '문조털래유(문재인, 조국, 김어준, 정청래, 유시민)'라는 일종의 멸칭으로 불러왔는데, 이 표현에 많이 긁혔던(?) 모양인지 친청은 요즘 친명을 '한강새똥돼주길(한준호, 강득구, 김민석, 이동형, 유튜버 김용민, 이언주, 송영길 의원을 지칭합니다)'이란 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이 지지층 저변으로, 감정선을 건드리며 확산하는 양상입니다.

오늘 스치듯 이뤄진 '폴더인사'와 "수고했습니다" 인사말은, 이런 여권 내 갈등이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나 여당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주는 걸로 분석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상황관리용' 이벤트로 성사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행사가 양측 갈등을 '봉합'하는 데까지 나아갈 거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청와대로서는 "부르지 않았다" 즉 배제한 쪽이 청와대라는 부담을 덜고 싶었고, 정 대표 역시 반명이라는 구도를 선명히 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몸을 낮추는 모양새가 필요했던 걸로 보입니다.

당장 전당대회 세부 규칙을 두고 양측의 기싸움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에 처음 도입되는 '당원 1인 1표제'와 관련해, 전략 지역 투표 가중치(당세가 약한 영남권 당원 표에 가중치를 두는 문제)를 어떻게 둘지를 놓고 격론이 예상됩니다. 또 당내 소수인 2030 세대의 대표성 보장 문제도 세부 룰 미팅의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부 규칙 관련 기싸움이 예고됐다는 것 자체가 정청래 대표의 출마를 전제로 한 얘기입니다.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 정부 2년차 민주당 대표의 리더십이 어떠해야 하는지"가 이번 전당대회 판단 기준이라고 얘기합니다. 성과와 실적, 통합과 포용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잇단 공개 메시지도 그 연장선에 있는 걸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에 뽑힐 새 대표는 2028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어질 대선 구도와도 직결되겠죠. 친노-친문으로 이어지며 20년 넘게 민주당 주류로 자리 잡은 '86세대'와 비주류의 도전과 성공 서사 그 자체인 '친명(뉴이재명을 포함해)' 사이의 '주류 전쟁'은 그래서 피하기 어려운 싸움입니다. 정청래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한다면 여권 지지자들로선 지독하게 고통스러울, 끝을 봐야 끝이 나는 싸움이 막을 열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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