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한미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 안보 분야 후속조치 협의를 위한 발족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를 방문하고 있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과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 등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출한 안보 합의 사항의 이행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한미 간의 첫 회의가 오늘(2일)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 범정부 대표단은 오늘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공동 설명자료) 안보 분야의 후속 조치 협의를 위한 발족(Kick-off)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당초 한미는 올해 초 후속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미국이 대미 투자와 쿠팡 등을 문제 삼은 데다, 미국·이란 전쟁까지 겹치면서 약 6개월 만에 첫 회의가 열리게 된 것인데, 정상 간 합의가 선언적 수준을 넘어 실제 이행 협상 단계로 들어서는 첫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측에서는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고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국방부, 기후에너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의 관계자로 구성된 범정부 대표단이 참석했습니다.
미국 측 대표단에는 앨리슨 후커 국무부 정무차관을 필두로 아이번 캐너패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수석국장, 데이빗 와일레즐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크리스토퍼 클레인 국무부 군비통제·비확산 부차관보, 매슈 나폴리 국가핵안보청(NNSA) 부청장, 제임스 헬러 주한미국대사대리 등이 함께했습니다.
후커 차관은 오늘 청사로 들어오면서, 취재진으로부터 '오늘 회의의 주요 목표는 무엇인지',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 이른바 123협정과 핵잠수함 협정 개정 등에 열려 있는지', '연말까지 결론을 기대하는지' 등의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협상 의제 자체가 민감한 만큼, 미국 측은 회의에 앞선 공개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은 물론, 회의 석상에서의 모두 발언도 비공개하는 방향으로 한국 측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협의의 핵심 의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도입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원자력 협력 확대 문제입니다.
조선업 협력은 별도 의제로도 다뤄지지만, 이번 협의에서는 핵추진잠수함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건조할지와 맞물린 쟁점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들 의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핵추진잠수함 연료입니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장보고 N 사업'을 공식화하며 2030년대 중반 첫 핵추진잠수함 진수, 2030년대 후반 전력화를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BM 위협에 대응하고 장기간 은밀하게 작전할 수 있는 전략자산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정부는 핵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이 아닌 농축도 20% 미만의 저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핵확산 우려를 낮추면서도 장기간 잠항이 가능한 추진체계를 확보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문제는 이 저농축우라늄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또 어떻게 통제하느냐입니다.
한국은 현재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동의 없이 우라늄을 독자적으로 농축할 수 없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제한돼 있습니다.
원전 연료로 쓰이는 저농축우라늄도 전량 수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핵추진잠수함 연료로 쓰일 미국산 저농축우라늄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더 나아가 독자적인 농축·재처리 권한까지 확보하려면 미국 행정부와 의회, 그리고 비확산 진영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확보할 핵물질이 핵무기 개발 등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할 수 있는 핵물질 통제 관리 체계가 핵심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특히 원전은 국제사찰단의 접근과 감시가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핵추진잠수함은 일단 출항하면 위치와 동선, 작전 시간이 군사기밀로 관리됩니다.
이 때문에 한미 협의에서는 잠수함 안에 들어간 핵물질을 어떻게 추적하고, 사용 내역을 어떻게 확인하며,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관리할지 같은 법적·기술적 세부 사항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에너지부와 국가핵안보청 등 미국 측은 핵연료 반출입 절차와 사용 범위, 사후 관리, 사용후핵연료 보관 방식 등에 대해 엄격한 통제 장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핵무장과 무관하고, NPT 체제와 국제 비확산 원칙을 준수하는 범위 안에서 추진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협정 문제도 핵심 쟁점입니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기본적으로 민간 원자력 협력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는 기존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반면 핵추진잠수함 연료는 민간 원자력 협력과 달리 군사적 성격을 갖습니다.
이 때문에 핵잠 연료 공급을 위해서는 기존 원자력협정 개정과 별도로, 군사용 핵연료 이전을 다루는 별도 협정이 필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호주가 미국·영국과 오커스 체제 아래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추진하면서 별도의 제도적 틀을 마련한 사례는, 엄밀하게 한국의 사례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순 없지만, 한미 협의 과정에서 참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 국내법과 의회 절차도 변수입니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 대통령이 공동 방위와 안보를 증진하고 불합리한 위험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의회가 반대하지 않으면 군사적 용도의 핵물질 판매나 이전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상 국가가 국제적 협정에 따라 미국과 함께 상호 방위와 안보를 위해 실질적이고 중대한 기여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 있습니다.
이 조항은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내 안보 기여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실제 한국 정부는 핵추진잠수함 도입 목적을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방부도 지난달 26일 '장보고 N 사업'을 발표하면서 한국형 핵잠이 북한의 잠수함 기반 핵·미사일 위협 등에 대응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도 지난달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한국의 핵잠 도입과 관련해 "우리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하는 잠재적 적국에 실질적인 딜레마를 안겨줄 수 있다"고 말했는데, 중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핵추진잠수함 지원을 계기로 한국의 역내 해양안보 기여 확대나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대중 견제 역할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로서는 대북 억제라는 도입 명분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동맹 현대화 요구와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 가능성을 함께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됩니다.
핵추진잠수함 건조 장소도 잠재적 변수입니다.
한국 정부는 국내 조선 기술과 자체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건조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한국 핵추진잠수함을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미국 조선업 재건과 한미 조선 협력을 연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발언으로 해석됐습니다.
이에 따라 향후 협의에서는 한국 내 건조 원칙과 미국 내 조선소 활용 가능성, 한미 조선업 협력의 범위를 어떻게 조율할지도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번 협의의 핵심은 한국이 원하는 목표들을 미국의 조건 안에서 어떻게 관철해내느냐입니다.
한국 측의 방점은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하고, 국내 조선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며, 원자력협력협정 개정 등을 통해 농축·재처리 권한을 확보하겠다는 데 있는 반면, 미국 측의 방점은 핵확산 우려를 차단할 검증 체계와 핵물질 통제 장치 마련, 동맹 차원의 안보 기여 문제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발족회의에서 후속 협의 정례화나 분야별 협의 채널 가동에 공감대를 이룰 순 있지만, 곧바로 유의미한 합의를 도출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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