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식별화 처리 완료한 후보 영상
서울에 거주하는 주부 김 모(48·가명) 씨는 최근 전통시장에서 만난 6·3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 후보의 유튜브 계정을 찾아봤다가 한 숏폼(짧은 영상)에서 장바구니를 든 채 후보 옆을 지나는 자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상 촬영에 동의하지 않았던 김 씨는 급히 계정 관리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해당 화면 삭제나 모자이크 처리를 요청했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거리 유세·시장 방문·출퇴근 인사 현장이 유튜브 숏폼 영상으로 유통되는 과정에서 많은 유권자의 얼굴이 동의 없이 촬영·게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인공지능(AI) 영상 처리 전문 기업 자라소프트가 운영하는 프라이버시 연구·조사 기관 '블러미 프라이버시 랩(BlurMe Privacy Lab)'이 지난 18~21일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후보자 전원(54명)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후보자 전원(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식 유튜브 계정에 행인 얼굴과 자동차 번호판 등이 나온 영상을 게시한 후보자는 각각 광역지자체장 후보 41명, 국회의원 후보 32명이었습니다.
후보자 계정 가운데 모자이크와 블러(가림) 등 개인정보보호 비식별화 처리를 한 건도 하지 않은 계정은 각각 37개(광역지자체장 후보)과 26개(의원 후보)로 평가대상 계정의 90.2%와 81.3%를 차지했습니다.
영상 속에서 후보자와 만나 직접 대화 나누는 사람들은 사전 동의서 서명이나 녹취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어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후보자 계정에 올라온 숏폼이나 동영상을 보면 후보자 주변에 있는 행인의 얼굴이 뚜렷하게 식별 가능한 상태로 노출돼 있습니다.
유아와 어린이 얼굴이 비식별 처리 없이 게시된 사례도 다수 포함됐습니다.
출퇴근 시간대 차도에 인접한 보도블록이나 교차로에서 진행되는 유세 영상에서는 지나가는 차량의 번호판이 선명하게 노출된 사례도 광범위하게 확인됩니다.
자동차 번호판은 등록 정보와 결합해 소유자를 특정할 수 있는 '간접 식별자'에 해당합니다.
특히 최근 AI 기반 번호판 인식 기술의 발전으로 단순 명령으로도 영상 내 번호판 일괄 추출이 가능해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습니다.
AI 비식별 기술을 활용하면 후보자 얼굴은 그대로 두고 행인과 자동차 번호판만 수 분 내에 자동 처리할 수 있는 만큼 비식별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은 기술적 장벽 문제가 아닌 인식과 의지의 부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은 물론 초상권 침해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요새는 프로그램이 좋아서 간단히 얼굴을 가리면 되는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까 그냥 올리는 것 같다"며 "정치인이 당장 선거 운동이 급하다고 다른 사람 얼굴이나 개인정보를 함부로 올리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유튜브 영상에는 초상권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 촬영 중 초상권과 관련한 한 영상에는 "나라가 좁아서 보면 누군지 아는 데 당연히 민감하다. 알아서 모자이크해라", "모든 유튜버가 애초부터 영상을 찍을 때 허락을 받거나 올릴 때 타인의 얼굴은 가려서 올리면 될 텐데 말이죠", "제발 타인의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유튜버 때문에 밖에 나가질 못하겠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초상권 침해 등 피해를 보고 대응에 나선 이들이 올린 글도 찾을 수 있습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촬영한 유튜버의 영상에서 얼굴이 노출된 누리꾼은 "타인 얼굴(과) 패션(을) 다른 사람한테 지적당하게 하는 댓글 다 열어두고 뭐 하시는 건지. 계정 신고했습니다. 영상 내려주세요"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해당 댓글 아래에는 "같이 고소하시죠. 저희 고소 준비 중입니다" 등 다른 피해자들의 대댓글도 달렸습니다.
선거 이후에도 SNS에 남는 유세 영상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막으려면 각 정당과 캠프가 영상 업로드 전 AI 비식별 처리를 표준 절차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아울러 관련 부처가 비식별 처리 권고, 대국민 인식 제고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합니다.
김동현 강원대 AI융합학과 교수는 "각 선거 캠프가 행인 등을 블러 등 비식별 조치하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라며 "코로나19 사태 때 인권위가 감염자 동선을 비식별 조치토록 한 것처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사전 권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유튜브 캡처 후 편집,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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