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에서 나름의 영향력과 팬덤을 확보한 유력 매체의 대표가 구속된 것도 충격적이지만 그 혐의 내용이 더 놀랍습니다. 김 대표는 지난해 3월 김새론 유족 측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배우 김수현이 미성년자였던 김새론과 교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 근거로 김새론이 "김수현과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성관계했다"고 말한 음성 녹취를 제시했습니다. 아울러 김새론이 사망한 직접적인 원인이 김수현 측의 채무 변제 압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일로 김수현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모든 활동을 사실상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허위 사실이라는 게 경찰의 수사 결과입니다. 심지어 유력한 근거였던 김새론의 녹취는 AI를 활용해 김새론의 음성을 조작하는 식으로 꾸며냈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경찰은 김 대표가 대중의 관심을 받고자 허위임을 알면서도 이런 행동을 했다고 봤습니다. 이에 따라 김 대표의 구속 혐의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에서부터 명예훼손과 협박, 강요미수 등 다양합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언론 매체 대표의 일탈로만 볼 수 없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의 추악한 현실과 병폐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1. 팬덤 비즈니스化된 저널리즘의 폐해
▶ 조국 전 장관 자녀 등 정치인 가족 사생활 폭로: 조국 전 장관의 장녀가 포르쉐를 타고 다닌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민사상 배상을, 이인영 전 장관 아들 관련 의혹을 유포 했다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 끝에 벌금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 공직선거법 위반: 지난 2022년 재∙보궐 선거 등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2023년 5월 1심에서 김세의 대표를 비롯한 출연진들이 벌금형(100만~200만 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 유명인 사생활 폭로로 민사상 손해배상: 유튜버나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자극적으로 폭로해 수많은 고소·고발을 당했으며, 다수의 민사 소송에서 수천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 체포 및 구속 영장 실질 심사 잔혹사: 과거에도 경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해 강제 체포되는 등 법치국가의 수사 절차를 따르지 않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저널리즘 가치와 법치 질서를 숱하게 무시하고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세연은 여전히 상당한 후원금과 방송, 광고 수익을 올리며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팬덤에 기대 선정적인 보도로 화제를 생산해 생존하는 일부 온라인 매체의 폐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2. AI에 의한 녹취록 조작이 우리 언론에 주는 경고
▶ '딥페이크 저널리즘'의 공포 현실화: 과거의 가짜뉴스는 짜깁기나 왜곡 해석 수준이었습니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음성과 대화록을 AI로 창조해 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대중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화면과 녹취를 불신하게 됐습니다. 이는 언론 생태계 전체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게 되고 사회는 급등하는 신뢰 비용으로 고통 받게 됩니다.
▶ 입증 책임의 전도와 진실의 고립: 조작된 AI 화면이나 녹취가 유포되면 피해자는 "내가 하지 않은 행동과 말"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가혹한 처지에 놓입니다. 국과수마저 판별이 어렵다고 할 정도로 정교해지는 기술 앞에서 언론이 최소한의 검증 없이 유포자가 될 때, 진실은 완전히 고립됩니다.
▶ 게이트키핑의 타락: 김세의 대표는 한 지상파 방송사의 기자 출신입니다. 정통 언론사에서 전문직 기자로서의 훈련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AI 기술을 동원해 정교하게 조작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까지 된 점은 큰 충격입니다. 이는 개인적 기자 윤리나 전통적인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유튜브 환경의 자극적인 조회수와 수익 모델 앞에서는 쉽게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부릅니다.
3. 脫중립 시대, 새로운 저널리즘 가치 개념의 정립
① 투명성 저널리즘
이제 독자들은 언론이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속셈을 숨긴 채 '중립'의 가면을 쓰는 것보다, 정보를 어떻게 취득했는지, 제보자의 이해관계는 무엇인지, 왜 이 시점에 보도하는지 등의 보도 과정과 의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새로운 신뢰의 기준이 됩니다.
② 책임성 저널리즘과 엄정한 사후 정정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퍼뜨린 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가거나 소액의 벌금으로 때우는 풍토는 사라져야 합니다. 보도에 따른 사회적 파장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구조, 그리고 오보나 기술적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이를 투명하고 확실하게 바로잡는 '정정의 문화'가 저널리즘의 핵심 가치가 돼야 합니다.
③ 검증∙확인 저널리즘
단순히 "A가 이렇게 말했다"를 받아 적는 기계적 객관주의는 조작 보도의 숙주가 되기 쉽습니다. 이번 사태 역시 가세연 혼자 만든 것이 아닙니다. 가세연의 보도를 받아 써준 무수한 다른 언론 매체들도 함께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실을 넘어 그 사실이 존재하게 된 과정을 분석하고, AI 조작 여부 등을 교차 검증하는 디버깅(Debugging) 역할을 언론이 수행해야 합니다. 받아쓰는 기자가 아니라 검증하는 저널리스트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④ 공공성과 인권 중심의 윤리 가치
기자의 전문직주의가 조회수나 후원금, 광고비 수익 등 시장 논리에 무릎 꿇는 시대입니다. 결국 옥석을 가리는 것은 수용자의 몫입니다. 경제적 수익을 위해 기자로서의 윤리, 저널리즘 가치는 도외시하는 것은 아닌지, 공공성과 인권을 위해 책임을 지는 태도와 인식을 갖췄는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상의 자유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언론인들이 공익과 인권을 우선하는 본질적 기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저널리즘이 "우리는 중립적으로 사실만 전달한다"를 최우선 가치로 뒀다면, 21세기의 새로운 저널리즘은 "우리는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검증했으며, 취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 보도에 대해 끝까지 책임진다"로 진화해야 합니다. 김세의 대표의 구속을 계기로 우리 언론이 이렇게 변화해야 하겠습니다. 수용자도 '내 편을 들어주는 언론'을 찾는 대신 '바르게 책임지는 언론'을 알아보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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