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은 노동계에서 의미가 큰 날이었다. 근로자의 날에서 노동절로 공식 명칭을 되찾은 날이자 민주노총 위원장이 처음으로 정부의 노동절 기념식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정부의 기념식을 마치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민주노총이 개최한 세계노동절대회로 향했다. 이곳에서 일부 민주노총 조합원이 양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노동절 관제행사'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었다.
정부 기념식 참가에 대한 비판은 일부 조합원만의 돌발 행동에 그치진 않았다. 민주노총에서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산별노조인 공공운수노조는 "노동절을 노동절답게 지키는 것은 기념이 아닌 투쟁이다"라며 위원장의 정부 기념식 참가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화물연대 서광석 조합원의 사망으로 장례를 치르고 있는 시기에 정부 주도 행사에 참석한 것이 유감이라는 입장이다. 정부의 노동절 행사에는 민주노총의 16개 산별노조 중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위원장을 포함한 6개 산별노조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에서 "6개 산별에 소속된 조합원은 전체 조합원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균열의 징후는 이전부터 있었다. 그 균열은 상대적으로 노동 친화적인 민주당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서 나왔다. 양경수 위원장을 포함해 현 정부와의 대화에 비교적 수용적인 온건파와 투쟁을 통해 요구를 관철시켜야한다는 강경파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것이다. 정부, 특히 '민주 정부'와의 관계에서 대화냐 투쟁이냐의 문제는 민주노총의 전통적인 논쟁거리였지만 양 위원장의 연임 이후 크게 세 번의 국면에서 균열을 엿볼 수 있다.
⓵ 2024년 총선과 2025년 대선
계엄 이후 치러진 2025년 대선에서도 민주당과 관계 설정이 논쟁거리가 됐다. 진보정당 후보인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는 방침을 내야 한다는 쪽과 내란 청산을 위해선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쪽이 맞섰다. 김재연 진보당 대표의 경우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를 한 상황이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선에서 선거 방침을 내지 않으면서 총선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민주당을 지지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양 위원장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당선됐던 고미경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사퇴하는 등 내부의 균열은 커졌다.
⓶ 경사노위 참여 논의와 사회적 대화
( 경사노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링크 참고 : https://premium.sbs.co.kr/article/8W8hdrUyvIl )
이번 정부 들어 노동법 전문가이자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 모델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있는 김지형 전 대법관이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민주노총과의 관계에 변화가 있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경사노위에 복귀하지 않았지만 보건의료노조나 공공운수노조, 사무금융노조 등 산별노조 차원에서는 경사노위 위원장과 만남을 통해 소통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 들어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외에 국회 사회적 대화나 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정부 여당과 사회적 대화를 진행해 왔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상대적으로 노동 친화적인 정부 여당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경사노위 복귀 가능성도 높아져갔다.
⓷ 화물연대 조합원 사망과 노동절 기념식
화물연대 사망 사건 이전에도 이미 정부 기념식 참석에 대한 반발이 있던 터였다. 4월 16일 민주노총의 집행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 회의가 열렸는데, 정부 행사 참여를 두고 격론이 이어졌다. 산별노조 위원장과 지역 본부장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 중앙집행위원 중 5명이 정부 행사 참여를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양경수 위원장의 판단에 위임하는 것으로 이날 결론이 났다.
중앙집행위 회의 4일 뒤 화물연대 조합원 사망사건이 일어나면서, 민주노총의 정부 기념식 참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노동절 이틀 전인 4월 29일 오후까지도 정부 기념식 참석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29일 오후 민주노총의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가 열렸는데 이날 일부 조합원이 정부 행사 참석에 반대하는 피켓팅을 하고 나섰다. 이날 회의에서는 화물연대와 BGF로지스 측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민주노총이 정부 노동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민주노총의 정부 노동절 기념식 참석 여부가 화물연대 합의에 달린 상황에서, 노동절 하루 전인 4월 30일 밤 화물연대와 BGF로지스는 극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김영훈 노동부장관이 직접 진주로 내려가 중재에 나섰다. 정부는 민주노총의 노동절 기념식 참석에 공을 들여왔기 때문에, 화물연대와 BGF로지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5월 1일 노동절 오전,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옆에 섰다.
화물연대 합의가 이뤄진 뒤 민주노총 위원장이 정부의 노동절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민주노총 내부에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앞서 언급한 대로 공공운수노조가 양경수 위원장의 정부 행사 참여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고, 노동절대회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양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각각의 이유는 존재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어떤 선택이 더 옳은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 옆자리에 섰을 때와 광화문 광장에서 투쟁의 목소리를 높일 때, 어느 쪽이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오고 어느 쪽이 더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논쟁적이다. 정세를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건 지도부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조합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민주노총은 오는 12월 차기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정부를 대하는 태도가 어느 때보다 이 선거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재명 정부와의 노정 관계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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