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지방선거를 '중앙 정치의 대리전'으로 부릅니다. 그 정치적 의미, 중요합니다. 하지만, 거대 담론이 선거판을 휩쓸 때면 정작 우리가 사는 동네의 이야기는 그 기세에 눌려 보이지 않게 됩니다.
SBS 탐사기획팀은 투박한 정치적 구호 대신 '데이터'라는 정밀한 렌즈를 통해 지방선거를 들여다 보려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 우리 동네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지표로 확인해 보고, 동네 단위 방대한 선거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 동네 별 세세한 표심은 물론 그 이면에 숨겨진 과학적 흐름을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지방선거의 주무대는 '중앙'이 아닌, '우리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구름 위의 전쟁'이 아닌 우리 일상의 결을 결정하는 '촘촘한 민주주의'의 장. 그 무게를 유권자 분들과 함께 고민하는 '지방선거의 무게' 연속보도, 오늘은 그 열두 번째 순서입니다.
그중에서도 서울은 가장 묘한 역설을 남겼습니다. 전반적인 표심은 민주당으로 기울었는데, 시장은 오세훈 후보가 가져갔습니다. 정원오 후보는 절반이 넘는 동네에서 이기고도, 정작 서울 전체에서는 졌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그를 주저앉혔을까. SBS 탐사기획팀은 서울 427개 행정동을 4년 전 지방선거와 한 동네씩 포개어, 데이터를 분석해봤습니다.
민주당 '우세', 427동 중 220곳 승리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정원오 후보는 절반이 넘는 동네에서 이기고도, 서울 전체로는 졌습니다. 이 역설이 이번 서울 선거의 핵심입니다. 답은 '얼마나 많은 동네에서 이겼는가'가 아니라 '어디서, 얼마나 크게 졌는가'에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따져볼까요?
방어선은 '강남3구+용산'
이 네 곳이 서울 전체 숫자를 어떻게 떠받쳤는지는, 순득표차로 보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강남3구에서만 오세훈 후보는 정원오 후보를 21만 7천여 표차로 눌렀고(강남 -10만·서초 -7.3만·송파 -4.8만), 여기에 용산구(-1.9만)까지 더하면 23만 9천여 표입니다. 반면 나머지 21개 구를 다 합치면 정원오 후보가 17만 9천여 표 앞섰습니다. 즉, 오 후보가 6만 표 더 받은거죠. 서울 전체의 승부는 이 네 곳이 만든 격차 하나로 뒤집힌 셈입니다.
'강북의 반란', 외곽 13개 구가 통째로 돌아섰다
서울을 남북으로 갈라온 옛 지도, 한강 이남은 보수·이북은 민주당이라는 구도가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다시 그려졌습니다. 다만 방향은 같아도 강도가 달랐습니다. 강북의 우세는 한 자릿수, 강남의 우세는 두 자릿수에서 많게는 70%p대. 같은 도시 안에서 표심의 '온도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진 선거도 드뭅니다.
진보 표심을 움직인 '신축벨트'
동 단위로 내려가면 더 선명합니다. 서울에서 표심이 가장 크게 출렁인 동네는 마포구 상암동(+31%p 안팎)과 성동구 일대였습니다. 특히 성동구는 정원오 후보가 12년 간 구청장을 지내며 표밭을 일군 곳이죠. 성동에서만 응봉동(+31)·행당2동(+29)·왕십리2동(+28)·송정동(+28)을 비롯해 표심 이동 상위권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성수·왕십리·금호의 재개발과 신축 입주가 몰린 동네들입니다. 새로 이사 온 젊은 세대가 표를 민주당으로 옮긴 신호입니다.
다만 '신축=민주 압승'은 아니었습니다. 강동구는 +17.2%p나 이동하고도 여전히 평균 -7%p가 남아(둔촌2동도 -8.5%p), 둔촌의 초대형 신축으로도 원래 두꺼운 보수의 벽을 넘진 못했습니다. 강동(+17.2)·송파(+15.7)처럼 재건축이 몰린 곳도 흔들리되 넘어가진 않은 겁니다. 게다가 흔들림이 신축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어서, 은평·구로·도봉 같은 외곽 구도 +19%p 안팎으로 비슷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뜨거운 진앙이 새 아파트 동네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 동네에 누가 새로 들어와 사는가'가 다음 선거의 지형을 미리 그리고 있습니다.
정원오 후보는 왜 이 흐름을 못 살렸나 ①: 인물의 힘이 약했다?
