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에서 열린 예수 그리스도의 탑 축복식에서 조명·불꽃쇼가 펼쳐지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늦은 저녁 스페인 바르셀로나.
기이한 곡선을 그리며 뾰족하게 솟아오른 첨탑들 위로 어둠이 내려앉은 가운데 성가가 울려 퍼지고 수천 명의 손에 들린 조명봉이 번쩍 켜졌습니다.
군중은 탄성을 내지르며 봉을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곧바로 성당 본당과 탑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오색 빛이 쏟아져 나오며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큰 함성과 함께 마치 성당을 향한 응원봉처럼 조명을 흔들었습니다.
이날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타계 100주기에 맞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에서 가장 높은 중앙 탑인 '예수 그리스도의 탑'으로 바르셀로나 스카이라인의 완성을 알리는 화려한 조명 쇼가 펼쳐졌습니다.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끄는 레오 14세 교황이 직접 바르셀로나를 찾아 예수 그리스도의 탑을 축복하고 봉헌했습니다.
성당 전면부 '탄생의 파사드' 앞에 마련된 행사장에 초청받아 교황이 탑을 축복한 단상 바로 앞에서 참례한 바르셀로나 시민 마리아 씨는 "정말 스펙터클하고 아름답고 마법 같았다"며 "가톨릭 신자로서도 훌륭했지만, 신자가 아니더라도 좋은 감동적인 자리였다"고 말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해마다 한국인 약 24만 명을 포함해 전 세계 관광객 490만 명이 몰리는 스페인의 대표 명소입니다.
성당은 1882년 착공해 145년째 건설 중이지만, 인간이 신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가우디의 뜻대로 몬주익 언덕보다 약간 낮은 172.5m 높이의 예수 그리스도의 탑을 완성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회가 됐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이날 행사는 저녁 7시 30분 시작됐지만 한낮부터 성당 앞 거리에는 교통 통제용 철제 펜스 너머로 교황을 기다리는 인파가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미사를 30분가량 앞둔 저녁 7시 교황이 개방형 전용차 '포프모빌'을 타고 성당 옆 거리로 들어서자 운집한 시민과 관광객들은 환호했습니다.
"비바 파파(교황 만세)!"라는 외침도 쉬지 않고 들렸고 바티칸 시국 국기도 곳곳에서 휘날렸습니다.
이에 교황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손을 흔들며 응답했고, 신자가 들어 올린 아기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축복하기도 했습니다.
약 15분간 거리에서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성당 앞에 내린 교황을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등이 맞이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형형색색의 빛이 쏟아지며 숲의 나무처럼 솟아오른 기둥을 비추는 가운데 경건한 미사가 펼쳐졌습니다.
성당 건축가 마우리시오 코르테스에 따르면 신과 자연에 대한 경이와 기독교적 상징을 담아낸 이 성당의 외관이 '돌로 지은 성경'이라면, 성당 내부는 '기둥과 빛이 이루는 경이로운 숲'입니다.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탑과 상단의 십자가를 봉헌하면서 "이 십자가는 낮에는 햇빛을 반사해 빛나고, 밤에는 지중해를 굽어보는 등대와 같이 도시를 비춘다"고 말했습니다.
성당 내부의 4천 명은 물론이고 파사드 앞에 설치된 4천 석 자리에 초청받은 바르셀로나 시민과 신자들은 숨죽여 미사를 지켜보고 교황의 강론을 마음속 깊이 새겼습니다.
숙연한 표정으로 시시각각 성호를 긋거나 맨바닥에 무릎을 꿇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마리아 씨는 "교황이 휴대전화만 보지 말고 자기의 문제나 어려움만 보지 말고, 우리 앞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사람을 보고 마음을 열라는 말씀을 한 부분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미사가 마무리되고 교황이 성당 밖으로 나올 시간이 다가오자 신자들은 입구를 바라보고 자리에서 들썩거리면서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윽고 교황이 단상 위로 모습을 등장하자 "비바 파파!"라는 외침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은 교황이 탑을 향해 성수를 뿌리고, 다시 군중을 향해 성수를 뿌릴 때마다 열띤 박수로 호응했습니다.
가우디의 모습을 그린 드론 쇼에 불꽃놀이까지 벌어지며 축복식이 절정을 향해 달리자 열광적인 환호는 계속됐습니다.
이날 성당 주위를 두른 펜스 바깥쪽 거리에도 시민과 관광객 등 수만 명이 모여 예식을 함께 지켜봤습니다.
바르셀로나 여행 중에 이번 축복식을 보게 됐다는 이 모 씨는 "아주 좋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울기까지 했다"며 "종교란 이렇게 많은 사람을 결집시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종교가 없더라도 성스러운 느낌은 받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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