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를 연상시키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백사장.
영화 트랜스포머2에도 등장하는 인도양의 아름다운 섬인데요.
근데 이 섬,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미군의 핵심 자산 B-52 폭격기가 쉴 새 없이 뜨고, 핵 추진 잠수함이 오가는 엄청난 군사 시설입니다.
그런데 최근엔 좀 많이 시끄럽습니다.
중국과 아주 가까운 아프리카 국가가 이 섬을 넘겨받기로 했고, 미국 베센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한테 아예 이 섬을 사버리자고 건의까지 한 거죠.
대체 이 미지의 섬 '디에고 가르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지도를 한 번 같이 보겠습니다.
북쪽으로 중동과 서쪽으로 아프리카, 동쪽으론 인도네시아와 호주를 두고 정확히 한가운데 산호섬들이 있습니다.
바로 차고스 제도란 곳인데, 여기서 가장 큰 섬 이름이 바로 '디에고 가르시아'입니다.
이 섬엔 미국과 영국의 합동 군사 기지가 들어와 있는데, 압도적인 지리적 이점 때문에 지금까지 미국이 중동에서 벌인 모든 전쟁에서 '전진 기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활주로엔 B-2, B-52 폭격기가, 심해엔 핵잠수함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 시설이, 여기에 미국의 우주사령군 시설까지 들어와 있어 기지 자체가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습니다.
실제 활용 사례를 좀 보면요.
지난해 3월 미국이 예멘 후티 반군을 공습할 당시 미군이 보유한 전력의 3분의 1에 달하는 B-2 스피리트 폭격기 6대를 이 섬에 전진 배치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번 이란 전쟁에서도 미군이 이 기지를 거점 삼아서 공격하니까 이란이 탄도미사일로 디에고 가르시아를 직접 타격하려고 시도했는데 기지에 닿지는 못했습니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이곳은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와 함께 미국의 양대 군사 거점으로 꼽힐 만큼 미국엔 중요한 곳이지만 사실 이 섬, 미국 영토가 아닙니다.
다시 지도를 한번 같이 볼게요.
원래 이곳은 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모리셔스의 영토였습니다.
그런데 모리셔스를 식민지로 갖고 있던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대 초 차고스 제도에 군사기지를 설치했습니다.
1968년 모리셔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이 차고스 제도는 영국령으로 남았고 이후 영국이 미국에게 군사적 목적으로 차고스 제도를 사용할 수 있게 합의하면서 이때부터 미국의 간접 소유가 시작된 거죠.
60년 가까운 점유가 이어지던 중 판이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모리셔스가 국제사회 차고스 제도를 우리가 다시 돌려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국제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지난 2019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영국이 불법적으로 차고스 제도를 분리했다고 권고적 의견을 냈습니다.
같은 해 5월 UN 총회에서도 영국이 차고스 제도를 모리셔스에 반환하라는 안건이' 찬성 116대, 반대 6' 압도적 표 차이로 통과됐습니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높아지자 결국 지난해 5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차고스 제도의 주권을 모리셔스에 이양하고 디에고 가르시아 섬의 군사기지를 최소 99년 간 통제하는 협정을 체결하면서 100년 가까운 차고스 제도의 영유권 분쟁은 모리셔스 반환으로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등장합니다.
지난해까지도 이 협정에 지지를 보냈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느닷없이 영국의 결정을 공개 저격하고 나선 겁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영국이 이처럼 극히 중요한 영토를 내주는 것은 엄청나게 어리석은 행위이자 미국이 그린란드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또 하나의 국가안보적 이유라고 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격한 반응을 쏟아내니까 영국 국회도 아직까지 합의안을 진행할 법안 통과를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렇게 세게 나오는 이유는 단순히 '방 빼는 것'만을 걱정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미국이 떠날 경우 디에고 가르시아의 새로운 주인이 다름 아닌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인도양 연안을 따라 항만·인프라를 투자해 군사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모리셔스는 인도양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지역입니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마련한 첫 번째 군사기지가 있는 지부티로 가는 길목에 디에고 가르시아가 딱 버티고 있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선 차고스 제도가 계속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탓에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선 최초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중국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차고스 협정 과정에서 모리셔스는 중국과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국제사법재판소 같은 국제법적 투쟁에서도 중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2018년엔 모리셔스를 직접 찾기도 했죠.
또,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수천 명의 모리셔스 관리들이 차고스 제도 인수를 위해서 중국을 방문했고, 수백 명이 추가로 베이징으로부터 훈련을 받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미국 의회에서는 이곳을 모리셔스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존 닐리 케네디 / 미국 상원의원 (지난달 12일, 미국 상원 국방소위원회) : 모리셔스는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습니까?] [피트 헤그세스 / 미국 전쟁부 장관 :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존 닐리 케네디 / 미국 상원의원 : 그래요, 아시다시피, 그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베프'나 다름없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모리셔스는 또다시 디에고 가르시아의 열쇠를 중국에 넘겨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맞습니까?] 이런 미국 측의 압박에도 영국은 국제 사회 지지 등을 이유로 합의안을 강행하겠단 의지가 강한 상황입니다.
해미시 팔코너 영국의 중동·북아프리카 담당 장관은 지난달 워싱턴이 디에고 가르시아 섬을 매입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없다고 밝히면서, 영국 정부는 "체결된 합의를 지킬 것"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최근 미국에선 영국이 모리셔스에 디에고 가르시아를 이양한 뒤에라도 섬을 다시 사 오겠단 계획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달 초 미국 정부가 영국을 우회해서 디에고 가르시아 섬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모리셔스를 상대로 한 독자적인 협상안을 마련했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디에고 가르시아는 그린란드처럼 미국이 눈독들이는 그런 섬이 된 겁니다.
휴양지를 닮은 인도양의 산호섬 하나에 영국과 모리셔스, 미국과 중국까지 네 나라의 셈법이 얽혔습니다.
영국 의회의 비준은 멈춰 섰고, 미국은 직접 매입하는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60년을 끌어온 이 섬의 주인 찾기, 이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취재 : 김지욱,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황세회·차승환, 영상편집 : 나홍희, 디자인 : 육도현, 출처 : DVIDS, 제작 :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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