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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다" 민원에 사라진 만국기…설레는 운동회는 옛말

"시끄럽다" 민원에 사라진 만국기…설레는 운동회는 옛말
▲ 초등학교 운동회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전교생이 함께하는 운동회는 거의 열리지 않아요. 주변 아파트 주민이나 학부모 민원 때문에 많이 위축됐어요."

경기도 고양시 한 초등학교 교사 박 모(35) 씨는 어제(14일)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 운동장 내 소음을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거나 112에 신고하는 사례가 늘면서 대다수 학교에서 운동회가 사라지거나 규모가 축소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이 아닌 강당에서 열리는 '실내 운동회'나 학년별로 1∼2교시 정도만 진행하는 '미니 운동회' 형태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운동회 소음 관련 112 신고는 350건으로 2018년(70건)의 5배로 급증했습니다.

또 다른 고양 초등교사 김 모(30) 씨는 "운동회 도중 경찰이 출동한 적 있다"며 "경찰도 황당해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는 앰프 소리를 낮춘 채 '고요한 운동회'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운동회 위축 원인인 민원 유형은 각양각색입니다.

'더운 날씨에 아이들이 밖에 오래 있어야 해 걱정된다'라거나 '경기 중 아이가 질책받았다는데 왜 교사가 지도하지 않았나'처럼 개인적인 불편 사항부터 교육 방식에 대한 간섭까지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일부 학부모는 '우리 어렸을 때처럼 부모도 함께 참여하고 참관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반면 일부는 '맞벌이 가정에서는 참관이 어려우니 자제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자녀가 경기에 진 경우 '아이가 박탈감을 느낀다'라거나 '속상해한다'는 민원이 빗발쳐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무승부 처리를 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 박 모(42) 씨는 "민원에 응대하다 보면 차라리 운동회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민원 처리 과정과 결과를 서류로 정리해 보고해야 하니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고 토로했습니다.

교육계는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는 구조를 지목합니다.

과거에도 민원은 존재했지만 사회 통념상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경우 교사 재량에 따라 처리됐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운동회나 현장 체험학습 등 학생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교사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분위기입니다.

지난해 11월 춘천지법 형사1부(심현근 부장판사)는 2022년 강원 속초 현장 체험학습 도중 발생한 학생 사망사고 관련 기소된 담임 교사에게 금고 6개월의 선고유예를 내렸습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금고 6개월·집행유예 2년인 원심판결을 파기했지만, 여전히 교사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교사들은 이런 판결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하소연합니다.

운동회 중 학생이 다칠 경우 학교안전공제회를 통해 보험 처리를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경기도 시흥시 초등교사 한 모(33) 씨는 "사고가 발생하면 학부모와 지속해서 소통해야 해서 심리적 부담이 크다"며 "책임을 담임교사에게 전적으로 지우니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경기 초등교사 김 모(29) 씨도 "이런저런 민원이 교사들의 교육활동 의지를 꺾고 있다"며 "교사에게 교육활동 의무를 부여하지만,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는 장치는 부족한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학부모도 교사들의 하소연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최 모(41) 씨는 "학교가 일부 극성 학부모 민원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며 "학교 시스템이나 교육 정책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교육 당국이 민원 해결책을 마련해 운동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학생들이 운동회를 통해 협동과 배려의 가치를 경험하면서 공동체 의식, 성취감 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부모 송 모(39) 씨는 "어릴 적 운동회 덕에 친구들과 어울리고 추억을 쌓을 수 있었고, 내 아이들도 그런 추억을 쌓기를 바란다"며 "내가 받은 배려를 다음 세대에게 베푸는 자세가 어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정 모(9) 군도 "우리 팀이 이겼는데 마지막에 무승부라고 해서 속상했다"며 "경기 종류도 적고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웠다"고 말했습니다.

교육계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안전법상 교원 면책 기준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행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안전법) 제10조 5항은 '학교장, 교직원 등이 학생에 안전조치 의무를 다한 경우 학교 안전사고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 '안전 조치 의무'의 범위와 면책 기준은 모호하다는 지적입니다.

장승혁 한국교총 대변인은 "'사고가 나면 직을 걸어야 한다'는 식으로 선생님에게만 책임을 지게 하는 현행 구조가 계속된다면 교육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어떤 안전 조치를 이행했을 때 면책이 가능한지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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