같은 '민주당 후보'인데, 정원오 후보의 +4.2%p는 이들에 한참 못 미쳤고 전국 17곳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축이었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당의 기본 지지를 '인물의 힘'으로 크게 키웠지만, 정원오 후보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서울의 민심이 민주당으로 기운 그 절반의 흐름이, 시장 후보 개인에게서는 더 증폭되지 못한 채 멈춘 것입니다.
정원오 후보는 왜 이 흐름을 못 살렸나 ②: 시장은 '오세훈', 구청정은 '민주당'
지도로 펼치면 이 분할이 한쪽으로 쏠립니다. 강북 외곽은 시장·구청장 둘 다 민주당(파랑), 강남3구·용산은 둘 다 국민의힘(빨강)으로 비교적 깔끔하게 갈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동작·강서·영등포 같은 서남권에서 표심이 두 갈래로 찢어졌습니다(보라색). 시장 표는 오세훈 후보에게, 구청장 표는 민주당에게 간 동네들입니다. 분할이 가장 많은 곳도 동작구(10곳)·강서구(9곳)·영등포구(7곳) 순이었습니다.
동작구가 그 축소판입니다. 시장은 오세훈 후보(49.6%)가 정원오 후보(47.2%)를 눌렀지만, 구청장은 민주당 류삼영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10%p 넘게 앞서 당선됐습니다. 한 동네에서 시장과 구청장의 선택이 정반대로 갈린 겁니다.
이 엇갈림의 의미는 4년 전과 맞대면 분명해집니다. 8회 지선에서 오세훈 후보는 서울 전체 자치구에서 자기 당 구청장 후보보다 더 큰 표차로 이겼고, 그 힘으로 국민의힘 구청장 19명을 함께 당선시켰습니다(민주당은 6명). 인기 있는 시장이 같은 당 후보들을 끌어올리는 '낙수 효과'였습니다. 9회는 정반대였습니다. 구청장 판세 자체가 민주당 15곳, 국민의힘 10곳으로 뒤집혔는데, 정원오 후보는 25개 구 중 18곳에서 자기 당 구청장 후보보다 표차가 작았습니다. 구청장은 이기고 있는데, 정작 시장 후보가 그 등에 업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를 행정동 427곳에 점으로 찍으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가로축은 그 동네에서 구청장 후보가 자기 당으로 벌린 표차, 세로축은 시장 후보가 벌린 표차입니다. 대각선(45°선)보다 위에 있으면 시장 후보가 같은 당 구청장보다 더 받았다는 뜻(끌어줌), 아래면 못 받았다는 뜻입니다. 오세훈 후보는 427개 중 316개동이 선 위에 몰린 반면, 정원오 후보는 111동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동네에서 정원오 후보가 자기 당 구청장 후보 아래로 가라앉은 겁니다.
가장 상징적인 곳이 정원오 후보의 정치적 고향, 성동구입니다. 정원오 후보는 이곳에서 구청장을 세 번 지냈습니다. 그런 성동에서조차 정원오 후보의 시장 득표율(51.2%)은 같은 당 구청장 후보 유보화(53.5%)보다 낮았습니다. 자기가 키운 텃밭에서도, 인물의 힘이 당 후보를 넘지 못한 셈입니다.
427개 동네가 남긴 답은?
다만 이번 선거 결과를 온전히 후보 개인의 경쟁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서울시장 선거는 전통적으로 중앙정치와 부동산 이슈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도 강남3구와 용산 등 재건축·재개발 기대가 높은 지역에서는 국민의힘 지지가 강하게 유지됐습니다. 민주당 지지세가 서울 전역에서 회복되는 흐름 속에서도 이들 지역이 끝까지 오세훈 후보를 선택한 배경에는 후보 개인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부동산 정책에 대한 선호와 정책 연속성에 대한 기대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같은 날 치러진 선거에서 나타난 분할투표 현상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일부 유권자들은 구청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면서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후보를 택했습니다. 이는 정원오 후보 개인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앙정부와 서울시 권력을 서로 다른 정당에 맡겨 균형을 맞추려는 견제 심리의 결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 지지세 회복'과 '오세훈 후보의 경쟁력', 그리고 '부동산 정책과 정권 견제 심리'가 동시에 작용한 복합적인 선거였습니다. 데이터는 정원오 후보가 민주당 상승 흐름을 충분히 자기 표로 연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그것만으로 6만 표 차이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서울 유권자들의 선택에는 후보 개인을 넘어 정책, 지역 이해관계, 그리고 중앙정치에 대한 평가가 함께 녹아 있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작가 : 김효진·박정선, 인턴 : 박근호·송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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